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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
창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태국의
꼬 창을 처음으로 찾은 건 1999년 12월 30일이였고, 그
이후로도 매번 한번씩 찾아가는 섬이 되고 있다. 방콕에서
버스로 5시간, 쏭태우를 타고 선착장까지 30분, 다시 배를
타고 섬까지 40분, 섬에 도착해 쏭태우를 타고 해변까지
가는 길은 그리 가깝지만은 않다. 더군다나 밀레니움을
앞에 둔 시점의 태국 섬들은 어디건 북적거릴테이고, 태국에서
일하고 있던 나로서는 잠깐의 시간이 생겼고, 방콕에서
그렇게 새 천년이 바뀌는 걸 바라보고 싶진 않았다.
섬에 도착해
생각대로 잘 곳이 없었던 나는 텐트를 빌려야 했고, 야자수
가득한 섬에서 수영을 하며, 그물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며,
세상의 흐름과는 아무 관계없어 보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2월 31일의 밤에도 어둠이 들이우며, 여행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일찍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들떠있던
세상의 설레임과는 다른 시간이 멈춘듯한 내 기억속의 2000년을
맞이한 것이다.
5일정도 섬에서의
휴식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려한다. 한
곳에만 있었기에 그 곳에 오게 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이다.
움막살이
하는 의사
내게 텐트를
빌려 준 곳은 크롱프라오 해변의 KP 방갈로. 아침을 눈을
뜨면 수영을 하고, 아침을 먹고, 잠을 자고, 책을 보고,
심심하면 다시 수영을 하고, 해변을 걷고, 과일 쥬스를
마시고, 여행자들과 노닥거릴 수 있는 곳이다.
섬의 음식은 상대적으로 평균을 믿돈다.
내 입에 익숙해진 태국 음식 맛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숙소에서 가까운 현지 주민들이 사는 곳을 가면 직접 잡은 생선이나 새우를 요리해주는
곳이 있는데, 다른 곳 보다는 맛이 좋지만 수준급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다. 여느날도 오후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얼굴을 본적이 없는 서양인 한명이 다가온다. 합석을 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자 같아 보이진 않지만 여행자가 아닌 외국인이
이런 섬에서 살 리도 만무하다는 생각이들었다.
예상대로 그는
내 자리에 합석을 했고 식사 대신 음료수 한병을 시킨다. 이런 저런 말을 하더니 들고
다니던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며 마음에 드는게 있으면 하나
사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림에는 600밧, 천 밧 이런식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는데 꼬 창을 배경으로 그린 수채화다. 그림 수준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는 느낌을 받지만 난 그림을 살 마음도 없었다.
그림 설명을
열심히 하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나를 설득하려는지 그가 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난 그림보다 그의 삶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데 왜 그림을 팔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의 국적은
프랑스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독일에서 주로 생활을 했다고 하는
그는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을 갖고 있다. 어쩌다가 꼬창에 오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여행하다 마음에드는 곳이 였기에 이곳에 장기체류하는지도
모른다.
꼬창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간은 벌써 3년이 지났다고 한다. 어촌 마을에서 2년을 살았고 현재는 폭포가 있는 정글 속에서
현지인 집을 빌려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 현지인 집의 수준이 어떨지 난 상상이 갔다. 그가 한달에 렌트비로 내는 집세는
700밧(2만원 3천원)이다. 그림을 하나 팔면 한달 방값은 나오는 셈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도 아무 욕심없이 저렇게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는
원하면 언제든 자신이 속한 사회인 프랑스로 돌아가 의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더 들어 삶을 관조할 나이가 되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는 그림을 한번 더 보여주고 내게 살 것인가하는 의향을 타진해
보지만, 난 여전히 무반응이고 그는 그림을 모두 접어 별
반응없이 자리를 떳다.
여행과
일과 종이접기
그렇게 하루
이틀의 시간이 흘렀는데, 아침을 먹으러 느즈막히 식당에 들어서니 그 동안
안보이던 새로운 여행자가 도착해 있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다. 특히나 방갈로 주인 아들딸들이 모여 뭔가에
열심이다 익숙한 얼굴의 여행자들도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따라 조심스레 손을 놀리고 있다.
오늘 새로이 도착한 여행자는 종이접기가 직업인
사람이다. 종이학이나 배를 접는 기본적인 접기가 아니고, 2m가 넘는 대형 종이를 이용한다거나 코카콜라 상표를 이용해 대형
별을 접는다거나 하는 전문 종이접기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종이를 들고 다니고,
사람들에게 종이접기의 기본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특히나 꼬마들에게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동양의 작은 마을에선 그의 존재는 외모만큼이나 색다른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도 역시 프랑스 사람이었고, 네팔에서는 방송에까지 나왔다고 했다. 그가 들고
다니는 통에 들어있는 종이로 만들어진 이쁜 동물들은 판매되기도
했다.
방갈로 집 꼬마들과 다 큰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종이를 한 장씩 펴들고 그를 따라 종이학을 접는다. 어떤 선을 접어야하고 어떤 선을 펴야하는지를 세밀히 설명해주면 종이접기 책자를 보는 법도 설명하지만 가장 신나 있는 건 태국
어린이들이다. 종이 접기가 하나 완성되면 자연스레 태국말로 이름을 말해주게 되면 현지언어를 한두 개씩 배워나가는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종이접기 전문가는 외국어로 다양한 종류의 동물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여러명이 완성한 종이학이 한두 개씩 완성이 됐다.
모빌을 만들 듯 실에 한 개씩 꿰어 기념으로 식당 앞의 작은 나무에 걸어놓고
모두들 흐믓한 미소를 짖는다.
요리하며
세상을 여행하며
1년 후 꼬 창을 다시 찾았다.
한국에 친한 친구가 왔기 때문이다. 재키는 오랜동안 한국에
있었다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언제나 쾌활하고 열려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꼬 창은 우기가 끝나갈 무렵으로 상대적으로 여행자들이 적은 시기다. 보트를 타려는데 비가 억수로 내린다. 우기임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쏭태우를 타고 여행자는 모두 4명인데,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행자가 있다. 그는
별다른 말도 없고 뭐라고
물으면 그저 간단한 대답을 할뿐이지만 매우 호감이 가는 녀석이다.
영국이서 왔다는 데이빗(David)은
캄보디아에서 일을 마치고 태국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얼굴, 행동, 언어에서 사람에 대한 호감을 끌게 하는 친구였다. 꼬 창에 도착해 숙소는 다른 곳을 정했지만 저녁시간에 맥주한잔하자며
헤어졌다. 정말로 저녁 먹고 나면 데이빗은 우리가 묵던 숙소의 레스토랑을 찾아와
서로 맥주 한잔을 매일같이 기울였다. 활달하거나 설치는 법이없는 언제나 조용한 녀석이다.
프놈펜에서 3개월간 일을 하고 태국-싱가폴을 거쳐 호주에 가서 다시 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요리사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은하는 헤드 쉐프 Hrad Chef로 요리사 10명과 함께 일을 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양식 뿐 아니고 웬만한 동양요리에도
능하다는 그에게 주방이 있으면 요리를 부탁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다. 남미는
물론이고 레게의 본고장 자메이카를 포함한 캐리브 해안의
섬들에서 일을 하며 여행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장난을 칠겸 데이빗에게 말을 건넨다. '너랑 나랑
어찌보면 하는 일이 같다. 하지만 넌 음식을 만들고 난 손님을 데리고 가 음식을 맛본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일이지만 일에는 차이가 있다." 내
일이 어찌보면 데이빗보다 쉬워보이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요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도 난 잘 알고 있다. 주방일이 힘들지만 그
만큼 요리도 하나의 예술이다. 맛을 내기 위해 맛있게 보이기 위해 요리는 여러모로 정성이 필요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 역시도 행복한 일이다.
저녁을 먹고 해변을 거닐다 마주치면 맥주한잔을 마시고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작은 바에 가서 맥주 한잔을 더 마신다. 데이빗은 언제나 마지막으로 박카스를 섞은 보드카를 한잔 마시고 자야겠다며
사라졌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좋다. 튀지도 않고 조용하지만 향기가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글과
사진: 안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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