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담사 여정
눈
속에 파묻힌 사이다 병을 상상해 보라. 아주 맑고 투명한, 유리나 크리스탈로만 이뤄낼 수 있는 초록빛. 그 빛이 백담계곡에 있다.
나룻배는 물만 건너면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는 행인을 기다린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은 기다림의 세월 속에 나룻배는 하루하루
낡아간다. ‘역사 바로잡기’라는 물을 건너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은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지쳐간다. 늙어간다.
백담계곡 아주 커다란
그림을 사방에 둘러치고 돌린다. 너무나 커다란 그림인지라 아무리 돌려도 같은 그림은 나오지 않고 새롭다. 그 속에 서 있는 당신은 아무 힘
들이지 않고 풍경 속을 걷는다. 백담계곡을 따라 가는 길에서는 내가 아니라 풍경이 걷는다. 누군가 아주 커다란 막대를 꽂아 놓고 조그마한
‘나’를 가둔 후, 막대를 천천히 부드럽게 돌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눈처럼 하얀 바위, 형용할 수 없는 맑은 물줄기는 이 세상에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이다병이 보여주는 투명하고 맑은 초록색이라 한다면 가장 적절할 듯하다. 깊은
소는 푸르거나 검을 법한데, 너무나 맑은 깊은 소는 그 끝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드러난 바위는 새하얗게, 물에 잠긴 바위는 이내 자신의
색을 잃고 초록빛으로 변해 버린다. 얕고 깊은 물의 깊이를 빛깔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한다. 그냥 모두 투명한 사이다병 빛깔이다.
계곡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걷다 보면 한켠에 가득 메운 숲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들리는 산새소리-, 주황, 갈색 옷을
입은 참새만한 아주 조그만 새다. 조그만 몸에서 나오는 소리는 얼마나 청명한지, 온 산을 울리고, 물소리와 어울리며, 발자국 소리와 삼박자를
이룬다. 숲에서 향긋이 나는 흙내음도 조화를 이루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만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이뤄진 길이었다면….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는 7km. 4km는 셔틀버스로 나머지 3km는 걸어서 올라야 한다.
공사차량, 사찰차량 그리고 매표소 직원에게 ‘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억지 배포를 부릴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4km 셔틀버스 구간을 걷는 이도 종종 눈에 띄지만 대부분 등산객이다. 일단 셔틀버스 왼쪽 좌석에
앉아 백담계곡의 아름다움을 맛본 후, 걷는 3km 구간 동안 진수를 느끼면 된다.
90년대 백담사의 변화 산
속 정취와 맑은 공기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 보면 원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전나무의 울창한 모습에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때쯤,
일주문을 볼 수 있다. 예전, 일주문도 없던 조그만 가람 백담사였다. 올해 말까지 완성한다는 일주문은 어느새 어엿한 모습이다.
일주문 그리고 수심교(修心橋)를 지난다. 마음을 닦는 다리라…. 홍수가 날 때면 몇 번씩
떠내려 가던 초라하고 볼품없던 다리가 깨끗하게 단장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도로는 예쁘게 포장됐고, 사찰은 소규모에서 중견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의 흔적만이 있었을 때, 아주 작았던 가람 백담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부끄러운 침묵 계곡을 경계
삼아 사찰 입구를 알리는 듯, 백담사에는 사천왕상도 담장도 없다. 그나마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판의 ‘전두환 前 대통령이 ***기도를 봉행하면서
2년간 은거한 곳이기도 하다’라는 문구는 동전으로 긁어 놓아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무슨 기도를 했다는 말인가. 그가 기거했던 방은 그대로
재현돼 보존돼 있고, 은둔 당시 기도하는 모습, 장작 패며 일하는 모습 등은 사진으로 남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이곳
화엄실은 만해가 머무르며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이기도 하나, 만해의 흔적은 없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태운 부끄러운 침묵만이 있다.
|

|
|
만해기념관 |
만해 한용운 백담사
유명세의 혜택을 가장 톡톡히 받은 이를 꼽으라 하면 단연 만해를 추천한다. 추앙 받는 그의 민족정신이 이처럼 빛을 발할 때가 있었던가. 예전,
이곳 백담사에 만해의 흔적과 정신만이 떠돌았지만, 지금은 기념관, 흉상, 시비를 갖춘 실체를 전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실체
역시 유명무실 한 듯. ‘담당스님이 목욕 가서 기념관 문을 닫은 것 같다’는 스님의 말이 왜 이리 슬플꼬. 명심! 꼭꼭 잠겨 있는 만해당도 만해
기념관도 관광객이 몰리는 계절에 찾을 것! 만해 기념관 내에는 만해의 불교사상, 일대기, 유품을 비롯, 사진과 글을 전시하고
있다.
여행메모 서울에서 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양평에서 44번 국도로 바꿔 탄다. 한계리 민예단지 휴게소 앞 삼거리에서 한계 삼거리, 외가평 삼거리를 지나 우회전 하면 매표소
입구. 매표소 입구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는 20분에 한대씩 다닌다.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백담사까지 3km 구간은 40분이면 충분하다.
운이 좋다면 백담계곡에서 정기적으로 방류해 기르는 열목어를 구경할 수 있다. 1급수에만 산다는 열목어는 백담계곡의 맑기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지표. 마침, 백담계곡을 찾았을 때 부부동반 그룹의 탄성을 들을 수 있었다. ‘열목어다!’.
계곡 바람에 얼은 몸 백담사 차 한잔으로 녹여보자. 대추차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백담다원에서는
치커리차, 대추차, 상황버섯차를 판다. 2천원~4천원. 셀프 서비스로 돈 역시 알아서 내야 한다. 중광스님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으니, 차와
작품, 자연 모두를 즐겨보길. 수심교 옆의 나지막한 다리 옆에는 사람들이 쌓아 놓은 예쁜 돌탑으로 가득하다. 마음을 닦으라 했더니,
소원만 빌고 가는 사람들…. 이곳 혹은 수심교로 돌아 나와 매표소 반대길로 향하면, 그 이름도 유명한 수렴동계곡, 대청봉이다. 셔틀버스
기사 왈 ‘수렴동계곡의 맑기는 백담계곡에 비할 수 없다’ 하니 여유로운 이라면 꼭 방문해 보길. 대청봉은 12.9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