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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를 따라 문산을 거쳐 적성·전곡·연곡을 지나 3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철의 삼각지, 안보관광으로 유명한 철원에 이른다(소요시간 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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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정을 살펴보면... 12월
07일 12시 정각 노량진 출발(차량 라노스, 김밥과 사이다 먹으믄서..) - 자유로 - 문산 - 전곡 - 연천 - 3번국도 - 신탄리역 -
14시 고석정 도착 - 고석정 내 철원관광호텔 숙소 잡꼬 - 고석정 한 바퀴 돌고 - 삼부연폭포 - 승일교 - 17시 즈음
철원관광호텔(수영,온천) - 잔치국수 먹꼬 - 숙소에서 좀 쉬다 - 이동갈비에 쐬주 - 취침. 12시 기상 - 된장찌개 먹꼬 -
철의삼각전적관에서 민통선 관광 허가증 받고 - 13시에 민통선으로 출발 - 땅꿀 - 월정역 - 15시 30분 민통선에서 나옴 - 노동당사 -
도피안사 - 직탕폭포 - 17시 서울향발
어디갈까 고민하는 그대여~!! 출발하라~!! 철원으로.. |
녹슨 기찻길의 상혼을 간직한 경원선 최북단역, 신탄리역
연천에서 철원방면으로 3번국도를 따라 10여분. 첫 번째로 철도종단점으로
유명한 신탄리역을 만날 수 있다. 이 역은 1913년 7월 10일에 신호장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8.15해방과 동시에 이북에 배속되었다가 1951년 9월 28일에 서울 수복으로 탈환하였다. 1954년 7월 1일에 보통역으로 승격되었으며
지금의 역사는 61년 12월 30일에 완공되었다. 71년 11월 3일에 '철도중단점' 표지판을 설치하여 경원선 최북단역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휴전선으로부터 약 4km 위치해 있어 실향민과 안보관광객, 고대산 등산객이 주로 찾고 있어 애환이 깊은 역이다. 신탄리 역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5분쯤 걸어가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 라는 표지판과 마주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경원선 철도 중단점.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표지판과 녹슨 철길이 잊고 있던 분단의 현실을 일깨운다. 철도가 달릴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설명조차 없는 철도 중단점. 아쉬움과
함께 언젠가는 저 철길을 따라 원산까지 달리리라는 염원을 되새기게 하는 곳이다. 여행메모: 의정부역에서
출발하여 1시간 38분소요. 06:00~22:00(매시 정각 출발)
철원온천관광호텔
1박2일 코스로 정했기에 고석정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부터 정했다. 인터넷으로 숙소를 알아보고 왔으므로 주저없이 잡았다.
객실 요금 9만원. 비싸다고 생각하면 비싸지만 동급의 관광호텔과 비교하자면 그리 아깝지 않은 호텔이다. 친절한 서비스, 넓고 쾌적한 실내
온천 수영장, 고석정이 바라보이는 훌륭한 전망, 맛깔스런 식당의 음식들, 호텔 주변의 부대시설, 모든 것을 만족 시키는 온천호텔이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남녀 가족 혼탕과 넓은 온천 수영장은 일반 온천수보다 게르마늄이 7배나 많아 항암 작용이 국내 최고이다. 시설 쾌적.
요금은 호텔 투숙자는 50% 할인하여 4,000원. 호텔의 먹거리로는 수영장과 함께 연결된 메점에서 판매하는 잔치국수(4,000원)가
맛깔스럽고, 1층 안쪽에 위치한 한식당의 '내당'에서 판매는 된장찌게(5,000원)도 구수해 맛나다. http://www.yescall.com/cheolwon/
고석정(孤石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에 위치한 고석정(孤石亭)은 한탄강 절경 가운데에서도 으뜸인 명승지다. 한탄강 지류에
있는 고석정은 화산 폭발로 강변양쪽에 병풍같은 기암절벽이 우뚝솟아 있어 그 양쪽 중간쯤으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여기에 신라 진평왕
때 축조된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지방기념물 제 8호로 지정된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 한다. 그보다 더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 명종 때, 임꺽정이 이 정자의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웅거하면서, 의적활동
은거지로 알려지면서이다.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 고장 사람들은 고석정을 꺽정바위로 부르며 고석정의 형상이 마치 임꺽정이 신고 다니던 장군화를 닮았다고 믿고 있어 흥미롭다.
고석정 바위에 오르면 굽이치는 한탄강 줄기와 기암괴석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수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보트와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강 양쪽에 기암절벽이 솟아있고 옥수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이 곳은 철원8경 중의 하나이며,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곳에서 상류 쪽 약 2km 지점에 직탕폭포, 하류 쪽 약 2km 지점에는 순담계곡이 위치해 있어 관광코스의
연계지로서 핵심이 된다. 고석정 내에 있는 철의삼각전적관에서 민통선 안의 제2땅굴, 철의 삼각전망대, 월정리역도 이곳에서 신청하여 출발한다.
놀이시설인 고석정랜드도 있다. http://cw21.com/02view/06/01.htm
■ 입장료(고석정, 철의삼각전적관 포함)
■ 편의시설 주차장 (고석정경내) 335대
수용가능 요금- 승용차 2000원, 버스 4000원
삼부연(三釜淵) 폭포
조선 후기의 뛰어난 화가 겸재 정선은 그때까지 종래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중국풍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이를 회화적으로 재해석하여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위대한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몇차례 찾아본 금강산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조선적 산수화의 절정을 이루었다. 금강산 가는 길에 삼부연을 지나게 된 그는 여기서도 한점의 진경산수화를 그려냈다. 높은 바위 절벽에 패인 수로를 따라 흰 포말로 굽이치다 맑고 푸른 물속으로
떨어지는 삼부연은 분명 한국회화사에 통틀어 큰 업적을 남긴 거장의 눈을 붙잡을 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삼부연이라는 말은 폭포의 물길이
떨어지는 길에 가마솥(釜)처럼 생긴 웅덩이가 세군데나 이어져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행메모) 고석정에서 나와 신철원을 거쳐 지포리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명성산 기슭으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헌데 조심하라. 삼부연 앞에는 삼부연이라는 푯말이 없다. 그냥 지나치기 일수이다. 삼부연 바로 앞에 터널이 있다. 좌측에 보이는
폭포가 바로 삼부연이다.
승일교
삼부연을 보고 철원관광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승일교가 있었다. 승일교는 옆에 새로 지어진
한탄강교 옆에 통행이 금지된 채 텅 빈 모습으로 쉬고 있었다. 주변에는 넓은 주차장, 조경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승일교는 한탄강
주변의 자연과 썩 잘 어울리는 고전적 아치형 다리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다리와 비슷하다. 승일교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해방 후 이곳이 북한땅일 때 공사가 시작되어 휴전후 남한땅에서 완성되었다고 하여, 김일성(金日成)과 이승만(李承晩)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承日橋)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뜻은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의 승일교(勝日橋)라는 해석도 있다하나 기실은 다리 입구에도 새겨져
있거니와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박승일(朴昇日)이라는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다리의 이름도 승일교(承日橋)나 승일교(勝日橋)가 아닌
승일교(昇日橋)였다. 무엇이 맞든 간에 승일교는 남북이 반반씩 만든 것은 확실하다. 자세히 보면 두 개의 아치의 모양이 서로 틀리다.
분단의 현실을 가장 잘 말해 주고 있는 다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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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 잔치국수를 맛나게 먹고 온천과 수영을 했다. 그리고 나잇라이프...
오전일정은 없는 관계로 12시
기상후.. 민통선을 들어가기 위해 철의삼각전적관으로 향했다. (부연설명) 월정역, 땅굴을
보고프면 무조건 철의삼각전적관(고석정內)으로 가야한다. 이곳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철의삼각전적관
국내 최대의 국가 안보 교육장인 전적관은 1950. 6. 25. 이후 방치된 전흔의 발굴 보존과 그 당시
치열했던 전적지를 재발굴 조명시키고, 주변의 자연 명승지와 연계 개발하여 안보관광 단지로 조성하기 위하여, 1989년 11월 지상 2층 건물에
영화관, 전시실, 회의장을 모두 갖추어 개관한 교육관이다. 현재는 1층에 북한관이 열려 북한의 문화·생활·정치에 관련된 물품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민통선의 전적지 견학을 할 수 있다.
<▼전적지견학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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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견학장소 |
신청방법 |
소요시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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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 견학 |
제2땅굴, 철의삼각전대, 월정리역 |
1, 견학신청: 견학당일 철의 삼각전적관 2층 접수실에서 접수,
출발시간 10분전까지 신청서 작성 접수완료(외국인 동일)
2, 출발(견학)시간 - 동절기 : 09:30, 10:30,
13:00, 14:00 - 하절기 : 09:30, 10:30, 13:00, 14:30 * 견학(출입)시간 30~30분전 고석정
도착
3, 준비사항 : 내국인 -> 대표자 1인 신분증 지참, 외국인
-> 여권 등 지참 |
2시간 30분 소요 |
매주 화요일 휴관,
안내공무원 인솔하에 전차량이 함께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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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전망대 |
1, 견학신청: 견학당일 철의 삼각전적관 2층 접수실에서 접수,
출발시간 10분전까지 신청서 작성 접수완료(외국인 동일)
2, 출발(견학)시간: 11:00, 13:30
*
견학(출입)시간 30~30분전 고석정 도착
3, 준비사항 : 내국인 -> 대표자 1인 신분증 지참, 외국인
-> 여권 등 지참 |
2시간
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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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딱히 특별하게
전시된 것은 없었다. 기억 남는 건 북한 교과서, 신분증, 남포술, 오미자단물, 귤단물, 배사이다.. 100여평 남짓된 공간을 도는데 10 여
분정도 걸린다. |
철의 삼각지대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란 평강, 철원,
김화를 꼭지점으로한 삼각지대를 부르는 군사적 호칭이다. 이 지역은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하늘과 맞닿은 산능선마다 무수한 젊은 넋들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적인 전쟁동안 스러져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넓은 철원 평야 한가운데 볼록이 솟아 원래는 삽슬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작은 봉우리는 전쟁 때 무수한 폭탄세례로 파헤쳐진 모습이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린 것 같다고 하여 아이스크림고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지금은 백마고지라고 부르는 높이 395미터에 불과한 이름없던 한 야산은 아군과 중공군이 공격과 방어를 거듭하며 열흘동안 무려 24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벌인 장소라고 한다. 그 결과 피아간 2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고 30만발 이상의 집중적인 포격을 받은
산은 황폐화되고 산의 형상자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 처참한 형상이 마치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여 백마고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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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休戰線)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어야 하는가. 아무런 죄(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시인
박봉우- |
제2땅굴 서울 북방 108km 지점에 위치한 이 땅굴은 한 병사가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청취함므로써 발견된 것으로 수십일간의 끈질긴 굴착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남한지역에서 두번째로 발견된 북한의
기습남침용 지하 땅굴이다.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1km 까지 파내려 온 곳도 있으며 그 규모는 높이 2m의 아치형 터널이다. 이 땅굴은 한
시간 안에 약 3만명의 중무장한 병력과 야포 등의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특수 설계 된 북한의 엄청난 도발 현장이다. 땅굴이 있는 지점은
견고한 화강암층으로 지하 50∼160m 지점에 있고 땅굴의 총연장은 3.5k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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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땅굴에선 사진찍는 것을 엄격히 통제한다. 허나 몰래찍었다. 미안타...
관계자여.. |
월정역(月井驛-달우물역) 월정역은 엄청난 전쟁이 스쳐간 지역에 있는 역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아담하다. 시골간이역같은
모습이다. 역사 안에는 부서진 열차의 잔해가 아직 남아 녹이 슬어가고 있고, 곳곳에 총탄 자국이 그 날의 잔인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서울에서 금강산까지 달리던 경원선은 이제 월정역 못미쳐 신탄리역이 종착역이다. 월정역에서 서울까지
104KM, 원산까지는 123KM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월정역사 밖으로 나오면 남방한계선의 철책이 바로 있고 그 선에 이어져 철의삼각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남쪽
비무장지대가 내려보이고 멀리 북녘의 산들이 육안으로도 보인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좀더 가깝게 북쪽 모습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매점이
있어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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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역에서 민통선투어는 끝이난다. 검문소를 나오기 전에 아래와
같은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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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 제2금융조합 |
▲ 얼음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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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검사소 |
노동당사
(안내판을 그대로 옮기면..) 이 건물은 8.15 해방후 북한이
공산독재의 정권강화와 국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6.25동란 전까지 사용했던 북한 노동당 철월군 당사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1개리(里)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하였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언하였다. 공산지하 5년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끌려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 송장이되어 나올만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었다. 이
건물의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되었다. 견학을 마치고 ‘안보견학’이라고
쓰인 표시판과 맡겨두었던 신분증을 교환하고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면 바로 좌측에 뼈대만 앙상한 시멘트 건물이 나온다. 해방 직후에 세워져
전쟁기간에 폐허가 된 조선 노동당 철원군 당사이다. 얼마전까지는 내부 출입이 자유로웠는데 이제는 붕괴위험과 원형보존을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곳의 총탄자국은 누가 누구를 겨냥해 쏘아댄 것들인지 소름이 끼쳐 온다. 또한, 이곳은
한때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 앨범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 비디오를 찍은 장소이다.
‘언젠가 작은 나의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엔 희망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도피안사 到彼岸寺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 도선국사가 높이 91㎝의 철조비로사나 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이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이 불상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 일대를
샅샅이 찾아보니 현 위치에 그 불상이 앉아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 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을 도피안사로 지었다. 절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 상과 보물 제 223호인 높이 4.1m의
화강암으로 된 3층 석탑이 있다. 용어해설 : 피안 - (불교용어)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 또는, 그 경지
직탕폭포
동송읍 가운데를 꿰뚫는 한탄강 물줄기 아래에 풍부한 수량과 나직한 골짜기를 가진 몇 가닥의 강물이 서로 합쳐
떨어지는 직탕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여느 폭포와는 달리 밑으로 긴 것이 아니고 옆으로 긴 것이 특징이다.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너비는
50-60m에 이른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는 장엄하고 아름다워 일명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불리며 철원 8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신비롭고 황홀한 철원지방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이곳은 여름철 피서지 로서 최적지이며,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주는 식당에서 깔끔 한 맛도 즐길 수
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라고야..?

철새 철새를 보러 민통선안까지 들어갔지만, 민통선안에는 거의 철새를 보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동송에서 잠시
보았을 뿐.. 아..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폭설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글/사진/편집
: 김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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