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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며칠 전 친구 ‘A’에게서 연락이 왔다.

7월초에 휴가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 실크로드 쪽으로 가 보고싶다고..

그래서 어찌하면 좋을지를..

나는 다시 물었다. 시간을 얼마동안 낼 수 있으며 어디를 보고 싶냐고 ..

10일 이상은 무리라고 했으며 우선은 둔황(敦惶)의 막고굴(莫高屈)을 봤으면 좋겠는데

그 외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작년에 며칠동안 둔황의 막고굴을 비롯해 이른바 실크로드라 불리우는 길 위의 중국내 주요도시들을 답사했었고 그때 받았던 느낌들을 기억해냈다. 나 역시 현지에 직접 가보기전까지는 막연하게나마 그동안 오다가다 들었던 지역정보나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지에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들과 돌아와서 가졌던 몇 가지 궁금증에 대해서 관계서적을 들춰보고 어느 정도 해소를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잊어버리게 되고..  

실크로드상의 주요도시들 특히 둔황의 막고굴은 현재 인도의 아오랑가바드 근교에 있는 아잔타(Ajanta)불교 석굴사원을 시작으로 중간에 위치해 통일신라의 우리 석굴암까지 그 영향을 끼친 매우 중요한 불교유산이며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그동안 이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에는 교통편이 매우 불편했었고, 개별 항공요금도 상당히 비쌌기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했었으나 이번 7월10일부터 10월 말까지 중국 남방항공(CZ)의 전세기가 인천과 중국 실크로드상의 주요 도시인 우루무치(烏魯木齊)로 정기 직항 전세기가 주 1회 운항될 예정이다. 일주일에 한편씩 운항하므로 여행프로그램이 6박8일 일정으로 만들어지는데 항공권만 구입 할 수도 있고 투어를 신청 할 수도 있다. 투어는 배낭여행이 아닌 패키지 여행으로 진행되고 배낭여행과 비교해 장단점이 있는데 ‘A’처럼 간단한 여행중국어 조차 힘이 들거나, 시간이 없거나, 하는 분들에게는 비교적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게릴라투어 목록에 일정표도 함께
올려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우루무치 공항에 착륙하는 신지앙 항공 전세기>

나는 'A'에게 이번에 시작되는 투어를 추천했고, 내가 여행을 다녀온 후 좀더 관심을 갖게되고 알게된 몇가지 사실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A'에게도 보여줄 겸 여기에 소개한다. 단편적인 사항들이지만 여러분들에게도 여행을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보다 자세한 내용들은 당연하지만 각자가 전문서적들을
통해서 숙지 하시기를 부탁드린다.

실크로드 지역은 우리 일생에 한번쯤은 가 볼만하고, 여행의 목표로 삼을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믿는다.   

1. 실크로드란 ?

실크로드(Silk Load)는 크게 중국을 중심으로 서쪽의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포함 유럽까지 연결된 육로(陸路)와
해로(海路)를 통 털어 일컫는 말이다. 실크로드라고 부르게된 것은 비교적 근래인데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 (Richthofen 1833~1905)이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ssen 絹街道)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그 이전에도 서로 왕래가 있었겠지만 역사에 기록되어진 것을 살펴보면 BC 120년경, 유명한 전한(前漢)의 7대 황제인 무제(武帝)가 장건(張騫)이란 사신을 당시의 서역(西域) 즉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파견한 이후 서로의 지역에 대해 보다 더 알려지게 되었으며 공식적인 국가 간의 교역이 시작된 것 같다.  

중국지도를 펴서 내륙의 서북쪽 부근을 보자!  천산산맥(天山山脈)을 중심으로 시안(西安), 지우치엔(酒泉), 둔황(敦惶), 투루판, 우루무치(烏魯木齊), 이닝(伊寧), 타슈켄트를 통과하는 천산북로는 지금의 독립국가연합을 거쳐 유럽까지 가는 초원으로 이어진 길이었고, 둔황, 투루판, 쿠챠, 카슈카르, 타슈쿠르칸을 연결하는 천산남로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을 넘어 파키스탄, 인도로 이어지는 사막의 길이었다. 지금의 둔황(敦惶)에서 90Km 지점에 옥문관(玉門關) 이라 하여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요새가 있는데 이곳을 기점을 천산북로(北路)와 남로(南路)로 나뉘었던 것이다.

이 길을 통해서 중국은 비단 외에도 거울, 칠기, 한약재, 복숭아, 살구, 닭, 종이 그리고 서양인들이 고기를 장기 보관할 때 꼭 필요한 후추 등 향신료를 수출하였는데 특히 후추는 먼 훗날 15세기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시작으로
수입선이 해로(海路)등으로 다변화 되기 전까지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유럽으로의 독점중개무역을 통해서 많은 이익을 남겼던 품목이었다. 반대로 서쪽으로부터는 금, 은, 포도, 오이, 호박, 수박, 마늘, 참깨 등과 더불어 인도에서는 불교가, 중동지방으로부터 이슬람교, 그보다 더 먼 유럽에서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등 새로운 종교들도 들어왔다.   

2. 불교의 전래

이렇듯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된 많은 문물들 중에서 중국을 통해 우리에게 불교가 전래된 것은 문헌상으로 고구려는 서기 372년 (소수림왕 2년) 北中國 전진(前秦)의 부견왕(符堅王)이 불상과 경전을 보내면서부터 이고 백제는 서기 384년에 파키스탄의 ‘쵸타라호르’ 출신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중국 동진(東晉) 에서 배를 타고 백제로 건너와 불교를 전하였다. 백제는 다시 서기 552년 (성왕30년)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기에 이른다. 한편 신라는 그보다 더 일찍이 불교가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고구려의 스님 정방(正方)과 멸구자가 순교를 당하는 등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삼국(三國)중에서 가장 늦은 527년 (법흥왕 14년) 잘 알려진 대로 이차돈(異次頓 506~527)의 순교로 인해서 비로소 공인되기에 이르렀다. 신라불교는 삼국을 통일한 후 통일신라 때 이르러 원효나 의상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들에 의해 활짝 꽃피우게 되었다.

원효대사는 당시 중국인 당나라로 불법을 공부하러 서기 651년 의상과 함께 떠나지만 중간에 난(亂)을 만나서 되돌아오고 10년 뒤인 661년 다시 떠나지만 해골 물을 마신 후 깨달음으로 다시 되돌아온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필자 같은 여행자의 관점(?)에서 관심이 많은 분은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원효 스님이 아니라 약 60년 후 15세의 어린 나이로 용감하게 당나라로 떠난 스님이 한 분 계셨으니 바로 혜초스님(蕙草 704~787 )이다.  

3. 혜초(蕙草)스님

혜초(蕙草 704~787 )스님은 이렇듯 불교문화가 무르익은 통일신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출가, 서기 719년 (성덕왕 18년) 15세의 나이로 당(唐)나라로 유학을 떠나기에 이른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인도출신의 스승 금강지(金剛智)에게 밀교(密敎)를 배웠고 이 스승의 권유로 인도로의 구법(求法)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미 서유기의 삼장법사로 유명한 ‘현장’ 이나 뒤를 이어 인도를 순례한 ‘의정(義淨)’ ‘법현(法顯)’ 같은 존경하는 선승(先勝)들의 뒤를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723년 혜초는 상선을 타고 인도의 켈커타에 도착해 각 성지를 순례하다가 727년 험준한 파미르고원을 넘는 사막의 실크로드를 따라서 파키스탄을 지나 중국의 신지앙성(新疆省) ‘쿠챠’(庫車) 로 돌아와 자신의 4년 간의 인도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집필, 막고굴에 남기게 된다. 이 책에는 그가 순례한 인도의 부다갸야, 법화경(法華經)의 설법지인 영취산(靈鷲山),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 및 부처님의 탄생지인 현재 네팔의 룸비니 등 불교성지들과 파키스탄과 카슈미르 지방, 나아가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파사국’(페르시아)과 사라센(이슬람제국) 지역에 대해들은 바를 기록하였다. 현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앞뒤가 일부 유실된 상태로 보관되어지고 있는데, 인도 동부 갠지스강 유역의 마가다왕국(지금의 비하르지방)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4. 날란다 대학 (Nalanda)

당시 인도의 비하르 주(州)에는 세계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불교대학인 날란다 Naranda  대학(大學 또는 學問寺)이 있었다고 한다. 5세기 굽타왕조(Gupta)시대부터 시작된 이곳은 당나라의 ‘현장’(賢藏 602~664)스님이 서기 640년에 이곳을 방문, 공부를 하고 학승들을 가르친 기록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전해져 내려오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의정’(義淨 635~713) 스님도 이곳을 방문했는데 학생수가 8,000명, 교수가 4,000명이라는 놀라운 규모를 자랑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명성은 불교를 받아들인 주변 국가들에게 일찌감치 알려졌으리라 요즘 우리들이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는 것처럼 인도에서 볼 때 변방인 신라의 학승에게는 이곳 불교의 원조국인 인도 날란다 대학으로의 유학이 일생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의 혜초(蕙草)스님도 사실 이 날란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했을 것이라 한다. 또한 여러 명의 우리 삼국(三國)출신의 승려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던 기록이 군데군데 나온다. 인도에서 불교가 번성했을 때는 이곳도 호흡을 함께 했지만  8세기 이후 인도 내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학교의 기운도 쇠락의 길로 들어서 12세기를 끝으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날란다 대학은 현재 처량한 유적지터만 남아있다.

한편 중국으로 돌아온 혜초스님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의 천복사(天福寺)와  대흥선사(大興善寺) 오대산(五臺山)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등지에서 불경의 번역과 편찬작업에 남은 여생을 바치셨다.

그는 서기 787년 15세 때 떠난 고국 땅을 다시는 밟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입적하시고 만다.

5. 둔황(敦煌)의 ‘막고굴’(莫高屈)

흔히 우리가 둔황(敦煌)석굴이라고 하는 ‘막고굴’(莫高屈)은 중국 깐수성(甘肅省)의 둔황시(敦煌市) 근교에 있는 중국 3대 석굴사원 중에 하나이다.(중국인들은 천불동(千佛洞) 으로도 부른다.) 서기 366년 낙준(樂)이라는 스님이 돈황을 지나다가 삼위산(三危山) 명사산(鳴沙山)의 경계인 곳에서 황금빛 광채와 함께 1천여 개의 불상이 나란히 서있는 환상을 본 후 이곳에서 수행하기로 결심하고 마침 부유하고 불심이 깊은 어느 순례자에게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고 안전하게 귀향하기 위해서는 석굴하나를 만들어 화공(畵工)을 시켜 석굴에 불화(佛畵)등으로 장식해 부처님께 봉헌해야한다고 시주를 권유,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런 선례로 지역유지들이나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에 의해 하나씩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굴이 늘어나고 내부에 벽화가 그려지고 불상들이 모셔지면서 사람들이 많아지고 승방(僧房)이 들어서고 규모가 커지게 된 후 둔황(敦煌)근처 주민은 물론 실크로드를 오가는 대상들 및 순례자들의 성지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1천년 동안 여러 왕조에 걸쳐 남북 1.6Km 넓이에 1천여 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는데 현재 492개가 발굴되어 있다. 특히 혜초(蕙草)스님의 시대인 당나라 때 수 백 개의 많은 석굴이 만들어졌다. 발굴된 각 석굴의 입구에는 세 종류의 일련번호가 적혀있는데 1908년 막고굴을 방문하고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많은 고문서들을 가져간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Paul Peliot 1878-1945)가 붙여놓은 번호 (약자‘P’로 시작됨), 그 이후 1943년 쓰촨성(四川省) 출신의 화가인 장따치엔(張大千)(약자 ‘C’)이 벽화들의 모사작업을 하면서 1번부터 309번까지 붙인 번호, 그리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中和人民共和國) 건국이후 돈황문물연구소(敦煌文物硏究所)가 붙인 가장 큰 번호이다.


<17굴안에서 문서들을 분류하고 있는 폴 펠리오>

유명한 석굴들을 몇 개 소개하자면 막고굴에 가면 가장 눈에 잘 띄는 석굴이 당(唐)시대의 제 96 굴이다.


<막고굴의 제 96굴 > 

유일하게 석굴중에서 누각(樓閣)이 남아있고 40m 높이의 8층 누각석굴안에는 측천무후(623~705)의 명(命)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곳 최대규모의 33m 미륵불(彌勒佛) 입상(立像)이 있다. 237, 159, 220, 335 굴도 당(唐)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우리 신라의 사신인 듯한 양쪽의 새 깃털을 단 모자인 조우관(鳥羽官)을 쓴 젊은이가 여러 민족들 사이에 서 있는 벽화를 볼 수 있는데 신라의 화랑이라는 설이나 왕족이라는 설도 있다.


<맨위의 세명중 가운데 인물이 신라인이라 추정됨> 

6. 17굴 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 제 17굴 장경동 藏經洞 > 

우리에게는 가장 의미 있음직한 곳이 제 17굴(장경동 藏經洞이라고도 한다. 펠리오는 1908년 당시 이 굴에는 따로 번호를 붙이지는 않았고 나중에 돈황문물연구소가 17번이라 지정함)일 것이다. 16굴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사방 약 3m의 작은방을 만들었고, 이곳에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10세기 이전의 수많은 고문서들이 방안에 가득
숨겨져 있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서기 약 1000년경에 이 방이 만들어졌으리라 이야기하고 있다. 뜨거운 사막 건조한 기후의 밀폐 된 방안에 숨겨져 있던 고문서들은 1900년 당시 막고굴의 관리인이었던 왕위엔루(王圓錄)라는 도사(道士)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고 이러한 고문서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난주(蘭州)에 있던 이 지역의 행정관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지지만 어지러운 청나라 말기의 국내사정상 이러한 유물들을 따로 안전하게 이동 보관할 수가 없던 시점이었다.


< 막고굴의 관리인 왕위엔루(王圓錄)도사 >

그때 헝가리 출신의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오렐 스타인 (Sir Mark Aurel Stein 1862~1943)이 1907년 5월
역사(?)적인 첫 막고굴의 유물 특히 17굴 내의 각종 고서(古書) 및 그림 등을 왕위엔루(王圓錄)를 회유하고 매수해 가져간데 이어 몇 개월 뒤에는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Paul Peliot 1878-1945)도 같은 방법으로 스타인 보다 더 많은 약 10 여 상자 분량의 고서(古書)들을 프랑스로 가져갔다. 바로 이 가운데에 혜초(蕙草)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있었던 것이다. 막고굴은 그 뒤에도 일본과 미국 탐험대의 방문(?)을 계속 받았다.


< 오렐 스타인 (Sir Mark Aurel Stein >

둔황(敦惶) 막고굴과 그곳에 가면 필히 듣고 보게되는 혜초(蕙草)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였는데, 각 주변도시들의 여행정보 및 보다 자세한 사항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서점에 가실 것을 권유해드린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실크로드 지역의 트래블게릴라 웹진을 제작할 것도 약속드리고 싶다.  

혜초(蕙草)스님 이외에도 문헌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실크로드를 오갔던 수많은 이름 없는 대상들 및 순례자,
여행자들을 떠올리면서..

현지취재: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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