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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산에 오르면, 미친년이다.
어차피 정상이 아니긴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산행에 적합하지 않은 체력인지…내,
참…
김밥을 쌌다.
이것도 미친 짓이었다.
전날의 과음으로, 술정신으로, 그냥, 틱, 김밥 싸가까?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그래, 그래, 그럼 니가 싸와, 이렇게 된 거였다.
내, 참…
출발.
미친 듯이 달리던 차 안에서, 부연 밖을 내다보다가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대구를 지나고 있었나…… 모르겠다…
금방 창녕이다.
톨게이트에서조차, 억새 태우기 행사에 온 사람들을
위한 주차 안내장을 나누어 준다.
큰 행사긴 큰 행사인가보다.
하지만, 과연, 내가, 산행을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말았다가, 했다가, 말았다가……
창녕 여중고에 주차.
얼결에 내려, 얼결에 산행 시작.
이때까지도, 내가 과연 정상까지 갈까? 안가겠지, 갈지도
몰라… 어쩌지? 하는 생각들…
어느 산을 올라야 하는 거지?
산이 많은데?
설마 저 산은 아니겠지…
그리고, 그 산이었다.
그 봉우리들 중에 가장 험난하고, 납작하고, 우람하게
서 있던, 그 산.
일단 매표소까지.
아스팔트로 된, 경사도 무난한 길.
이 정도라면야, 뭐, 걸을만 하지만……
그냥 따뜻해진다는 도시락 시식도 하고,
오르다 보니, 커피도 무료로 주고,
매표소 근처에 가니 하산할 때 쓰라고 랜턴도 나눠 주고,
입장료도 안받고.
 
흙 길.
산길이지.
걷기 좋은 경사에, 걷기 좋은 푹신푹신한 나뭇잎 덮인
산길이다.
그 길을 좀 오르다가, 널찍한, 주민 운동용 영역이 나온다.
거기 앉아 잠깐 쉬며,
흠……나 그냥 이 쯤에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했으나,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가야지, 가자아~~ 하는, 별로
적극적이지도 않았던 꼬드김에,
그냥 오르기로 결정.
흠……다시는 담을 수 없는 그 순간의 엎지름.
그냥 산행.
바위, 나무, 휴식, 흙 길, 헉, 저 꼭대기야? 잠깐 쉬어,
흐윽, 돌 길, 흙 길……
어쩌지? 어쩐다?……
이렇게 오르도록까지 갈등을 하고 있었다니……

깃발이 휘날리고, 넓은 벌판인 듯 펼쳐져 있는 꼭대기에
올랐다.
자, 이제, 저 길을 다시 어찌 내려 간다지?…꺽정스러워…
겨우 1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이었으니, 절대 어려운
산은 아니다. 나만 어려운 산이다.
 
자, 어쨌든, 정상에 올랐으니, 뭐든 해야지.
올라오느라 수고했다고 우유도 주고, 떡도 주고, 부럼도
준다. 꽁짜루. 굉장한 행사다.
사람이 많다. 아주 많다.
출발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억새 태우기 장면 사진이,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옆 사람이 그랬었다. 저거 해운대에
몰려 있는 사람 사진이랑 불태우기 사진이랑 합성한 거
아냐? 라고.
그거, 합성 사진 아니다, 현실이다.
우유를 마시며 내려다 본, 또는 올려다 본 산 정상의
풍경은,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몽롱한 기분이 들게
한다.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언제 올라온거지? 아직도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내려간다지?
파전도 팔고, 막걸리도 팔고, 오뎅도 팔고, 라면도 팔고…
저 의자들, 저 물들, 저 가스통들, 모두 분명히 헬기로
들고 왔을꺼야…
 
저어 위쪽에는 벌써 사진을 찍으려는 삼각대들이 줄지어
있다.
좋은 포인트인가부다. 우리도 올라가자.
헉,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딸랑 간이 화장실 두 칸?
흠… 큰일이군…대단한 발상이야.
수 천 명이 모이는데, 화장실이 두 칸이라…
올라가서 넓은 억새밭, 밭이라기엔 좀 많이 큰, 여튼
억새밭을 내려다 보니, 사람이 더 많다.
억새 속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아서, 오뎅과, 김밥과,
쏘주 한 잔.
안내 종이를 보니 우리가 방화선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럼 이대로 앉아 있으면, 죽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죽는거지…
네 시 반쯤 됐으려나, 행사 진행 요원인지, 도우미인지
싶은 사람들이 억새밭에 들어가 앉아 있는, 우리 같은 많은
사람들을 방화선 밖으로 내몰고 있다. 호루라기를 불며.
나오세요, 나오세요.
정말 이 넓은데를 다 태우려나부지……
 
태우기 행사를 한다는, 일정표에 나와 있는 6시 30분까지는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았다.
춥다.
흙 위에 일정표를 펼쳐서 깔고 앉아, 다시 막걸리? 동동주?
여튼, 5천원짜리 조껍데기술과, 5천원짜리 파전인지, 야채전인지,
해물전인지를 먹으며 시간 죽이기.
풍악도 울리고, 민요도 부르고, 대금도 불어 주고, 난타
공연도 하고…저 많은 사람들은 어케 올라왔을까? 저 악기들은,
저 한복들은……헬기로 갖고 왔을꺼야……떱……
해가 진다.
6시 13분.
억새 태우기 행사까지는 아직 17분이 남았다.
그래서 오만을 부렸다.
17분만에 화장실은 다녀올 수 있으리라는 오만을…
아까 올라갈 때보다 3배쯤은 줄을 더 서있다, 두 칸의
안타까운 이동식 화장실 앞에.
어쨌든, 기다렸고,
그 사이에, 불 지르기가 시작 되어버렸다.
 
본부석 옆에 높게 원뿔형으로 쌓아놓은 나무 더미에
불을 붙이는 걸 시작으로, 불 쑈 시작.
방화선으로 되어 있던 지점들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붙는
걸로 시작해서, 점점 타 들어 간다.
안으로, 안으로……
방화선의 바깥 지점은 미리 태워 놓았다, 불이 번지지
않도록.
사람들은 미리 태워 놓은 방화선의 바깥 지점에서 불구경을
하는 거고, 그 안의 억새들은, 정처 없이 타 들어 간다.
아까, 쏘주와 오뎅과 김밥을 먹었던 그곳에 앉아 있었더라면,
그냥 가는 거였다……
해가 지고 있구나 싶은 후, 언제인지 모르게 이미 깜깜해질대로
깜깜해져 있었고, 하루 종일 부연 날씨로 달빛조차 없던
그곳에서, 군에서 허락한 공식적인 불지르기가 불꽃놀이와
함께……장관이다.
이렇게 촌스러운 표현이라니…
정상에 오른 후, 몇 시간을 추위에 떨다가, 그렇게 활활,
그야말로 활활, 미친년 머리채처럼 타오르던 불꽃에, 몸이
녹는다.
불꽃놀이도 마구 쏘아지고 있고, 불길은 점점 커지고,
연기가 오르고…
화산은 터지고 용암이 쏟아져 내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번져가던 붉은 물결.
   
이건 뭔가, 싶어서 멍해진 기분.
불이구나, 활활 타네,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던 상태.
다시 내려가는 게 걱정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의식이
되돌아 왔을 때는 불꽃이 거의 사그라 들었다. 물을 만난
듯…
내려가야지, 내려가야하고 말고. 여기서 살 순 없으니,
올라왔으니 내려가야지,
사람이 많다.
많은 줄은 알았는데, 내려가는, 정상에 발을 디뎠던
지점 근처에, 흠…많다.
10여분을 서있었으나, 무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기껏해야 2,3명이 걸을 수 있는 막판 흙계단
길과, 그 길을 내려가면, 기껏해야 1명씩만 내려갈 수 있는
큼지막한 돌 길이 있는 상태로 이어지니……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순 없지, 절대로
없지.
등산로가 여러 길이 있어서, 뒤쪽 길로 가는 사람도
있고, 오른쪽 길로 가는 사람도 있고, 왼쪽 길로 가는 사람도
있었으나, 어디든 사람이 많은 건 마찬가지였고…
일단 후퇴.
처음 불구경 장소였던 곳으로 올라가서 아직도 타 들어
가고 있는 불씨 구경.
그렇게 좀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하산 시도.
실패.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상황.
다시 후퇴.
잔불 근처에 땔감을 모아 불을 쬐고 있는 곳에 가서,
다시 남은 불씨 구경.
30여분을 보냈으려나, 다시 하산 시도.
실패.
아까보단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춥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30분도 넘게 서
있다가, 포기.
또 후퇴.
뭘 좀 먹어볼까 하고, 오뎅도 팔고 라면도 팔던 곳으로
이동.
여러 개의 장사 무리중 하나를 골라, 앉으려 했으나,
장사가 끝났다고……
흠…
쓰레기를 모아 태우던 불 쬐기.
땔감도 떨어져 가고…… 사람도 좀 없어진 듯하고,
하산 지점 염탐 후, 일단 서너대여섯개 정도의 흙계단은
기다림 없이 내려갈 수 있는 상태에서 하산 시도.
그렇게 정상을 떠나던 시간이, 거의 열 시.
이렇게 엉망인 산걷기 실력으로, 밤 산행이라니, 내
참……어처구니가 없어서……
 
한 계단을 내려오기 위해, 적어도 1~2분은 대기.
간간히 흐르는 구름 사이로 달무리에 쌓인 연한 달빛과
올라올 때 받았던 작은 랜턴에 기대어, 어렵게 어렵게 하산.
초반에는, 사람이 많은 이유로 속도를 낼 수 없어서
그다지 어렵진 않았으나, 내려오다 보니 슬슬, 산을 잘
탄다고, 샛길로 마구 내려오다가 샛길 없어지면 끼어들고,
끼어든다고 뭐라 하니, 이게 뭐 끼어드는거냐고, 갓길이
있어서 갓길로 가는거지……빨리 내려갈 수 있으면, 빨리
가면 되는거 아니냐고, 갓길로도 잘 갈 수 있어 속도를
내는건데, 왜 그거 가지고 뭐라고 그러냐고……되레 뭐라뭐라
지껄여 대던 사람들.
그 컴컴한 밤, 산 속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전부
산을 날 듯 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하고, 불꽃쑈 장관에 취해 쏘주를 몇 잔 들이킨,
얼큰한 기분으로, 지껄여 대던 그 사람들……
그래, 산도 못 타면서 올라온 내가 미친년이다.
미친, 밤의 하산.
다시 아스팔트를 밟고 차에 올라탄 시간은 12시 15분
경.
천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일찍 내려왔네.
부곡으로 이동.
방 잡고.
세수하고.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며,
수다를 떨며,
맥주 마시기.
흐억, 헉, 내가 산에 다녀 왔어…
아침.
봄 소리 탁탁 내며 부딪히던 블라인드에, 느닷없는 따뜻한
기분과 함께 한 숨 더 잠들던 아침.
낮. 12시.
숙소를 나와 밥.
일행은 온천, 나는 차에서 낮잠.
다시 창녕으로.
그리고 우포늪으로.
늪이라 하면, 악어떼가 나와야 할 것만 같지만, 악어는
무슨……
 
처음 알았다.
철새들이 시끄럽다는 것을.
앉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날 때는 더 시끄럽다.
뭐라 그렇게 떠들며 노는 걸까.
겨울 억새. 겨울 철새. 겨울 늪.
늪이라니, 늪인가부다 하는거지, 그냥 좀 넓은 저수지
같은 느낌.
그 속에 살고 있다던 수많은 동물, 식물, 미생물은 볼
수 없으니, 흠…뭐…생태계의 보고려니, 하고 상상해야지.
잘 들 살아 가겠지.
 
늪지대를 벗어나, 귀경길.
일단 밥을 허겁지겁 먹고, 뭘 했다고, 배는 그렇게 고픈건지…
엄청 둥그런 해를 왼쪽에 두고,
엄청 둥그런 달을 오른쪽에 두고,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다시 일상.
전여진 zorba@travel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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