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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 왓 보다 가슴 저미는 앙코르 사람들
    
- 글/사진 : 배훈 -

 

보는 여행이 아닌 느끼는 여행
-맘껏 울고 나서야 웃고 돌아온 재 키의 10일간의 캄보디아 여행기

프롤로그
참으로 가슴을 저미게 하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조금은 슬픈? 이야기가 여기 있다.
선진국에 가면 볼거리가 제공된다면 후진국으로 갈수록 느낌과 여운을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여행은 재 키의 여행 10주년을 기념하는 여정의 시간에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10일간의 여행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적지를 여행했다기보다는 공산세력인 크메르루즈정부의 만행과 베트남전쟁으로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캄보디아 인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
지난 시간의 장막 뒤로 묻혀버린 그 위대했던 역사를 이루고 조용히 살아져간 이들의 인생까지 마음에 묻고 살아가는 젊은 캄보디아 인들과 아주 진솔하고 삶의 냄새 가득한 글이다.
우리한번 이번 기회를 통해 손에 잡히는 무엇을 얻으러 떠나는 여행보다 무언가를 느끼는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저자의 의도가 조금은 먹히는 것이라고 본다.

너무나도 맑고 순수한 시장에서 일하는 친구 - 모이[moi]
일정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을 방콕에 있었지만 처음 의도대로 뭘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으므로 말 그대로 방콕 하다가 셋째 날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흙먼지 가득한 길을 뚫고 도착한 9시간 여의 질주...그리하여 도착 도시 씨엠립에는 번잡함보다는 우리고향의 시골 읍내정도의 분위기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피부가 조금 따가울 정도의 햇살과 피부가 조금 거뭇거뭇 그을린 젊은 캄보디아인 들이 조금 보일 뿐 외갓집에 온 느낌이었다. 잠시 후 여장을 숙소에 풀고 나서 저녁을 위해 전격 인원을 구성한다. -물론 재키가 주도[주동?]하는- 조금 전 같은 버스로 도착한 일행 5명과 요기를 위해 찾아간 곳은 올드 마켓의 현지 인이 운영하는 식당.
이곳까지는 다음날 오토바이를 예약한 덕에 모토 드라이버들이 시장까지 태워 주었다. 다시 만날 시간약속을 한 후 음식을 주문할 때쯤 동행했던 한 친구가 자신의 생일이라면 식사 값을 모두 치른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고 이때 생각난 재키의 아이디어... "그럼 내가 케익을 쏘지요~".
하지만 저녁8시가 지난 시각이라 케이크 비슷하게 생긴 빵도 구하기 힘든 시골.... -그런다고 그냥 넘어갈 재키가 아닌 것 아시져.. (히히)-.
서빙을 보고있던 친구에게 마구 떠들어서 아니 반 강제 반 매달려서 부탁하자 열심히 듣더니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다니며 모토 기사인듯한 이들에게 물어 보고 한참을 있다가 나타나더니 하는 말 "시간이 늦어서 베이커리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이거참 베이커리가 있긴 있는 겨... 우쩨~ 이를 어쩐담?
다시 생각의 여지가 있남. 안 되는 말루 다시 열심히 우격다짐? 하며 케이크가 안되다면 혹시 캄보디아 식으로 생일 축하해주고 싶은데 어쩌냐고 말하고 나니 그가 또 한참을 안보이더니 나를 어느 모토 기사 같은 이에게 이끈 것이다. 내 발음이 엉망인지 아님 뭐가 문제인지 그 모토기사 말을 알아 먹고 모이라는 친구에게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고 전한다.
큰 것은 12$정도 작은 것은 8$정도라고 한다. 그리하여 식후라 작은 걸루 사다 주라구 부탁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빈손으로 돌아와 작은 게 다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누가 다 먹나 싶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지 그래 큰 걸루 사 주라구 또 부탁... 잠시 후 케이크에 쓸 이름과 날짜를 적어 주라는 것과 필요한 것을 요구해서 이니셜 이름과 생일과 나이만큼의 초를 부탁했다. 30번째 생일이라 30개의 초가 되냐고 말했다가 다시 미안해서 큰 걸루 3개만 부탁했다. 우리가 모토기사와 약속한 시간은 8시라 고하자 당황스러워 하다가 최대한 시간을 맞춰보겠다면 급히 사라진 모이라는 친구...
그리고 잠시 후 모토기사가 우리를 데리러 식당 앞에 오자 또 아이디어가 떠오른 재키...기사중 나이가 좀든 친구에게 가서 우리 팀에 오늘 생일자가 있는데 바쁘지 않으면 함께 하자고 제안하며 한국의 생일축하파티를 보여주겠다고 하자 좋다고 하며 조금 기다리겠다고 한다.
흐흐 이런 잠시 후 모이라는 친구는 근사한 이름과 날짜가 새겨진 베이커리 케이크와 초를 30개를 상기된 얼굴로 준비해서 두손으로 나에게 건네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시골장터의 선국밥 집같은 곳에서 이런 극진한 대접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불끈 달아오르는 것은 왜일까 내가 너무 오래도록 친절에 익숙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흐흐흐).
케익값을 치르고 다시 떠나기 전에 들리겠다고 하고서 숙소로 돌아와서 20여명의 모토기사와 우리 팀이 합류해서 멋지고 거대한? 파티를 가졌다. 그리고 떠나기 몇 일전 그 식당에 다시 들려 또한 번의 만찬을 하고서 그에게 나의 주소를 일러주었지만 아직 연락은 없다. 하지만 어디선가 다른 하늘아래서 열심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있을 모이이라는 친구가 보고싶어진다.

가슴을 열어라 - 모두가 당신의 벗이 될 수 있다 :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 패스[peth]
아마도 이번 여행의 성공은 첫날 저녁 만찬을 함께 했던 드림팀[가칭]... 경주에서 오신 스님과 초등학교교사, 중등교사, 베트남어학교 대학원생과 동생 컴퓨터학과 초년생 그리고 재키를 포함한 6명의 만남 각자 갈 길은 달랐지만 비슷한 날 만나서 3일을 함께 하며 마지날인 3일 투어일정을 2일루 거의 마치구 3일째 날에는 무언가 특별한 계획으로 인근의 유치원과 중고등학교[쥬니어하이스쿨]을 들리는 것을 일정에 포함했다. 물론 북쪽 반티아이 쓰레이를 다녀오는 과정에 현지인 들의 집을 들리는 것 두 좋았지만...시장에서 구입한 조금의 과자를 유치원에 전해주고나서 다음으로 들린 중고등학교 일본인이 지어준 건물에서 공부하구 학교 이름 앞에 일본[JAPAN]이라는 이름이 눈에 뛰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관심이 쏠리는 곳은 학교의 시설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 이었다. 학교의 도서관이라는 곳을 소개받아 가보니 문은 굳게 닫혀져 있고 시설과 도서보유량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구 보유한 도서도 현지 어인 크메르어로 된 먼지가 수북 내려앉은 책 몇 백 권이 전부였다. 이를 뒤로하고 나와서 안내를 맡았던 영어교사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자 스토리 북이 덕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 기회를 만들어서 책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한가지의 질문을 덧붙였다. 혹시 학교에서는 영어 외에 어느 언어를 가르치냐고 물었다. 불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왜냐는 질문에 정부의 시책이라고 말한다. 왜 실질적으로 필요한 일어나 한국어는 가르치지 않느냐고 타박을 했다. 그는 정부가 주는 녹을 먹고 살뿐 다른 권한이 없는 듯 보였다.
하여 다시 혹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 있냐는 질문에 패스라는 19살의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을 소개해 주고 나서 자신의 오토바이로 그 친구가 살고있다는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학교에서 10분 거리의 외진 곳에 2층의 전통가옥에서 20여명의 대가족이 살고있었다.
잠시 20여분간 그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구 집에 방문한 의도를 전했다. 이 친구를 돕고 싶다는 의사를...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지금껏 했던 여행과 차이가 있다면 나를 채우는데 급급했던 여행을 나를 돌아보고 내 속에 내재된 다른 나를 보여주는 기회를 내게 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럽다. 이렇게 잠시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숙소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약속시간인 4시에 잠시 일이 생겨 시장에 다녀와 보니 패스라는 학생이 다녀갔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시간을 못 지켜서 이걸로 인연이 끝이구나 했지만 패스는 5시 다시 숙소로 찾아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식사를 하게 되고 자연스레 일하고있던 형제들-5형제-이 하나둘씩 패스의 집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왔고 먼저 둘째형[현지 가이드]과 인사하고 대화하고있자 다음은 셋째형[현지 택시드라이버]이, 그리고 잠시 일이 있어 다시 내가 머무는 숙소에 다녀왔다. 집에 들렸을 땐 넷째형[현지 대학생]이 나를 유창하고 클리어한 영어로 맞이했다.
참 다정하고 맑은 집이다 는 느낌, 큰형[프놈펜에서 사업을 한다는],아버지는 소개받지 못하고 조금은 넉넉한 풍채에 역시 가무잡잡한 피부의 우리네 어머니를 만났다. 영어로 물론 인사를 공손히 하였지만 알아듣지 못하자 식 웃자 어머니도 옆에서 통역해주는 패스의 말을 듣고 환한 미소로서 화답한다.
아주 화목해 보이는 집에서의 저녁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다시 늦은 10시게였을까 패스가 공부를 하러간다고 한다. 물론 언어공부겠다 싶었다. 다름이 아닌 옆집에 사는 헤잉이라는 학교의 영어선생님이 패스와 같은 또래의 가정형편이 되지 않는 친구들과 5명이 교실이 아닌 선생님의 집합 테이블에서 자리를 하고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와 테이프 레코드와 옥스퍼드에서 나온 영어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하고 우리가 도착할 즈음엔 거의 수업이 끝나는 분위기였다. 아니 선생님이 나의 의도를 아셨는지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친다며 방문한 손님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과 인 사후 그들이 영어 외에도 한국어와 일본어를 생계를 위해, 패스와 한 여자아이는 학교진학을 위해 공부한다는 자신의 소견을 말하였다. 전체적으로 많은 외지 사람을 가까이서 접하지 못한 듯 조금은 서먹서먹했으나 이를 의식한 선생님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해 주었다. 이를 놓칠 새라 재키의 일장연설은 시작되고 1시간 여 동안 아는 영어를 모두 이용하여, 우리의 역사와 캄보디아의 역사를 비교하며 공통점을 찾고 공감대를 형성한 후 ,다시 나의 유년시절이야기며 여행이야기를 하자 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넘쳐나기 시작하고 나의 닉네임이 만들어진 유래를 이야기하자-"재키 찬이 나의 형인데 나는 그를 가끔 만난다고 하자 눈이 동글 해졌구 ...점 점 점 ..키키 영화관에서[in the movie..]"라고- 박장대소를 떠들이고 그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1시가 다 되어갔다. 모두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선생님에게 영어수업을 듣는 부지런한 주경야독하는 착하고 부지런한 친구들 이여서 나의 마음을 더욱 동[動]하게 했다.
그렇게 "재키 잘 자요!"인사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들은 친해졌구. 지금도 열심히 서로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나는 귀국하자마자 그들을 위한 마음의 발로로서 자연스레 동대문 남대문을 오가며 그들에 보낼 마음의 선물이며, 책과 노트 등 약간의 학용품과 구하기 힘들고 비싸다는 한영/영한사전을 몇 권사서 야학영어교사인 헤잉과 나의 서포터 하는 패스와 그 친구들에게 캄보디아에 들어가는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 흔쾌히 무거운 짐을 그들에게 전해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이번의 만남은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사치스런 사고와 오만한 행동으로 일관했던 모든 것들에 일침을 가해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울 뿐이다.

학생을 너무도 아끼는 야학 영어선생님 - 헤잉[heung]
누구나 학창시절 존경하는 은사가 있고 시간이 지나고 그분들의 가르침을 나이 먹도록 간직하기 마련이다. 척박한 현실의 캄보디아에도 우리의 은사님과 같은 분이 있어 소개할까한다.
그를 만난다는 것 여러분도 다 알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로 말이다.
나에게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만을 가르치는, 나와 학생들을 단지 연결시켜준 것만이 아닌 나의 인생[여행]에 변환 점을 일러준 고마운 분이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항상 바보끼리 있어도 선생이 있다고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라 할지도 모를 만남이지만
우리의 만남은 운명의 화살처럼 극적이었다.
만약 다른 영어가 되는 선생님이었다면 학생의 집까지 데리고 가서 그를 나에게 소개시켜주었을 까하는 생각...그는 정말로 학생을 끔찍이 아끼나 보다.
내가 캄보디아 학생을 아끼는 것보다 갑절은 말이다. 나도 그런 중고등학교때 은사가 있지만, 설마 했던 곳에서 마주친 짧은 만남 속에서 그와의 만남은 나의 또 다른 의미를 나에게 부여한다,
그렇다 사람이 사는 곳은 다 같다는 것 단지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서로를 배척하고 때론 못살게 굴고 말이다, 우리이제 손을 잡아요.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보아요. 먼저 ....인생의 변화와 나도 모르게 상승하는 자신의 일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꺼에요~~키키 재키가 보장합니다.

사람이 좋아서 떠나지 못하는 씨 엠립의 늦깎이 모토[오토바이택시]드라이버 - 비쳐드[vichet]
히히 이 거참 누가 사람을 싫어하는 이가 있남 씨엠립에 머문 지 3일째되는날 자므른이라는 기사가 바쁘다며 2일간 모토리더가 커무잡잡하구 조금은 듬직해 보이는 친구 비쳐드로 바뀌어있었다. 영어도 조금 떠듬떠듬했지만 자므른과 나와 나이가 같아 말이 잘 통해서 역시 나의 전담 드라이버로 함께했다.역시 자므른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첫날 파티에서 내내 슬픔과 절망으로 자신의 나라의 현실을 나에게 하소연했다.1년에 300$가까이 세금을 내야한다며..넘 힘들고 자신의 나라엔 희망이 없다면서 눈물이 눈가에 고여있는걸 본 재키는 결심했다,
이들에게 무서운 건 '지독한 현실의 가난'이 아닌 '조금의 따스한 관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므른에게 보인 것처럼 머무르는 동안 그들을 다그쳐서 한글공부를 함께 하구 숙소에 돌아와 쉬는 시간외에는 열심히 목이 쉴 정도로 매연과 먼지가 날리는 도로 위에서도 마구 지껄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언가를 일러주고 그걸 빨리 이룰 수 있도록 힘차게 달렸다.
그렇다 자므른도 비쳐드도 앙코르유적이 있는 도시에서 밥벌이를 하는 관계로 관광 관련 일을 하구 주로 고객이 외국인이다 보니 당연히 자국어 외에 언어를 섭렵하여야하는 현실 앞에서 부지런히 야간 학원[영어/일어는 5$,한국어는 15$]을 다니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구
이를 알고서 가만히 있을 재키가 아닌 것 아시죠..키키
밤낮 없이 초등 학교때 기억을 되 내이며 호주에서 한번 가르쳐본 경험까지 발휘하여 한글학당을 열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씨엠릿을 떠나는 날이 되었고 비쳐드와 함께 씨엠립을 돌며 시장구석구석을 구경시켜주고 내가 서점에 가자고 해서 그에게 영어사전을 사주었던 것이며 이를 받고서 묵둑둑한 표정에 약간의 입가의 미소만으로 감사를 표현하던 친구 비쳐드.
지난 시간이 마치 오랜 시간 함께 하던 친구를 두고 떠나는 아니 정든 학교 동창들과 이별하는 듯한 만감이 교차하며 모처럼 만에 눈시울이 시근해졌다 .차마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아니 한국인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고 이것은 우리 인연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다짐을 하며 발길을 방콕으로 돌렸다. 다시 한번 꼭 여행 오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그리고 다시 들렸을 때 내가 사준 사전을 하루에 한 장씩 먹으라고까지 일러주었다. 그만큼 그들이 언어를 배워야하는 이유는 절실하다는 걸 알기에...비쳐드가 나에게 너는 20여년을 영어교육 받았지만 자신은 고작 영어를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현실을 비하하자 이렇게 나는 타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넘 했나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다. 하지만 너희는 현장에서 싸우기 위해 사용하는 실탄이지만 난 단지 좀 편해보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배운 것이라 그리 절실하지 않다며 변명 아닌 변명으로 일축했다.
"친구야 내가 다시 들렸을 땐 한국말도 영어도 잘해야해 아님 나 너 더 이상 안 만날 거야!!"이렇게 협박 아니 협박을 하며...키키

꿈을 실어 나르는 모토[오토바이택시] 드라이버 세 친구 -자므른 /김 세진[cass] /완[wan]
첫날밤의 인연으로 떠나는 날까지 버스 옆에 서서 촉촉이 젖은 눈에 잊혀지지 않는 저 타오르는 희망의 불꽃으로 나의 떠남에 대해 화답하던 그들 -움직이는 ,꿈을 실어 나르는 캄보디아의 살아있는 민간외교관 자므른, 카스, 그리고 완.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느꼈다. 너희같이 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과 너희가 하는 만큼은 반드시 세상은 바뀔 거라는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남기고 ...
아침이면 어김없이 "재키형님 잘 주무셨어요?"하며 나보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지 아는 너희들이 있어 난 캄보디아가 좋고, 너희 나라의 미래와 너희의 희망과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나는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이거 한참 걸렸다.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너무도 참담한 현실과 노동근무 조건 앞에서 나도 뭐라 말을 계속이 을 수 없었다.
친구들아 보고싶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우둔한 나 자신 앞에 너희는 하기 싫어도 하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커다란 깨우침을 준 또 다른 선생님 자므른, 카스, 완
열심히 살자구나 나도 너희만큼은 아니어도 열심히 노력할 테니...
우리가 도와주마 당연히 먼저 앞서가는, 얻은 이가 해야할 일을 내가 재키가 도와주마.
키키 무슨 편지 쓰는 것 같네...쓰다보니!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지금 행복한걸....


씨엠립에서 만난 친구들의 기록

에필로그
jacky's 10th anniversary world travel[from 1993~to2003]
이렇듯이 시간은 흘러서 벌써 길을 떠나기 시작한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참 많은 사건들
시간과의 몸부림,
그리고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
.........

이제 다시 한번 지난 시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93년 여름 43도가 넘는 장렬 하는 태국의 파타야, 푸켓으로의 단순 "졸업 여행"
@95년~96년까지의 동남아[대만/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에서의 비즈니스 컴퓨터 전람회인 컴덱스 쇼 관람차 3~4차례의 "목적 여행"
@96년 11월부터 97년 10월까지의 조금의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던 1년여간의 일하며 여행하며 열나게 공부했던 호주 ,뉴질랜드에서의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로서의 "자유여행"
@97년 11월 냉혹한 IMF체재하의 다시 돌아온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나라 대한민국으로의 여행 .....

@97년 다시 시작한 학업에 대한 도전은 99년 결실을 맺고....학기 중 전문분야에 대한 나의 결여된 부분을 긁어주었던 안경사 재키로서, 교수님들과 친구를 동반한 인솔자로서 가게 된 일본 동경에서 펼쳐진 안경 박람회[IOFT 99] "가이드[인솔자]투어"
@93년 이후 매년 한번씩 1주정도 오가며 심신의 여유를 내게 안겨준 태국에서의 환상적인 파라다이스 같았던 "리필 여행"
@앞에서의 성격과는 조금 달랐던 2001년 겨울에 떠난 직업전선(?)에서의 유럽 "환상여행"...환상[헛된 상상?..가이드로서의 재키]

여기 마지막 내 인생 여정 중 계속되어지는 여행은 갖가지 종류의 여행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여행이란 녀석은 내게 무엇인가?
나는 수 없는 질문과 자답을 내리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찾고자했던 처음 여행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다음 여행때 던졌던 질문....'무엇을 위해 아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문 '
그리고 최근에 던진 질문 ....'나는 행복한가?'
+++++++++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며 얻고자 발버둥치던 것들이다.
하지만 다 얻지도 그리 잃은 것들도 없다.
단지 그러는 과정에서 깨우친 깨달음이 있다.
여행은 어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내가 갖고자하여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그 보이지 않는 위엄과
때로는 인자한 미소로 나를 감싸안으며 반기는 그 정겨움으로...
나는 다시 한번 이 모든 일련의 것들에 대해 앞으로도 쭉 노력 할 것이다,
내가 여행이 지겨워 지구 더 이상 떠남에 의문을 갖지 않을 때
어느 한곳에 움을 뜨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이 모든 사랑과 기쁨과 정겨움을 되돌려 줄 것이다.
여행이란 친구는 그렇듯 내게 너무도 소중하다.
앞으로 또 하나의 10년을 위해 준비 할 것이다...베 품의 여유를....

재키. 2003.jan.25

 

글/사진 : 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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