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뗏목타기 코스.... 안내책자에는 영어로 'rafting'이라
되어 있다. 세르쥬는 아마도, 즈네 나라 급류에서 하는 카누나 이스라엘의
자연보호지역에서 타던 카약 내지 탄탄한 고무보트를 타고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스릴 만점의 래프팅을 연상했었다 보다. 대나무를 엮어 엉성하게
만든 나무덩어리를 "카누"라고 소개하는 걸 본 세르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킴.
이걸 타구 간다고?" "그래." 암말이 없다. 실망인
모양이다. "멀 기대하고 왔어? 여긴 태국이야. 그것도 문명사회와는
동떨어진 고산족 마을이야. 전기도 텔레비젼도 기름도 없는 마을이라고.
우린 그걸 즐기러 왔구." ".....하지만 우린 신혼여행이잖아?"
"신혼여행이니까 더 기억에 남을 체험을 하러 왔잖아."
"내 친군 몰디브에서 멋진 요트로 크루징을 할텐데...."
"요트 크루징은 지중해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담에 터키에
가서 요트 크루즈 함 하자. 하지만 뗏목 래프팅은 이곳만의 재미야.
그 친구에게도 자신있게 자랑해봐."
불만에 찬 입을
불쑥 내밀고 꿈쩍도 하지 않는 세르쥬. 가이드가 각자의 위치와 할 일을
지정해 주지만 세르쥬는 싫단다. "내가 왜 돈 내고 와서 노를
저어야 해? 난 돈 내고 온 사람이야." 마누라를 비롯
모든 팀원들이 말없이 그의 얼굴만 쳐다본다. 가이드는 하는 수 없이
두 유럽인 남자에게 노를 젓고 바위를 발견하면 알리는 네비게이트 역할을,
여자들에겐 짐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임무와 방향 지시 임무를
내렸고 노를 젖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세르쥬에게는 배의 발란스나 맞춰
앉아만 있는 임무를 맡겼다.
◀누군
돈 안냈나? 끝까지 노 젖지 못하겠다 버티는 세르쥬. 워낙 물을 좋아하는 나는 신나 하지만 신랑은 영
말이 없다. 간간히 위로 삼아 말 걸어주는 거 이외에는 한국사람들과
한국말로 열쉼히 수다 떨면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가끔씩 배를 들어
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하고 바위를 지나치다 떨어진 물건을 줏으러
물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세르쥬만 빼구 나머지 일행은 너무나 너무나
즐거워했다.
  ◀별 수 있나.... 노라도 저으니까 훨 재밋구먼....
◀계면쩍은 모습으로
한 커트! 평생 책잡힐 증명사진 유럽
청년들은 즈들만 노 젖는 기쁨을 즐기는 게 미안했던지 연신 세르쥬에게
바꿔줄까를 권했지만 삐진 서지오는 거부한다. 물살에 익숙해지자 여자들도
너도나도 노를 저어보겠다고 자원한다. 하지만 물살이 센 곳에선 여자들
힘으로 뗏목을 제대로 이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밀고 땅기며
뗏목과 씨름하길 한 시간..... 강변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출발할 즈음
덴마크 청년의 손바닥 살갗이 벗겨져 세르쥬에게 한 번 더 권하니까
못이긴 척 하고 노를 받아 쥔다.
흘깃흘깃
뒤돌아보니 돈 내구 온 손님이라고 까딱하지 않고 앉아있을 때의 표정보다
훨씬 밝다. 아니, 이제 아주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이다.
"재밋어?"(빈정대는
말투) "어. 가만 있을 때보다 덜 심심하군."(계면쩍은
말투) "기념 사진이나 한 장 찍자."(증거로 남겨두자는
심정으로) "머, 사진까지....."(머쓱해하며) "포즈
잡아봐. 멋지게"(드뎌 잡혔군!).
어유....
앞으로 저 변덕을 계속 맞추면서 살아야 하나. 군기를 잡아야 하나...
래프팅도
끝나고 민가의 레스토랑에 들려 오늘 일들을 얘기하며 마무리를 하는
동안 점심이 나왔다. 유럽인들은 추욱 쳐져 있지만 네 명의
한국인은 정말 막강하다. 나오는 음식 죄다 먹고 유럽인들이 남긴 몫까지
깡그리 비우고 음료수도 마시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배 두둘긴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즐긴
일박이일은 챵마이 만의 매력이며 앞으로 우리들 추억 속에 영원히 남을
여행 스케치의 한 장면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린 일주일
더 챵마이에 머물면서 주변 곳곳을 여행하고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문명사회와는 조금 동떨어진 챵마이에서의 여러 요건들이 세르쥬를
자꾸만 뒤틀리게 하여 간간히 부부쌈을 하곤 했다.
송크란 행사 끝나는 축제 행렬에서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진은 연신
찍으면서도 세르쥬 혼자 찌푸린 얼굴로 서 있었다.
야시장에서 쉴새 없이 기념품을 사재기하면서도 왜 자기가 물을 땐 300바트라
하구선 내가 물으면 100바트라고 하냐,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등 불평을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피곤해서 움직이기 싫다는 마누라
등 떼밀어선 동생, 어머니, 친척들, 회사 동료들 심지어 자기가 입을
갖가지 디자인의 쟈켓을 6벌이나 사구는 막상 마누라 꺼는 하나도 안산다.
비키니 수영복 입을 때 허리에 질끈 동여매는 스카프(난 이런거 입어본
적이 없어 이름도 모른다) 사라고 윽박지르는 걸 안샀더니 더 이상 머
사라고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혼여행 온건지 배낭여행 온건지
모르겠군.
챵마이로
올 땐 뱅기를 탔다. 송크란이라 모든 차량이 매진이었기 때문에 제법
비쌌지만 이틀간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자리나는 뱅기를 타고 왔다. 갈
때는 버스를 타자고 졸랐다. 배낭여행객의 위치로 돌아와서. 야간버스를
타기 싫다는 그도 버스에 꽉 찬 외국인을 보면서 순순히 응했다.
그런데.... 에어컨이 고장났다. 챵마이를 출발한지 30분쯤 지나
에어컨이 나오지 않자 창문이 폐쇄된 에어컨 버스 안은 증기탕 그 자체였다.
손님들의 불평과 항의가 이어지자 버스는 챵마이로 되돌아가 수리를
했지만 여전히 불능. 챵마이 외곽에 위치한 버스회사 서비스센터에 갔지만
역시 수리 불능. 결국에는 밤 11시가 넘어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상태로
방콕으로 향했다.
정말 고문이었다.
그 더운 나라에서 바람도 통하지 않는 버스 속에서 앉아있는 5분, 10분,
한시간, 두시간..... 모두들 지쳐 나뒹구러졌다. 그런 지옥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불평 많은 세르쥬에게 태국은 다시금 악몽같은 추억 한 페이지를
남겼다.
챵마이에서
늦게 출발한 관계로 아침 러시아워에 방콕에 도착했다. 돈무앙 공항을
지나면서부터 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온몸이 찌들어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이제 시내에만 들어가면 찬물에 션하게 샤워하고 한숨 자려는
희망 만으로 버텨온 세르쥬는 화를 버럭버럭 낸다.
"내려서
택시 타고 가자." "차가 저렇게 막혀 있는데 어떻게 택시를
타. 여기 시간거리 병산제여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미터기가 올라가."
"그래도 최소한 택시에는 에어컨이 나오잖아!!!!"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음 저럴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방콕의 트래픽은 유명하다. 언젠가
같은 자리에서 두 시간을 서 있었던 기억도 있다. 일곱 시간을 힘들게
참아 왔는데 한 시간쯤 기다리는 건 문제도 아니야.
돈무앙에서
카오산 까지의 두 시간.... 여기서 우리는 진짜루 감정 어린 쌈을 했다.
"앞으로
태국에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결단코 말릴거야!!!" "두
번 다시 태국에는 오지 않는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야.
아마 사람들이 태국의 실체를 알면 절대로 오지 않을껄!!!"
모든 일정이
순조롭고 편하다면 팩케이지 여행을 해야 할 거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바로 이런데 있다. 평소에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들,
편안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극기훈련같은 체험을 함으로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을 때 남들보다 유연하게 트러블을 대면할 능력을 키우고
세상을 넓게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기르는 것. 바로 이런데 배낭여행의
매력이 있다.
난 7시간동안
이어진 찜질방 버스 속에서의 고통도 사우나의 냉탕에 들어있는 느낌을
되살리며 견뎌낼 수 있었지만 처음 당하는 세르쥬에겐 힘겨운가 보다.
하지만 증기탕 버스 속에서 듣는 끊임없는 그의 불평에는 나도 그만
폭발하구 말았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내린다. 택시 타고 딜럭스 호텔로 가자는 말에 카오산이
머물기 편하니까 빗속이라도 내가 호텔 구해놓을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자 소위 남편이라는 사람이... 걍 노천 카페의 의자에 앉으면서 그러마
한다. 그땐 순순히 따르는군. 나쁜......
카오산에
800바트짜리 숙소를 잡아놓구 택시를 잡아선 그를 데려왔다. 비를 안맞추기
위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 불평 듣기가 싫어서 카오산 내에서
택시를 잡아 태워왔으니.... 내 배낭여행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챵마이에서, 그리고
챵마이에서 오는 길에 워낙 고생한 세르쥬는 이제 태국에 대해 모든
것을 거부한다. 아무리 좋은 것 재밋는 것을 마주해도 말이다. 우린
방콕에 더 머물면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조금만 이상하면
세르쥬는 먹으려도 접근하려도 않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보고도
놀란다는 듯이.
그러면서
연신 몰디브로 신혼여행 갈 친구를 부러워한다. "우리 지금이라도
푸켓으로 가자. 너 원하는대로 딜럭스 호텔 예약해서 우리도 해변가에서 놀자.." 이젠
푸켓도 싫단다. 파타야의 딜럭스 호텔을 상기시켜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또 어떤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서....
우리와 함께 이동하려면 세르쥬도 로마-서울 왕복 타이항공을 이용해야하지만 일반요금이 워낙 비싸 마누라의 권유로 결국
저렴한 로마-방콕 왕복을 끊었고 방콕에서 한국 왕복을 구입해서 함께
타고 가기로 햇다. 그런데... 이제 세르쥬의 불평 불만에 삐져 버린
마누라는 복수의 칼을 갈면서 구태여 "타이항공 자리 없다, 비싸다"는
이유를 들어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캐세이 퍼시픽 왕복을 끊어주었다.
▲남들은 신랑을
왜 그렇게 고생 시켰냐구 날 비난하지만 그래도 파타야에선 특급
호텔에서 보통의 신혼부부처럼 놀았다....
홍콩에서
그가 타고 온 뱅기가 이륙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드뎌 복수했다에 자족감을
느끼며 증거 사진을 찍어두고 한국에서 다시 만난 신혼부부. 세르쥬의
표정은 단단하게 굳은채 며칠동안 삐졌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신혼여행가서
따루 뱅기 타고 온 신혼부부는 우리 뿐일꺼다!!!"며 분노하지만......
우린 만성이 되어 있다. 그러게 누가 불평을 하랬나? 신혼 때 기를 잡아야해....
◀최악의 신혼여행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거실에 장식해둔 이 사진. 덕분에 아무도 그의 말은
믿지 않는다 "이제 댁의
신랑은 태국에 원한 맺혀 다시는 안가겠네요?" 라고 묻겠지만.
절대 아니다.
이태리에서
아는 사람들, 친척들이 우리의 신혼 여행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온다.
처음엔 서지오가 불만을 많이 털어놨겠구나 싶어 뜨끔했는데.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질문한다.
"그렇게
좋았다면서요?" "어떻게 전기도 차도 없는 마을을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선물을 그런 싼 값에 살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올 때마다 웃는 낯으로 대답하면서 세르쥬를 한번씩 째려본다.
눈짓으로 "싫었다며?" 몸짓으로 으쓱.... "미안."
"킴.
지금 생각해보니 태국이 참 멋진 곳인거 같어." "킴,
태국 갔다 온 사람들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런 데가 있었나 라고
해. 우리가 정말 색다른 체험을 많이 했나봐." "킴, 내가
이 쟈켓을 100바트에 샀다니까 다들 안 믿어. 태국 갔다 온 사람들도"
"킴, 우리 담에 푸켓으로 함 더 갔다오지 않을래?"
태국의 매력은
우리와 다른 문화 수준에 있다. 챵마이의 매력은 우리와 전혀 다른
문명 속에 존재한다는 데 있다. 비록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우리가
이질적인 문명에 부딪혔을 때 조금은 불편하고 투정이 일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문명이 주는 문화적 쇼크가 우리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는 긍정적 요인으로 볼 때 챵마이 트래킹은 태국 배낭여행의 백미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슬슬
배낭여행의 묘미에 눈뜨기 시작한 우리 신랑. 약간의 불평(little complain)을 하더라도(절대 약간이 아니다!!!)
참아주길 바라며 나와 함께 배낭여행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세르쥬도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그런 배낭여행은
아니었다. 좋은 침대에서 깨끗한 시트를 덮어야 잠 잘 수 있었던 그에게
챵마이는 그의 여행 인생 자체를 뒤집는 새로운 획을 그은 곳이었다.
-fino-
김명순 (noce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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