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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bok에서 만난 한 동양인 소년, 제이슨

여행시기 : 2000년 4월초, 10여일간
여행지 : 방콕 BKK -->싱가폴 Singapore 경유 (항공) --> 발리 : 덴파사 Denpasar - 우붓 Ubud - 로비나 Lovina
           --> 롬복 : 승기기 Senggigi - 길리 뜨라왕안 Gili Trawangan - 마타람 Mataram (항공)
           --> 자바 : 족자카르타 Yogyakarta - 자카르타 Jakarta (항공) --> 싱가폴 경유 --> 방콕
당시 환율 : 1달러 약 140,000Rp, 아시아 지역 경제위기로 대부분 국가의 환율이 폭락한 상태임.
                2002년 현재 환율 1달러 9,000Rp 정도.

 

발리나 갔다올까?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를 신봉하는 섬인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 불릴 정도롤 사원과 불상들이 많으며 꾸따, 싸누르, 로비나 같은 이름난 해변을 갖고 있어 열대 낙원으로 손색이 없다.


발리는 내게 큰 호기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발리로 가는 항공편이 가득한 시드니에서, 더군다나 발리에서 이민온 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리는 내가 여행 중에 반드시 들려야하는 우선 여행지에서 빗겨나 있었다. 그 이유는 신혼여행지 내지는 복잡한 관광지 정도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내게 발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2000년 초반 난 가이드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고 성수기였기에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가는건 더욱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일주일 정도 한 명이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방공 공항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고 난 어디를 갈것인가를 궁리했다.

투어가 끝난 다음날 회사에 가서 사장님에 다음주에 쉰다고했고, 장난처럼 받아들인 사장님은 어딜갈거냐고 묻는다. " 발리나 갔다 올께요." 라고 말을하니 갑자기 발리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라"고 하는 승낙이 떨어졌고, 그날 당장 난 항공권을 예매하고 다음날 싱가폴을 경유해 발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발리에 관해 별로 아는게 없었고 여행에 대한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던 나는 싱가폴 공항에 잠시 경유하는 동안 가이드 북 '론니 플래닛' 한권을 겨우 살수 있었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휴가였다. 그런데 왜 발리로 혼자 휴가를 가냐고? 신혼여행객들로 가득한 그곳에 남자 혼자 가서 뭐햐냐고 묻고 싶겠지? 하지만 발리는 신혼여행을 위한 리조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배낭여행자, 꾸따 해변에서 장기체류하며 서핑 Surfing을 즐기는 여행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발리다. 즉, 발리도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롬복으로 가는 배를 타는 곳에서 녀석을 만나다

방콕에서 다시 만난 제이슨
함께 갔던 색스폰 펍에서

발리에서 롬복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위해 항구로 이동하는 작은 여행자용 버스에는 역시나 서양여행자들로 가득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일본아저씨와 애뗘보이는 다른 동양인이 하나 더 있다. 차타고 가는 동안 일본아저씨가 간단한 이야기를 하지만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다른 동양녀석이다.

발리와 자바, 롬복을 연결하는 셔틀버스인 페라마 Perama 버스가 빠당바이 Padangbai에 정차했다. 롬복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잠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식사를 하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하면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인 여행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도 난 여전히 다른 동양녀석에게 말을 건네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 녀석을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뿐 식당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손에는 '론리플래닛'이란 가이드 북을 들고 있는데 생김새는 한국인이랑 비슷한다. 한데 약간은 한국인다운 냄새가 덜하다. 한 동안을 그러고 다니더니 식당 안으로 들어왔더니 우리들에게 "일본 사람?"이냐고 묻는다. 난 그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 그 녀석의 출신성분을 물었다. "말레이시아"란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이름은 '제이슨 Jason'이라고 했다. 전혀 말레이시아 사람처럼 안 생겼는데, 알고보니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간단한 인사후 헤어졌다. 모든 일행들이 배를 타고 롬복으로 향하는데, 그 녀석은 빠당바이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롬복으로 간다고했다. 같이 가길 은근히 바랬는데 아쉽다.

롬복가는 길에 동행하게 된 건 영국인 젊은이 두명이다. 4시간 정도가 지나면 롬복 렘바 Lembar 항구에 도착한다. 여행자들이 롬복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길리 섬 Gili Islands에 가기 위한 것이다. 렘바 항구에서 같은 버스를 탔던 영국인들은 나와 함께 승기기 Senggigi에서 하루를 묵어 갈 생각이므로 그들과 어울리게 됐다. 한 눈에도 이제 여행을 시작한 그들의 풋풋함이 느껴져왔다. 태국을 거쳐 들어왔다는 그들은 내 생각대로 호주에 간다고 했다. 그들은 영국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1년 간 휴학을 하고 세계를 여행한다고 했다. 영국-동남아-발리-호주-미국-영국의 Round The World 티켓을 이용해 1년간 여행하는 것이다. 호주에 들어가 일을 해 바닥난 여행경비를 보충할 것이고 동남아는 동양의 신비와 묘함과 저렴함에 즐거워하며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승기기에 도착해 시설에 비해 저렴한 숙소를 정하고 늦은 밤에 저녁 식사를 했다. 영국 녀석들이니 맥주가 한 두명 곁들여 진다.

 

롬복 북서쪽의 작은 세개의 섬 '길리' Gili Islands


세개의 작은 섬이 연속적으로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떠있는 길리 섬은 개발이 미비해 혼자만의 해변을 즐길수 있다. 길리 뜨라왕안과 길리 메노가 멀리 보인다.


다음날 아침 승기기 해변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다 오후에 길리 섬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영국인들은 승기기에 며칠 더 체류한다고 했다. 길리는 '작은 섬'이라는 뜻으로 롬복 서북부에 떠 있는 3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길리 아이르 Gili Air, 길리 메노 Gili Meno, 길리 뜨라왕안 Gili Trawangan을 일컷어 '길리 섬'이라고 불려진다. 내겐 10년이 훨씬 지난 방송에서 보여졌던 파란 바다와 열대 섬의 정취가 강렬하게 남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던 곳이기도 하다.

길리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승기기에서 버스를 탔는데 하루 늦게 출발한 제이슨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제이슨을 보자마자 반기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왠지 친근함이 느껴진다. 외국에서 만나는 동양인이라 더 그런가? 내가 별로 만나본 경험이 없는 말레이시아 사람이라 그런가 하여간 제이슨은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시아를 여행하면서도 아시안인은 거의 없다. 나와 그가 검은 머리를 한 동양여행자였던 것이다.

::: 길리 섬 정보

롬복은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들과 동일하게 이슬람을 신봉하는 곳으로 힌두 섬인 발리와는 다르다. 롬복 북서부에 있는 길리 섬들은 '작은 섬'을 뜻하는 사삭어로 롬복 주변에도 많은 '길리'들이 있지만 길리 아이르, 길리 메노, 길리 뜨라왕안을 가르켜 '길리 섬'으로 불리운다.

길리 섬으로 가는 방법은 롬복 북서부의 방살 Bangsal 에서 공용보트를 타야하며, 하루 한 두차례 정기적으로 운행되며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섬 내부에는 차량이 전무해 대중교탄 수단도 없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아볼 수 있으며, 우마차인 찌도모 Cidomo를 빌려야한다. 섬과 섬 사이 이동은 공용보트를 타거나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세개의 섬 중 길리 뜨라왕안에 여행자 시설이 가장 많으며, 방갈로 형태의 저렴한 숙소들이 아직 주를 이루고 있다. 발리 베노아 항구 Benoa Harbor에서 길리 메노를 연결하는 고속 페리가 직행하면서 패키지 형태의 관광상품이 개발되기도 했다. 길리 섬은 스노클링과 다이빙에 적합한 곳으로 PADI를 포함한 여러개의 다이빙 샵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호기심 가득하던 소년 '제이슨'

버스를 타고가며 배를 타고 가며 제이슨에 대한 호기심을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코타 키나바루 Kota Kinabaru에서 태어나 12살때 싱가폴에 건너가 거기서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싱가폴 항공에서 근무중이라고 했다. 15일간의 휴가 동안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중이며,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혼자해보는 배낭여행은 처음이라며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득한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다. 싱가폴에서 손님들을 이끌고 가이드를 해본 경험도 있고, 항공사에 근무하니 여행과 관련한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되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 무엇보다는 사물을 보는 눈과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비슷했다.

숙소를 구하는 것도 장기간의 여행이 아닌 휴가 개념이 강하니 너무 싼 곳 보다는 적당한 곳에서 잘려고 하는 것도 비슷하고 시간이 촉박해 롬복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려는 계획도 동일하다. 그리고 호텔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자기 명함을 보여주며 호텔 시설을 확인하는 것도 서로 같이 여행하기에 죽이 잘 맞았다.

우리가 택한 섬은 길리 섬에서 가장 여행시설이 많은 길리 뜨라왕안이다. 파티 섬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다른 길리 섬에 비해 복잡하다는 것이지 아직은 완벽한 개발이 이루어진 곳은 아니다.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는 건 더 많은 자유로움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롬복에 도착해 같은 숙소에 방을 구하고 난 수영을 하러 나가고 제이슨은 다이빙을 하겠다며 스쿠버 다이빙을 신청하고 왔다. 저녁시간이면 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 정도가 하루일과 동안 서로 얼굴을 보는 유일한 시간이긴 했지만, 밝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에너지가 제이슨에게서는 느껴져 기분이 좋다. 길리 섬에서 잘 알려진 여행자들이 모이는 레스토랑은 전기 대신 촛불이 켜진 바다가 보이는 정원이 있는 곳이다. 테이블마다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행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와 제이슨도 한 테이블을 찾이하고 저녁을 먹는다.

제이슨은 주위를 둘러보며 "왜 동양 여행자는 없는거지?" "이곳에 한국사람, 저곳에 일본사람, 저쪽에 홍콩사람, 앞에 싱가폴사람, 뒤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있다고 상상해 봐라. 그리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서양인들이 점령해버린 여행지에 대한 아쉬움을 전한다. 그런날이 정말로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도 동양인들이 공통으로 쓰는 언어가 하나 있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했었는데.

섬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한가히 시간을 보내는 나와 달리 제이슨은 다이빙을 하러 갔다온다. 다이빙을 다녀와 저녁을 먹으며 제이슨이 실망 내지는 황당한 일을 당한 것 처럼 다이빙 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사실 길리 섬은 여행자들을 제외하면 아직도 전기도 없는 개발이 안 된 지역이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그 들에 비하면 상당한 경제적인 우위를 누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길리 섬에서 가장 잘 된다는 다이빙 샵은 요금을 다이빙을 한 번 하는데 40달러이다. 아마도 그 돈이면 섬 주민들의 한 달 수입과 맞먹거나 수입보다 많은 돈 일 것이다. 원목으로 지어진 다이빙 샵도 인도네시아 환율이 폭락할 당시 지어져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돈으로 다이빙 샵과 레스토랑을 지었다고 한다.

제이슨이 만난 그의 다이빙 강사. 제이슨은 저녁을 먹으며 자기 다이빙 강사의 전직에 대해서 설명한다. "너도 다이빙 강사 봤지? 그 사람이 독일사람인데 독일에서 뭐 햇는지 아니?" "독일에 있을 때 굴뚝 청소 했단다. 만약 동양인이라면 굴뚝 청소해서 번 돈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독어, 영어, 불어가 가능해 다이빙 강습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동양인이라면 굴뚝청소하는 사람이 3개국어를 할 수 있을까?" 제이슨은 그런데서 불공평함을 느꼈나보다. 서양인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 자유롭다. 굴뚝청소를 하다가도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다가 다이빙을 배워 다이빙 강사를 다른 국가에서 하고 있어 언어는 기본적으로 자라면서 배우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4일간 제인슨과 함께 길리섬에 있었다. 낮에는 각자 자기 하고 싶은 일하고 저녁에 주로 식사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밝은 모습,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는 제이슨은 언제나 보기 좋았다. 롬복공항에서 그는 발리로 가는 비행기로 나는 족자카르타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서로 헤어졌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그렇게 여행자로서 각자의 길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방콕에서 그를 다시 만나다

그 후,
1년 후 쯤,

제이슨은 방콕공항에 발령을 받았다며 방콕에 왔다. 그가 방콕에 있는동안 자주 어울렸음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방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녀석에게서는 언제나 느끼는 밝은 에너지가 있어 좋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와 비슷한 길을 나보다 한발짝 먼저 걸어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제이슨은 나와 비슷한 길을 한발짝 늦게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아 녀석과 함께 있으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하게된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은 녀석은 자주 나를 놀라게한다. 자신의 삶을 너무도 사랑하는 모습을 녀석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간의 방콕공항 근무가 끝나고 그는 베트남의 하노이 Hanoi 공항을 근무지로 택했다. 2년간의 하노이 근무를 위해 그는 베트남에 있다. 방콕에서처럼 자주 연락을 하게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휴가랍시고 방콕에 들렸다가기도 했다. 호치민 공항에 근무했다면 얼굴을 볼 기회가 생겼으련만 그는 하노이에 있다. 하지만 얼굴을 자주 못보더라도 그는 지금도 나와 가까운 곳에 있음을 너무도 잘 느낄수 있다.

 글/사진 안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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