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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내리는 비만 아니었어도 우리의 산행이 그렇게 힘겹지는 않았을 것이다. 빗물을 먹어서 미끄러운 산길과
끈질기게 달라붙는 거머리들. 거머리들은 나무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풀숲에서 옮겨 붙기도 했다.
우리의 일행은 영국, 벨기에, 미국, 일본인을 합쳐 11명이었다. 가이드는 맨 앞과 뒤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다독였다. 태국 북부의 산세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유별나게 험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고약한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우리의 발은 빨리 지쳐 갔다. 앞서 가는 미국 아가씨
'메어리언'은 걷는 것보다 넘어지는 횟수가 더 많았다. 유난히 힘들어하는 그의 직업은 스튜어디스.
그러나 그의 육중한 몸매를 보면서 혹시 희망사항을 말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오르고 내리고서야 옥수수밭을 만날 수 있었다. 옥수수밭은 민가가 가까이 있다는 증거였다. 이미
발이 풀려 있었던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민가는 10여 채의 소수 산악 부족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들은 금속과
구슬, 몇 가지 원색을 배합한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우리의 트레킹이 새로 개척된 루트라는 가이드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을 구경하기 위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선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밥과 함께 야채를 이용한,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가이드의 저녁 요리는 훌륭했다. 촛불을 사이에 두고 깔깔거리던 우리들은 대나무 침상에서 눅진한 모포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우리의 희망은 오로지 코끼리 타기였다. 비가 내기다가 잠시 그치면 견디기 힘들
정도의 폭염이 밀려왔다. 비의 양도 엄청나서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은 온통 물길이 되었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던 우리의
옷은 진흙물로 염색되어서 트레킹이 끝나면 모두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전날부터 힘들어하던 메어리언은 급기야 울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메어리언의 배낭을 내가 들어주었다. 비와 폭염의 반복 속에서 우리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후에 타게될 코끼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5시간의 산행 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라면.
아침은 토스트가 나오더니 점심은 라면이라니, 그것은 극기 훈련이나 같았다. 아침에 식빵 쪼가리 몇 장을 더 먹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영국 친구에게 '미안해. 동양에선 아침을 많이 먹거든.'이라고 변명했는데 허기에 지친 나는
이제 라면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동양에선 점심도 많이 먹나 보지." 영국 친구의 장난기 섞인 말이었다.
"동양에선 아침, 점심을 많이 먹어. 그리고... 그리고, 저녁도 많이 먹어." 다시 산행은 시작되었다.
물이 불어 길이 없어진 계곡을 첨벙첨벙 건너기를 몇 번, 드디어 코끼리 숲(?)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리면 코끼리가 온다나. 한 20분쯤 기다리자 멀리서 기척이 들려왔다. 언덕 너머에서 누군가 코끼리를 몰고
넘어오고 있었다. 코끼리는 모두 5마리. 1마리에 2명씩 나누어 타고, 남은 일본인 친구가 코끼리 목에 올라탔다.
코끼리는 순하긴 해도 말을 잘 듣지는 않았다. 입맛에 맞는 풀을 뜯느라 늦장인 놈도 있었고 폭포 같은
소변을 본다고 상상할 수 없이 큰 그것을 내놓고 있는 놈도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코끼리가 그 거대한 몸에도
불구하고 소변의 파편을 피하기 위해 다리를 벌린다는 것과 몸에 난 털이 따가울 정도로 딱딱했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기우뚱거리는 코끼리의 등을 타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즐거운 모험이었다. 그렇게 코끼리를
타고 레프팅 캠프에 도착하면서 오후의 트레킹이 끝났다. 저녁 식사는 전날 밤에 버금가는 훌륭한 식단이었다.
그러나 물을 잘못 마셨는지 아랫배에 이상을 느꼈던 나는 식사 중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식탁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침은 토스트 몇 장, 점심은 라면. 저녁이나 제대로 먹으려 했더니
먹다 만 꼴이 되고 말았다. 밤엔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모닥불을 지피고 가이드가 치는 기타의 반주에 맞추어 몇 곡의
팝송을 흥얼거렸다. 다음날 아침,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보니 가이드와 원주민 아저씨가 대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 뗏목을 타고 거친 강을 내려갈 것이다. 아침을 먹고 2개의 뗏목에 나누어
올라탔다. 그러나 뗏목은 보충을 요했다. 대나무를 양쪽에 하나씩 덧대고서 다시 뗏목에 올랐다. 그러나
강물은 연일 계속된 비로 거칠어 있었고 가이드도 그 강물에 겁을 먹고 있었다. 결국 가이드가 양쪽 뗏목에 나누어
타기로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일본인 친구와 내가 탄 뗏목에 2명의 가이드가 함께 타고 나머지 친구들을 태운
뗏목에는 아침에 뗏목을 만들었던 원주민이 타기로 했다. 원주민이 탄 뗏목이 출발한 다음 우리가 출발했다.
앞에 원주민이 탄 뗏목은 혼자서 운전을 하는데도 강물을 잘 타고 내려가는데 우리의 뗏목은 앞뒤에서
가이드가 운전을 하면서도 다행히(?) 난항을 계속했다. 가이드의 기술도 워낙 거세진 물살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뗏목은 정글로 뒤덮인 강가로 처박기 일쑤였고 한바퀴 돌아 앞뒤가 뒤바뀌거나 급류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떠내려가기도 했다. 자연히 앞서 출발한 팀은 점점 멀어졌고 끝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긴장한 것은 가이드뿐이고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가이드 1명이 그 중요한
장대를 거센 물살에 회전하는 뗏목의 측면에 부러트렸고 우리의 뗏목은 이제 어디로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뗏목은 구멍난 풍선이 날아다니듯 통제력을 잃고 무식한 속도로 강의 이쪽과 저쪽을 충돌하고 있었다.
강가로 충돌할 때는 우리 모두 최대한 낮은 포복을 했으나 머리와 이마, 허리에 큰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몽둥이로 얻어맞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그러던 한 순간 정글 같은 숲을
길게 빠져나가고 낮은 포복에서 머리를 들어 뒤를 돌았을 때 일본인 친구가 하나 사라졌다. 사고였다.
그는 다행히 물에 빠진 채 뗏목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뗏목이 뒤집힐지도 모르는 공포심에 우리 모두
바닥에 엉거주춤하게 붙어있을 뿐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기어서 뗏목으로 올라와야
했다. 그러나 또다시 뗏목이 강가로 충돌하려는 순간, 그 거대한 나뭇가지를 피한다고 엎드린 것이 우리 모두
한쪽으로 몰리고 말았다. 결국 뗏목은 침몰했다. 하지만 뗏목은 신기하게도 칼날처럼 서서 떠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목만을 물 밖으로 내놓은 체 뗏목에 매달려 함께 떠내려갔고 그 시간이 10초, 혹은 20초였는지, 아니면
그 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아주 긴박한 순간이 흐르고 우리의 뗏목이 다행히
원상태로 돌아왔고 우리는 그 뗏목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다시 기어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이제 뗏목을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강가로 부딪힐 때 피해야 했던 나뭇가지를 이제는 뗏목을 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잡아야 했다. 그러나 거센 물살 앞에서 그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을 실패하고서야 물살이 약한
강가에서 겨우 뗏목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뭍은 물 속의 정글을 지나 저만치 있었다. 일본인 친구
1명이 먼저 물 속으로 뛰어 내렸다. 바닥이 발에 닫지 않고 머리까지 물에 잠기자 기겁을 하고 뗏목으로 기어올랐다.
다음은 가이드가 뛰어 내려서 낮은 쪽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도 우리의 가슴을 넘기고 있었다. 발에
밝히는 강바닥의 퇴적물이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물 속의 정글을 헤치고 어렵게
뭍으로 올라왔지만 거기에도 길은 없었다. 다시 뭍의 정글에서 길을 찾아 헤매었다. 가이드는 장대를 부러트릴 때 다친
팔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잠시 후 길은 찾을 수 있었지만 2시간을 더 걸어서야 애초
우리들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다른 일행은 그곳에서 우리를 몹시 걱정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우리가
겪었던 스릴과 고비를 자랑처럼 떠벌렸다. 불행하게도 유능한 원주민 덕분에 아무일 없이 레프팅을 마쳤던 그들은 우리를
부러워했다. 그 지겨운 라면을 점심으로 먹고 다시 산행에 올랐다. 이제까지보다 가장 험준했던 산을 오르내리고,
무릎은 기본이고 허리까지 차는 냇물 몇 개를 건넜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한 후 우리를 기다리는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트럭에 올라타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힘들었던 트레킹.
우리를 태운 트럭이 출발하자 해는 높은 산 뒤로 막 넘어가는 순간이었고 하늘은 주황과 빨강으로 물들고 있었다.
우리의 몸은 영광의 상처를 몇 개씩 갖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빨간약'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반바지 차림의 우리들 발은 빨간약으로 그때의 하늘처럼 울긋불긋 물들었고 우린 그 발들을 모아 놓고
서로 자기의 상처가 크다며 자랑하다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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