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우연히 동네에 있는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남태평양이라는 오래된 뮤지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한 젊은
미군이 남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전입해 온다. 그는 해변에서 한 원주민 중년의 원주민 여인과 마주치게 되는데, 맘속으로 그를 사위감으로 찜한 이
여인은 그에게 '발리 하이'라는 노래를 들려준다. 감미로운 노래를 배경으로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이 저 멀리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화 자체를 재미있게 보진 않았지만 -- 특히
주인공 여자의 상대방 남자가 너무 늙어 보여 싫었다 -- 적어도 그림 같았던 그 섬의 모습만은 기억에 남았고 96년 두 번째 여행지로 발리를
택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도착
오후 6시30분 덴파사 공항에 도착, 꾸따로 가기 위해 Public Bemo를 타려고
공항밖으로 가는 도중 이미 버스가 끊어졌다면서 택시가 호객을 한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꾸따까지 버스비는 500루피였다. 당시
7살이던 아들녀석 버스비도 요구한다. 한국에선 애들은 무료라고 해도 안통한다. 2000루피를 내니 거스름돈으로 지폐 한 장을 준다. 창가에 돈을
비춰보니 100루피짜리. 당연히 주어야 할 400루피를 내주며 차장녀석 "Oh, my God"이란다.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숙소가
만원이다. Bandesa II 로스멘에 다행히 빈방이 있었다. 혼자 방을 살펴보러 갔는데 옆방에 묵고 있던 서양 남자애들이 오늘 밤 뭐할 거냐고
묻는다. 결국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가 밤늦게 여자들과 함께 돌아왔고, 형편없는 기타실력으로 새벽까지 노래를
불러댔다.
돌아다니기 발리는 돌아다니기가 불편했다. 주요 마을간에는 Public Bemo가 운행하고 있었지만, 편수가
적었고 대부분 만원이라 불편했으며, 관광 포인트로 연결되는 대중교통 수단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현지 일일관광버스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차량 또는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돌아다녀야 했는데 우리가족은 Jimny라는 일본 Suzuki에서 만든 1,300cc 소형지프를 빌렸다.
|
발리에서의 운전과 관련해서 몇 가지 주의사항
|
|
1. 스틱 차량을 운전할 줄 아는 게 좋다. 2. 차량을
인수할 때 차량의 상태와 연료량을 확인해서 나중에 반납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3. 운전좌석이 우리랑 반대다. 즉 운전석이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좌회전시 조심해야 하듯이 발리에서는 우회전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 다소의 적응이 필요한 만큼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 4. 발리에서는 추월이 밥먹듯이 이루어진다. 조금 천천히 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추월이 들어온다. 그런 차량
이나
오토바이에게는 양보가 최선이다. 5. 결국 나도 추월하게 된다. 추월할 때는 경적을 열심히 울리면서 머뭇거림 없이 과감하게 해야 한다.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온다 할지라도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추돌 사고는 가끔 보았지만 정면충돌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6. 도로지도를 사둘 것. 아울러 안내표지판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곳도 있으니 의심이 갈 때는 무조건 차를 멈추고 물어봐야
한다. 7.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서 떠나기 전에 국제면허증과 여행자보험을 반드시 가입해 둔다.
|
|

|
|
나시고랭
|
먹을 것 여행자들이
발리여행 중 가장 많이 먹게 되는 건 아마도 나시고랭, 미고랭, 사떼가 아닐까 한다. 아들 녀석은 특히 사떼를 참 좋아했었는데 앉은자리에서
한꺼번에 20개를 해치운 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나중에 정로환과 소화제를 먹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당면
같이 생긴 면을 국물에 말아먹는 박소이다. 주로 자그만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파는데 이 장사하는 친구들 설거지하는 걸 보면:
1.
남은 국물을 길바닥에 휙 던져 버린다. 2. 빈 그릇을 수레 아래칸 넣어둔 물통에 한번 푹 담갔다가 꺼낸다.
3. 꼬질꼬질한 행주로
한번 슥 닦는다. (절대 두 번 안닦는다.) 4. 다 씻은 그릇은 잔돈 통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든 맛이 참 좋아서
거의 매일 먹다시피 했고, 단골도 생겨 디저트로 먹어도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수박조각을 서비스 받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박소 맛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조미료 첨가였다. 국자로 조미료를 퍼서 풍덩풍덩...
숙소 발리에서는 숙소를 게스트하우스라
부르지 않고 로스멘이라 부르며, 카오산의 그것들과는 달리 방갈로가 많았다. 아마도 동남아 여행지 중 가격대비 가장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우붓 아닌가 싶다. 96년 당시 6천원이면 더블침대가 두 개 놓이고, 천정에 커다란 팬이 달렸으며, 넓은 수세식 화장실과
작은 테라스가 딸린 넉넉한 크기의 방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게다가 아침도 주고 뜨거운 물과 함께 커피와 차를 언제나 마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우붓의 숙소들이 마음에 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꾸따의 로스멘들과는 달리 대부분 가족부업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훈훈한 정을 맛보거나 현지 가정의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로스멘 집의 가장은 항상 집에서 놀고 있었다. 한
손에는 거의 항상 무선전화기가 들려 있었고, 여자들만 일하느라고 바쁜 모습이었다. 그래서 은퇴하면 발리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가 아내에게
혼났다.
볼거리 꾸따 해변의 일몰이 멋있다고 들었지만, 실제 느낌은 우리나라 서해안 낙조가 더 나을 듯
싶었다. 울루와뚜, 따나롯, 구능까위도 좋았고, 부사끼 사원, 호수위에 떠 있는 듯한 깐디꾸능 사원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볼거리는 그런 유명 관광지보다는 우붓에서 보았던 힌두교 행사와 민속무용이었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 발리에서는
수시로 종교행사가 벌어진다. 그럴 때면 따라 다니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사원 옆의 가정집에
무단침입해서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그 모습들이 마치 나이 어린 개구쟁이들 같았다.
|

|
|
께짝 댄스
|
혹시 에마뉴엘 2편을 보았는지? (매우
진한 성인영화다.) 그 영화를 보았다면 영화 후반부에 원주민들이 "짝짝짝짝" 소리를 내며 둘러앉은 가운데 무희들이 민속춤을 추던 장면을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그것이 바로 발리의 께짝 댄스이다. 께짝 댄스는 레공 댄스 등 여타 발리댄스와는 달리 힌두 신화를 줄거리로 하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더욱이 어두운 밤 사원의 마당 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묘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께짝 댄스가 끝나고 한
할아버지가 말 모양의 인형을 타고 나와 마당에 피워둔 야자나무 모닥불 위를 맨발로 걸어다니는 Fire Dance가 벌어졌다. 모든 조명이 꺼진
채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그 노인은 접신이라도 한 듯 점점 더 자신의 공연에 몰입하였고 2명의 젊은이들이 나서서 붙잡아 앉히고서야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발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 중 하나이다.
사람들 떠나오는 날 시간이 남아 마을 촌장 집에 들어가
악기를 모아둔 툇마루 비슷한 곳에서 낮잠을 청했다. 한 현지인 남자가 다가와서 공연표를 사란다. 우린 오늘 떠난다고 했더니. 가지
않고 이런저런 말을 부쳐온다. 이름은 Katu. 카투와 얘기를 하는 동안 마당에서 놀던 현지인 어린애들까지 와서 신기한 듯 바라본다. 담배를
하나 권했다. 그 친구는 얘기로 말보로는 "Big Nicotine"이란다.
도연이는 가물란 악기도 쳐보고 그곳 애들과 잘 어울려
논다. 현지인 아이들중에 좀 통통한 남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도연이가 업히기도 하고 잘 따랐다. 카투 얘기로는 그가 바로 Barisi
Dancer(용사의 춤)란다. 그러고 보니 레공댄스 공연 때 본 것 같았다.
이번에는 15-6살쯤 되보이는 한 사내녀석이 말을
붙여왔다. 자기는 한국여자가 좋단다. 그러면서 한국에 가고 싶다. 숙박비가 얼마냐 등등을 묻기에 발리가 더 좋다. 난 은퇴하면 이곳에 와서
여생을 보내려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한국은 춥고 삭막하다 등등...
학교 방과후엔 무얼 하냐고 물으니까, 표를 팔고 청소를 하고
굉장히 일이 많다고 한다. 혹시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서라 얘야 인간이 돈만으로 살겠니? 정말 오지 말아라. 그
정도로는 뭐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질식해 죽을지 모르니 말이다. 여유로움 속에서 선하게 늙어감보다 돈이 귀중할 수 있을까?
숙소로 돌아와 맡겨 놓았던 짐을 찾아 나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과일을 바리바리 싸주었다. 우리가 외출할 때면 문가에서 "알로"하던
꼬마 여자애가 오늘은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는지 울고 있었다. 작별인사로 뽀뽀를 해주려니까 도망간다.
그렇듯 발리의 사람들 특히
우붓의 사람들은 착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린 아들을 안은 채 미소를 머금고 우리가 관람하는 동안 따라다니던 거리 화랑의 주인,
렌트비 계산할 때 깜빡 기름 값받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중에 받으러 와서는 오히려 죄진 사람 표정을 감추지 못해하던 자동차 주인...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지?
글/사진
: 김재훈 salute@hite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