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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기

글/사진 :
트래블게릴라 이세복
indilee@yahoo.com

 

어느 곳에나 사람들은 살고 있다. 비록 자연환경, 역사, 문화등 많은 것이 달라서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인간이기에 느끼는 행복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명의 아이들과 아내를 태우고 cyclo를 몰고 가는 아저씨의 미소 속에서, 사이공 강가를 정겹게 걸어가는 외국인 노부부의 모습 속에서, 카페에서 내게 어느 한국인이 보내준 크리스마스 카드라며 자랑하듯 보여주던 웨이터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나는 행복을 발견한다. 이곳 호치민에서도 이렇듯 행복은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 소리없이 피어 오른다. 그런 따스한 영혼의 교감 속에서 나는 오늘도 행복한 여행의 하루를 보낸다.

고마운 두 꼬마 강도

오토바이와 아오자이

장동건과 김건모

지상낙원

최고의 만찬

제임스 딘 부시맨 되다!

 

<고마운 두 꼬마 강도> - Ho Chi Min (2000년 2월 15일)

입국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기내에서 서류를 세 가지나 써서 꽤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자정이 다되서 도착했기 때문에 미리 정해둔 호텔을 찾아가는 것이 조금 걱정됐지만, 순박한 택시 기사를 만나서 Pham Ngu Lao 까지 무사히 왔다. 거리의 풍경은 늦은 시간 탓인지 한산했다. 그렇지만 역시 듣던대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았다.

우리나라의 한여름 기후처럼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들이마시니 이제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는 도중 나와 동갑인 택시 기사는 결혼해서 8살된 아들과 2살된 딸아이 얘기를 하며 연신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나이인 현재의 내 모습과 비교하니 한편으론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Pham Ngu Lao 거리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카페나 레스토랑 근처에 모여 있었고 개중에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미리 정해둔 Anh Dao Guest House 는 방이 모두 차서 할 수 없이 다른 호텔을 잡아야 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거의 모든 호텔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피곤하기도 하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아무 호텔이나 잡아야 겠다고 마음먹고 잠시 두리번 거리고 있는 사이, 열 두세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다가왔다. 족히 호객을 할거라는 예감이 적중이라도 하듯 한 아이가 서툰 영어로 방을 찾느냐고 물어왔다. 두 아이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호객꾼중에서 제일 어렸다. 하지만 반소매 티와 반 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은 그들의 모습은 어린 나이 답지 않게 아주 여유로워 보였고 약간은 능청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생각에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따라오라는 몸짓에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고 해서 두 아이를 따라 나섰다. 얼마안가 어둡고 비좁은 그래서 약간은 음침한 느낌마저 드는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가는 내내 둘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번갈아 이것 저것 물어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무래도 누군가 배낭을 자꾸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퍼를 만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지퍼가 조금 내려가 있지 않은가! 두 놈중 한 녀석이 말을 걸고 있는 사이에 다른 녀석이 지퍼를 내린 것이 틀림 없었다. 아직 지퍼가 조금밖에 내려가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없어진 물건은 없는 듯 했다. 화가나서 뒤에 있는 녀석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 당황하거나 어색한 모습은 전혀 없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게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없어진 물건이 없기도 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따끔하게 혼내주려는 마음을 접고 나도 그냥 웃어 넘겼다.

어쨌든 그 두 꼬마가 이미 닫힌 호텔의 문을 두드려 주인을 깨우고 그래서 쉽게 방을 구할 수 있었으니 한편으론 고마웠다. 대신 애초 주려고 마음먹었던 소개비는 두 녀석에겐 안된 일이지만 안주었다. 방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2시. 여행오기전 나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뭐 여행을 온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여행 역시 무사히 끝마치기를 바라며, 내일부터 펼쳐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들을 기대해 본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어서 고마운 두 꼬마 강도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온다. ^^;

 

<오토바이와 아오자이> - Ho Chi Min (2000년 2월 16일)

지금 시간은 9시. 어제 묵으려고 했던 Anh Dao Guest House 의 4층 테라스에 앉아 Tiger 맥주로 목을 축이고 길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이 글을 적는다. 가슴과 배 부분에 약간의 두드러기가 생겼다. 아무래도 점심으로 먹은 베트남 국수가 말썽을 일으킨 듯 싶다. 인도를 여행할 때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우째 이런일이! 나이 탓인가? 원래 약을 싫어하는 체질이기도 하지만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아 약은 사먹지 않았다. 내일이면 괜찮아 지겠지.

지금 이곳은 어제 묵었던 Bi Hotel 에 비하면 가격은 5 달러나 싸지만(double-US13$) 시설은 형편없다. 화장실과 방의 청결도도 많이 떨어지고 침대만 달랑 있을 뿐 담요도 없고 에어컨을 쓰려면 1불을 더 내란다. 역시 가이드 북을 백퍼센트 믿을건 못된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했다. 하지만 이 호텔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De Tham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호치민에는 배낭 여행자를 위한 숙소 밀집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 옛 프랑스 식민지의 잔재로 인해 프랑스인들이 주로 찾는 District 1과 차이나타운 근처에 홍콩, 대만 사람들이 주로 묵는 Chonlon 지역, 그리고 지금 내가 있고 그 나머지 외국인들이 찾는 Pham Ngu Rao 이렇게 세 곳이다. Pham Ngu Lao에는 네 블록에 걸쳐 약 100 개의 조그만 호텔이 밀집한 곳으로 내가 지금 내려다 보는 De Tham 거리가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거리는 오토바이, cyclo,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리고 있다. 30도를 오르내리던 한낮의 기온은 어느정도 수그러 들었지만 그 속을 오가던 인파의 열기는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호치민은 아마도 지구상의 그 어느 곳보다 오토바이가 많은 도시일거다. 온거리가 오토바이로 물결치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면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사이공강의 모습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룰 것 같다.

나라마다 국기와 국가, 국화등 그 곳을 대표하는 상징이 있듯, 도시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소리를 정하라면 호치민은 당연히 오토바이 소리가 될 것이다. 낮에 4시간 정도 호치민 시내를 걸어다니는 동안 오토바이 소리에 귀가 어찌나 아팠는지 다리 아픈 건 느끼지도 못했을 정도니까. 수많은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나로 합치면 - 가보지는 않았지만 - 이구아수 폭포소리에 버금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귀가 아픈지 오토바이 소리를 피하려고 가이드 북을 뒤져 Cong Vien Van Hoa 공원을 찾아 갔지만 워낙 작은 공원이라 오토바이 소리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공원에서 잠시 쉬는 동안 울타리 건너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공을 차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네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이 너무 친근하고 정겨워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내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어울려 해가 질 때까지 공을 차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모습들.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베트남이 20세기에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겪은 나라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지금의 그 나이 또래에 격은 전쟁의 참혹함은 모를 것이다.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없기를 그리고 그 아이들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아오자이!

아! 이뽀.

오! 이뽀.

자꾸 봐도 이뽀

이~~~뽀!

베트남에 오기전 기대한 것 중의 하나가 아오자이 입은 여자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몸에 밀착되어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그 옷! 비라도 오는 날이면 완벽한 실루엣을 만들어 내는 옷 같지 않은 옷! 영화에서 비추어진 아오자이에 대한 인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기쁨이 아니던가! 그런데 실제 이 곳에 와서 보니 실망스럽게도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몸매는 역시 날씬했다. 그리고 아오자이는 대부분 흰색이었다.

내가 느낀 베트남 여자들의 특징은 이렇다. 작은 얼굴, 갸날퍼 보이는 듯하지만 충분한(?) 볼륨, 동양인 치고는 긴 하체. 그래서 그런지 아오자이는 서양 여자들이나 다른 아시아 나라의 여자들한테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난 여성편력 같은건 없지만 선입관 때문인지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은 다 이뽀 보인다. ^^;

 

<장동건과 김건모> - Ho Chi Min (2000년 2월 16일)

이 곳에도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음을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커다란 광고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 나가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 나라 거리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광고판을 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은 내가 다녀본 나라들 중에서도 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곳 호치민은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도 깊숙이 파고 들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Pho Quoc 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하기 위해 여행사에 들렸을 때 일어난 일이다. 여행사 직원이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대뜸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가수 얘기를 꺼냈다. 처음엔 알아 듣기 힘들었는데 잘 들어보니, 그 사람은 바로 장동건! 그런데 장동건이 가수라고! 사실 장동건이 노래를 부르는걸 몇 번 본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배우, 탤런트로 더 인지도가 높지 않은가. 그런데 이 곳에선 가수로 알려져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아가씨왈 자기뿐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베트남 소녀들이 장동건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Cong Vien Van Hoa 공원에 갔을 때의 일인데, 더운 날씨에 많이 걸어서 그런지 목이 말라 음료수를 한 병 사서 벤치에 앉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어디선가 몹시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 멜로디를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야외 롤러 스케이트장이 있었고, 서 너 명의 젊은 이들이 능숙한 솜씨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그 노래는 바로 김건모의 한때 무지 잘 나갔던 '잘못된 만남' 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노래가 한국어 그대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건모씨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흐뭇해 할까. 잘못된 만남의 리듬에 맞추어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충격 반, 반가움 반으로 나도 한동안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마지막으로 한국 TV 드라마가 이곳에서 대단한(?)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저녁에 호텔에 들어서는데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 이 호텔은 1층이 프론트겸 주인집 거실임. - 열심히 TV를 보고 있길래 뭔가 하고 보니까 한국 TV 드라마였다.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였다. 어쨌든 이곳에 와서 한국 TV 드라마를 보게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었나!

나라가 부강해지면 그 나라의 물건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같이 전해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교류가 활발하다는 것도 한 몫 했겠지만. 그러나 내 생각엔 베트남 사람들의 정서가 우리네와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TV 드라마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지상낙원> - Phu Quoc (2000년 2월 17일)

지금은 9시 10분전. 이곳에서 시간은 무의미하다. 초록의 코코넛 나무들과 희디 흰 백사장, 옥빛 바다와 그 끝에서 만나는 새파란 하늘, 이것들이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자 유일한 것이다. 파도만이 시계추처럼 오가며 회수를 늘려감에 따라 태양과 달이 뜨고 질 뿐!

사실 처음부터 이 섬이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 인줄 알고 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 여행 스타일로 봐서도 쉽게 이런 곳을 목적지로 정하지는 않는다. 가이드 북에도 이곳에 대한 정보가 워낙 적어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여행사에서 항공권을 문의할 때 상담해 준 아가씨도 그곳엔 뭐하러 가냐며 물을 정도였으니까. 그것은 이곳이 여행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사실 여행지라고 하기에는 볼거리나 숙소등이 아주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해변의 길이가 20 Km >


교통편도 그리 좋은 것이 못된다. 버스와 배를 이용하면 비용은 얼마 안들지만 이동 시간이 족히 하루는 걸리고, 비행기를 이용하면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빠르기는 하지만 비용은 많이 든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것도 짧은 일정으로 오는 이런 경우엔 늘 비용과 시간 중 어느 것을 더 절약하는 것이 현명한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이번엔 시간을 절약하기로 결정하고 항공편을 이용했지만 도착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방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공항은 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활주로는 차라리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를 좀 크게 넓혀 놓은 듯 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여행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공항 청사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해서 마치 우리나라 시골 간이 기차역을 연상케하는 건물을 빠져나오니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파란 하늘과 신선한 공기 였다. 가이드 북에 나온대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출발. 비포장 도로를 한 10분쯤 달린 후 표지판도 없는 솦속으로 들어가니 얼마후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 곳이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지상낙원!

막상 이곳에 와보니 지금은 휴가가 짧은 것이 한없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고의 만찬> - Phu Quoc (2000년 2월 18일)

지금은 9시 5분전. 오리온 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아득한 옛날부터 그래왔듯이, 밤하늘엔 그 반짝이는 빛들로 가득하고,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달 빛은 어둠을 타고 소리없이 흘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을 연출하고 있다. 부드럽고 아늑한 밤이 나를 감싸 안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품처럼.

그 아래 코코넛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이곳 Tropicana Resort 야외 테라스에서 나는 금세기 최고가 될지도 모르는 만찬을 즐기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램프가 석유 냄새를 은은하게 풍기며 동요없이 작은 심지를 태우고, 파도 소리는 여전히 정겹기만 하다. 귀뚜라미도 밤을 연주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이름 모를 새가 간헐적으로 구애라도 하듯 간절하고 애닯은 울음을 울어 대고 있다. 이 보다 멋진, 낭만적인, 아름다운, ..........., 완벽한 밤을 맞은 적이 있었던가! 시간이여 멈추어라! 이대로! 영~~~~~원히!

얼마전부터 해변가에서는 CCR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해변가 원두막 bar에서도 서 너 명의 손님들이 낭만의 밤을 즐기고 있다. 리조트라고 해봤자 수용할 수 있는 손님 수가 기껏 15명도 안될 이곳의 규모라면 투숙객들이 다 모였다고 봐도 된다.



< 뒤에서 사진 찍는 줄 도 모르고 노을에 빠져버린 프랑스 아저씨 >


그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CCR을 연신 틀어 대는 리조트의 지배인 토니다. 마흔 두 살의 나이로 미루어 보면 아마도 베트남 전쟁 때 미군들이 즐겨 듣던 것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침에는 영화에 나오는 로빈 윌리암스처럼 커다란 목소리로 'Good morning Vietnam!' 이라고 인사하던 아저씨 토니. 이런 곳에 젊은 남자 혼자와서 외롭지 않냐며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능청을 떨던 재미있는 아저씨 토니. 벌이가 시원찮아 이이들 교육이 걱정되서 내년에는 가족들 모두 카리브 해로 갈거라고 하던 착한 아버지 토니.

지금은 정말 카리브 해안에서 손님들과 밤늦게 까지 어울리며 CCR을 듣고 있는지. 어디에 계시든 가족들 모두 행복하길 바래요!

밤이 점점 무르 익을 무렵 나는 해변가 산책을 나섰다.

 

<제임스 딘 부시맨 되다!> - Phu Quoc (2000년 2월 18일)

어제는 해변에 누워 구멍을 뚫어 소금을 조금 넣고 - 이러면 더 맛있다. - 빨대를 꽂은 코코넛을 마시며 하루 종일 무라까미 하루끼를 읽었다. 과거의 여행과는 아주 달랐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20km나 되는 해변은 끊도 보이지 않고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이라고는 투숙객 서 너명 밖에 찾아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적막과 고요, 평온과 여유를 맏보기는 처음인 듯 싶었다. 현실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섬을 한번 둘러 보기로 했다. 물방울 모양으로 생긴 이 섬은 1,320 평방 킬로미터의 크기에 인구는 약 65,000 명이 살고 있으며, 1700 년 중반에는 한동안 프랑스 선교사의 근거지였으며 베트남 전쟁때는 미군들이 베트공 포로수용소로 사용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섬에 있는 마을은 서쪽 해안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Duong Dong 과 남쪽 끝에 있는 An Thoi 두 곳이 전부다.

나는 먼저 가까운 Duong Dong을 들른 후 해변을 따라 An Thoi로 간 후 섬 중앙을 거쳐 다시 Doung Dong 으로 올라올 계획을 세웠다. 리조트에서 빌린 오토바이와 손으로 그린 듯한 A4 용지의 섬 지도 복사본 한 장을 들고 드디어 출발! 웃지 못할 희극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 코코넛 나무 사이로바라본 해변의 모습 >


오토바이라고는 스쿠터밖에 타본 경험이 없고 4단 기어로 된 것은 처음 타는 것이라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비포장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아주 드물어 사고위험은 전혀 없었다.

Doung Dong 에 도착해서 점심거리도 준비할 겸 조그만 길거리 시장에 들렀다.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야채가게 앞에 멈추어서 말을 건네니 예상한 대로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땐 어짤 수 없이 만국 공통어인 손짓, 발짓, 몸짓을 사용할 수밖에.

가게는 두 남자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언뜻 생김새로 봐서는 형제인 것 같았다. 처음보는 희한한 과일들이 꽤 있었는데 - 사실 처음에는 어떤 것들은 과일인지 채소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형제중 한 명이 먹어보라는 시늉을 하길래 이것 저것 먹어보아서 과일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보는 과일들의 맛은 정말 기가막힐 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이름도 모를 과일을 한아름 사서 배낭에 넣고 An Thoi로 출발했다.

얼마를 달리니 드디어 좌측으로 야자수가 늘어선 해안이 펼쳐졌다. 길은 비포장 도로였지만 잘 골라져 있었고 집이나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로지 파란 하늘과 바다와 야자수들이 전부였다. 해변의 오토바이 드라이브! 기분 최고! 나는 쭉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오토바이의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열대의 더운 날씨였지만 오토바이의 속도로 인해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어서 그렇게 더운 줄은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위엔 비를 피할 곳이 없기도 했지만 섬 날씨의 변덕스러움을 일찍이 경험으로 알고 있던터라, 그냥 지나가는 비려니 생각하고 나는 속력을 더 내서 비를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어를 4단으로 바꾸고 핸들을 돌리니 얼마후 속도계의 바늘이 거의 끝까지 다달아 120km를 가리키게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의 120km 속도감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120km의 바람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순간 - 물론 처음에는 조금 겁도 났지만 - 어느정도 속도에 익숙해지니까 짜맀한 쾌감이 밀려왔다. 문득 스피드 광이었던 제임스 딘이 떠올랐다. - 결국 제임스 딘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 나는야 지금은 에덴의 동쪽을 달리 는 제임스 딘! Go! GoI Go!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덧 An Thoi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전형적인 어촌으로 크기는 Doung Dong 보다 더 작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어귀를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출발할 때 내 뒤로 오토바이 세 대가 따라 붙었다. 사실 뭐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 굳이 따라붙었다고 할 수는 없고 같은 길을 내가 그저 앞서 간다고 하는게 옳을거다.

20대의 남자들이 각기 여자 한 명씩을 태우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뒤에 앉은 여자가 뭐라고 나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베트남어로 뭐라 그러는 줄 았았는데 잘 들어보니 영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말을 해보니 모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인데 그중 여자 한 명은이 프랑스로 이민을 갔는데 잠시 고향을 방문했고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섬을 둘러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곤 내 얘기를 들은 후 자기들과 같이 다니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들은 나를 지도상에도 없는 아름다운 해안가로 안내했다. 얼핏 제주도의 중문하고도 비슷한 해변은 중앙에 나무 한 그루만 달랑 있었다. 혼자 다녔으면 이런 곳에 와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내해 준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 나무아래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우리들은 섬의 중앙에 있는 계곡으로 갔다. 사실 처음에는 계곡이란 말에 꽤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 계곡이지 아주 조그만 시냇가였다. 하지만 사방이 온통 바닷가인 작은 섬에서 이런 담수가 있다는게 그들한텐 어쩌면 색다른 장소일 수 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니 오토바이을 반납해야 할 시간도 가까워지고 해서 나는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리조트를 향해 출발했다.

한 30분 정도 달렸나, 그 때부터 나는 약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은 점점 좁아지고, 차마 길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이나 탈 것 - 자전거나 오토바이 - 의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주위엔 집도 없었다. 잘못하면 사람도 없는 숲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초조했던 마음은 어느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왔던길을 다시 돌아갈까 하고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면 적어도 앞으로 4시간은 가야하고 그러기엔 기름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한 두시간 후면 해가 지기 때문에 한 번 왔던 길이라도 - 그리고 중간에 기름을 보충한다고 하더라도 - 가로등도 없는 길을 간다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은 가던길을 그냥 좀더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길은 더욱더 형편없어지고 이 길이 내가 처음가는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 마져 들었다. 어떤 곳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갈 수 없어 내려서 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안한 내 마음은 드디어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머나먼 이국땅 그것도 섬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 버리다니. 이대로 밤이 되 버리면 어쩌나. 인적도 없는 숲에서는 이상한 짐승들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이런 두려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끝내는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던길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나무들을 해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숲속을 30분 정도 헤메고 나니 드디어 집이 한 채 나타났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때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암흑속에서 오랫동안 길잃고 방황하던 배가 등대를 만나며 바러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곳엔 사람이 있었고 지도를 펴서 내 목적지를 가리키니 가던길로 계속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길같지 않은 길이 지도상에 표시된 길과 일치한다는 것인데. 이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걸 길이라고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는지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어쨌든 생명의 은인이 가르쳐 준 길을 계속가니 드디어 큰 길이 나왔고 나느 무사히, 정말 무사히 리조트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중간에 숲에서 당한 심적 충격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샤워후에 바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진짜 충격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 얼굴에서 심하게 열이 나고 쓰라렸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눈 주위에 선글라스를 끼웠던 자리를 빼고 얼굴 전체 피부가 아주 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꼭 부엉이 같았다. sun block도 바르지 않고 하루종일 그 뜨거운 햇빛을 받고 돌아다녔으니 이렇게 탄 것도 당연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 너무 심했다.

아침에 토니가 나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You are hot burned!' 라고 말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차가운 물로 적신 수건으로 얼굴 찜질을 하며 보내야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결국은 피부과에 찾아가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 하지만 지금도 거울을 통해 얼굴을 자세히 보면 주위에 검은 테두리를 나는 볼 수 있다. - 그 때의 경험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피부가 왜 그렇게 검을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으로 다음 부터는 더운 지방을 가게 되면 반드시 sun block을 가지고 갈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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