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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촐한 결혼식


▲만년설 덮힌 융프라우부터 시작....

 
▲봄기운 화사한 베로나에서


원시림 속에 숨겨진 새로운 멋을 찾아 함께 떠나는 여행
배낭여행자에겐 챵마이 트래킹 만큼
매혹적인 신혼여행지는 다시 없다.


원시의 세계에서 새로운 나를 자각할 수 있는 곳.
문명의 이기로 치장된 나를 자연 속에 동화시켜 주는 곳.
챵마이는 때묻지 않은 자연의 선물 그 자체이다.....

나는 이스라엘 키부츠 체류 때 만난 이탈리아인 하우스 메이트 세르쥬와 결혼했다. 결혼식은 이태리에서 했지만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이태리까지 온 하객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으로 배낭여행가의 전문성을 살려 본전을 뽑게(?) 여행 루트를 잡아 보답했다.

15일이나 시간을 내준 하객들에게 스위스에서부터 이태리를 거쳐 배낭여행을 하고 스톱 오버로 태국에 들러 방콕과 파타야는 특급호텔급 팩케이지 투어(알다시피 현지 랜드요금은 아주 싸다)를 시켜주고 귀국시킨 뒤 신혼여행이 한달인 우린 챵마이부터 시작 푸켓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가 제주도 여행까지 하기로 했다.

챵마이...
챵마이는 꽤나 큰 도시이지만 관광객들이 챵마이를 찾는 건 인근에 산재된 고산족 마을들을 찾기 위해서이다. 때묻지 않은 고산족의 삶도 구경하고 소문의 태국을 간다는 점에서 세르쥬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뱅기가 하루 연발하는 불상사를 겪었지만 어차피 머 어떤가? 하루 더 로마에서 노는거나 방콕에서 노는거나....

태국에서 파타야, 방콕 모두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었고 꼼꼼하게 짠 스케쥴을 따라 이른 아침부터 이른 새벽까지 줄기차게 즐거움을 찾아 다녔기 때문에 세르쥬나 하객들 모두 흥분의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하객들이 떠나고 우리 둘만 챵마이에 도착해서부터는 절약을 모토로 하는 배낭여행가 마누라 고집에 의해 중급 호텔로 잡았다. 그래도 신혼여행이라서 어쩔 수 없이 게스트하우스를 쓰지 않고 800바트짜리 호텔에 묵었는데도 시설을 본 신랑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송크란(살수절)에 맞춰 송크란의 발상지격인 챵마이로 갔기 때문에 챵마이에선 하루 왼종일 물세례를 받았다. 시원하고 좋기만 하구먼.....  

우리를 태운 뱅기가 로마를 출발 아테네를 경유할 때 마침 유월절 휴가를 받은 엄청난 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탔다. 손에는 갖가지 물총 병기를 들고. 물총, 물대포, 물박격포, 기기묘묘하게 설계된 각종 살포용구들 등등....

총싸움 즐기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살수절을 최적의 사격훈련장으로 생각하나보다. 잠시도 참지 못하는 이들은 기어코 물총에 물을 넣어 쏴대는 바람에 스튜어디스로부터 꾸중을 들어야했다.  

이렇게 물 쏘고 물 맞겠다며 뱅기 타고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숨돌릴 틈 없이 바가지 아니 양동이채로 물을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울 신랑은 거의 폭발직전이다.

"도대체 이게 머야! 무슨 신혼여행이 이래!!!"
"결혼한 게 무슨 죄야? 왜 물벼락을 맞아야해?"

급기야 물세례하는 사람에게 눈 부릅뜨며 항의하고 물 들고 나오는 사람을 보면 먼저 덤벼 들 듯한 기세로 가로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에 숨어있다가 물 뿌리는 사고를 당하면 알아듣지 못할 욕설까지 튀어나온다.

"지금이 송크란이라구 했지? 송크란에 대해 얘기했잖아."
"그래도 이런 건줄은 몰랐어. 이게 머야. 이거 더러운 물이면 어떻게 할거야?"

오물도 버리고 목욕도 하고 식수로도 사용하는 챠오프라야 강물도 봤고 서민들의 삶도 봤구... 이제 그는 오염된 물을 뒤집어 써서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하나 하는 걱정뿐이다.

즐기면 좀 좋아.... 약오른 신부는 골탕먹이려구  일부터 물 벼락 맞는 길로 델쿠 다니니... 열 받은 세르쥬는 아예 맘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래도 트래킹을 가면 색다른 체험일테니까 기분이 나아지겠지.... 한가닥 기대를 걸어본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세르쥬가 원시사회(?)에서 오래 견디지 못할 거 같아 챵마이 1박2일짜리 짧은 트래킹을 신청했다. 트래킹 코스로 가는 동안 우리 차는 쉴 새 없이 숨었다가 뛰쳐 나와 물바가지 씌우는 사람들과 전쟁을 치뤄야 했다. 걍 뿌리면 좀 맞으면 될껄.... 울 신랑은 경치 구경은 접어두고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쓰기 바쁘다.

우리 일행은 덴마크인 1명, 네덜란드인 1명, 유럽 여자 한 명, 나와 세르쥬,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인줄(네팔에서 자원봉사 하느라 까맣게 탄, 그리고 현지인 수준의 옷차림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알았던 2명의 한국 여자와 남자 1명으로 구성되었다.

물세례로부터 벗어나자 세르쥬는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이태리에선 동양의 신비를 대표하는 환상의 나라가 태국이다. 많은 이태리인들이 태국 여행을 선호하며 가보고 싶은 나라 넘버원으로 손 꼽는다.  서지오 역시 신혼여행지를 태국으로 잡았을 때 무척 흥분했었다. 게다가 태국 최대의 명절이라는 송크란(살수절, 구정)에 맞춰 왔으니....

물 벼락 맞는 거 땜에 송크란에는 실망했지만 고산족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가뿐한 모양이다. 산을 오르는 동안 그 상쾌함과 고요함에 반해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거 구경 못했을거야. 가서 자랑해야쥐..." 들뜬 눈망울을 반짝이는 모습도 귀여웠다.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부슬부슬.... 산허리를 가르며 흐르는 안개도 아름답고 흙냄새를 품은 공기도 싱그러웠지만 길이 미끄러웠다. 넘어지고 진흙투성이가 되고.... 도중에 만난 작은 산간마을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 동안 다른 여러팀들이 합류해서 비를 그었다.  불평 많은 세르쥬이지만 이런 건 아주 좋아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작은 부락의 구석구석 진흙길을 밟으며 기웃거리곤 한다.

다행히 다시 비가 그치고 여러 팀들이 함께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데.... 사막나라의 건조한 흙만 밟아서 그런지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연신 넘어지고 미끄러진다.

"어유, 쟤들 독하기로 유명한 이스라엘 출신 맞어?"
"쟤들 군사훈련은 제대로 받은거야?"

앞에서 주르르 넘어지면 뒷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국인 일행은 불만을 토로한다.
"재들은 군사훈련 받을 때 제외되었을거야."
이스라엘에 3년을 체류한 서지오도 동감한다.

챵마이 트래킹을 가장 좋아하는 국민이 한국인과 이스라엘인이라고 한다. 서구인과 일본인은 호기심으로 참여하지만 한국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극기훈련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도전한단다. 기력 젤루 좋게 견뎌내고 음식 투정 안하고 젤루 잘 먹는 국민도 이들이고 가장 신나하는 사람들도 두 나라 사람들이라고 한다. 두 나라 국민들 모두 병역의무를 지닌 탓에 그런가보다.

한 이스라엘 여자가 계속 투덜댄다. 다리에 바람이 들었는지 이 여자는 쉴새없이 미끄러지고 발을 헛디딘다. 다시 가랑비가 내린다. 우리에겐 기분 좋은 봄비 정도인데 이스라엘 사람들만 너나 할 거 없이 계속 넘어져서 그들을 피해 진행했다.

갈림길..... 이제 조금만 가면 오늘의 숙소가 있는 고산족 마을이다. 그런데 다른 팀의 가이드가 우좡좌왕 하면서 머릿수 헤아리기 바쁘다. 예의 그 말썽 많은 이스라엘 팀 몇 명이 사라졌다. 아마도 어디 다른 길로 접어든 모양이다. 우리 팀의 가이드가 모든 관광객을 이끌고 고산족 마을로 향하고 나머지 가이드들은 갈림길 마다 뒤질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산등성이에 몰려오는게 아닌가?
"앗! 심상찮다. 뛰자!!!"
눈치 빠른 한국인 일행과 세르쥬는 있는 힘을 다해 뛰어내려갔다. 집이 거의 보일 즈음. 개울 앞에서 우린 엄청난 기세로 내리꽂는 폭우를 만났다. 송크란 축제에서 바게츠로 물 뿌리는 정도가 아니다. 거의 창살 맞는 수준의 중압감과 매서움을 동시에 가진 그런 장대비였다.  비올 거 같다는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은 무사히 고산족의 집에 당도했지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다른 일행들은 죄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다....... *^_^*

우리 가이드가 배정해준 넓은 방에는 일본인 애들 몇 명이 배 깔구 엎드린 채 아주 편안한 자세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일본애들을 보면 또 속이 뒤틀리는 나.

나: "여기 우리 팀 방이라는데?"
일본인: "우리 가이드가 안와서 아직 방을 배정받지 못했습니다. 오면 비켜드리지요."
나: 아뇨 지금 비켜주세요. 그 팀 가이드는 길 잃은 이스라엘 여자들 찾으러 갔으니 언제 올지 모르고 우린 옷도 갈아 입어야 하니 쥔장에게 물어 당신네 팀의 방을 찾아보세요."
한국사람들 같으면 이 방이 늬꺼냐구 대들겠지만 일본인은 이런덴 약하다. 일본아이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짐 들고 나간다.

몰골들이 다들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샤워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생각이 자유로운 유럽 청년들이 머리가 잘 돌아간다.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으로 들어가 세수하고 몸 씻구 진흙 털어내고.... 아!!! 대자연의 샤워실이다. 이렇게 빗물 샤워를 마친 우리 일행은 대청마루가 딸린 넓은 방에 짐 풀고선 금방이라도 지붕을 뚫을 기세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만족스런 웃음과 여행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가이드를 기다렸다. 고생 끝에 맞는 이 잔잔한 즐거움... 배낭여행의 매력이다. 쥔장 가족은 차를 끓이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듯 맛있는 냄새가 위장을 자극한다. 무슨 음식이 나올까? 논도 밭도 없는 첩첩 산중 사람들은 멀 먹구 살까? 기대의 맘으로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하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들이 기겁을 한다. 밑에 먼가가 있다고 한다. 덴마크 청년은 도저히 x가 나오지 않는다며 인상 찌푸리고 돌아왔다.  제주도처럼 밑에 돼지가 있나?  이런 오지에 오면 갑자기 내장이 활동을 멈춰 버린다.

사람들 몰려오기 전에 생수 1.5리터짜리를 7병 샀다.
"킴(내 이름)!!! 웬 물을 그렇게 많이 사?" 세르쥬의 눈이 동그레진다.
"어. 쓸 데가 있어서...."  비밀이다. 흐흐흐

세 시간쯤 지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진흙투성이가 된 이스라엘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줄레줄레 가이드를 따라 왔다. 다른 건물에서 부산하게 팀별로 방 배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밥이 나왔다. 좁은 부엌에서 화로 하나 피워놓고 만든 뽁음밥이지만 제법 구수하고 맛난 냄새가 풍긴다. 허겁지겁..... 밥이 주식인 한국인 네 명은 몇 그릇이나 비워지만 마지못해 먹는 유럽인들은 조용히, 맛있다는 말도 없이, 걍 생존해야겠기에 한 접시 비운다. 나머지 빈 위장은 담배로 때우며. 서로 갖고 온 외제 담배를 교환하며 웃음꽃을 피우며 밥 한톨 남기지 않고 비우는 우릴 바라본다.
"킴. 배탈나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 그의 눈빛은 동물적인 먹성을 보이는 마누라에 대한 동정이 깃들여있다.
머 평소에도 자기보다 두 배로 먹는 식성을 익히 알구 있지만.

곧 어둠이 찾아왔다. 말 그대로 칠흙 같은 어둠이다.
전등을 끄면 마주하는 사람의 얼굴은 커녕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까만 어둠 속으로 나는 5병의 물병과 손전등을 들고 세르쥬랑 나왔다. 그리고 건물 밑(건물은 한국의 정자처럼 땅에서 조금 높은 위치에 방을 올리고 그 밑에는 비에 젖지 않게 여러 가지 물건을 놔두는 형식을 취한다)가서 옷을 벗고는 생수를 부어 달라고 했다.

"나 지금 샤워하는거야."
기막혀하는 세르쥬. 정말 대단하다구 칭찬한다. 이집트에서 사막 사파리 나갔을 때도 이랬다. 물 5병 들고 사막가선 나 혼자 양치하고 세수하고 발씻고 밤화장까지 하고 잤으니까..... 아마 어둠 속에서 숨겨진 그의 표정은 이집트 사막에서 보여준 그런 표정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몸이 끈적끈적. 찝찝하던 차에 잘 됐다며 세르쥬도 한몫 거든다. 우리 둘은 까만 어둠 속에서 발가벗고 맑은 생수로 몸을 깨끗이 씻은 뒤 이빨도 깔끔하게 닦구 올라왔다. 너무나 상쾌해하는 우릴 본 다른 일행들이 얼른 물 사러 갔지만 이미 생수는 동났다.

비는 계속 내린다. 지붕이 무너져 내릴 기세이다. 어릴 적 함석지붕 아래 떨어지는 비소리를 들으며 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도 저 비를 피할 지붕이 있다는 게, 뽀송뽀송한 바닥 위에 누워 잘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이런데서 우린 작은 행복을 느껴본다.

그래도 신혼여행이니까 담요를 깔끔하게 폈다. 세르쥬는 좋은 생각이 있다면서 다른 일행들에게 담요 두 장씩을 나눠주고는 나머지를 모두 갖구 와 침대처럼 폈다. 스스로도 굿 아이디어라고 만족해 하면서..... 딱딱한 마루에서 잔 적이 없는 그에겐 조은 생각이었겠지만 난 걍 나무 바닥에서 자구 싶었다. 암튼 젤루 깨끗해 보이는 담요를 이불 삼아 우린 신혼의 단잠에 빠져들었다.

닭이 홰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토록 극성맞게 내리던 비가 말끔히 개이고 하얀 구름이 산허리를 감돌아 흘러간다. 이제 비로소 고산족 마을에 와 있음이 느껴진다.
고산족 처녀들은 다른 건물의 평상에 앉아 연신 토산품 제작 시범을 보여주고 바구니 가득 아기자기한 토산품을 쌓아놓고 투숙객들의 관심을 끈다. 남자 가족은 아침 식사를 만들고 투숙객들은 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볼일 볼까 말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우리의 불만대장 세르쥬는 엉덩이에서 허리께쪽으로 엄청나게 많이 물렸다. 세르쥬만....... 벼룩도 불평 많은 사람을 알아보나 보다. *^_^*
다들 안됐다고 하면서도 고소하다는 표정도 감추지 못한다.
사실 마누라인 내가 다 속이 시원한데 다른 사람이야..... 그러게 누가 그렇게 불만을 터뜨리랬나.... 벌 받은거지
◀트래킹 도중 들린 고산족 마을에서....

우린 고산족의 작은 부락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우리네와 같은 점, 다른 점을 얘기하며 사진도 찍고 오늘 있을 코끼리 트래킹과 뗏목타기에 대한 상상을 키웠다. 어제 진탕이 된 이스라엘 팀도, 일본인들도, 유럽 사람들도 그리고 우리 팀도 한결같이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난 세르쥬에게 가장 태국 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코끼리 몰이 가이드에게 50바트를 쥐어주었다. 가장 큰 놈을 우리에게 달라고.... 몰이꾼은 제일 덩치 큰 놈을 빼 놨다가 우리에게 배정해주었다. 

세르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동물원에서나 봤던, 파타야의 민속촌에서 보던 그 코끼리를, 막상 타려고 그 앞에 서니.... 엄청나게 큰 덩치에 말문이 막히나 보다. 승마를 좋아하는 서지오지만 의외로 코끼리를 무서워하는 듯했다. 코끼리 덩치가 커서 나무로 엮은 계단에 올라가 타야 했다.

세르쥬는 온몸이 굳은 채로 의자에 앉긴 했지만 코끼리는 사정없이 이리저리 비틀고 다른 팀 손님을 태운 형제 코끼리와 달기기 시합을 한다. 둘이 경쟁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느라 일행과 떨어지자 비명을 질러댄다. 몰이꾼이 와서 코끼리를 꾸중하지만 잠시뿐. 또 경쟁을 한다.

"킴!!! 우리 코끼리가 미쳤나봐.!!!
"이 코끼리 이상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지?"
"저봐... 다른 코끼리는 말을 잘 듣는데 이 놈은 계속 말썽이잖아."
"의자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봐! 내쪽으로 의자가 기울잖아!!!"

◀워낙 덩치가 커서 계단 위에 올라가서도 끙끙대며 타야한다



▲곡예하듯 자리까지 바꿔줘야했던 말썽꾸러기 코끼리  
      

다른 팀 사람들이 자꾸만 흘깃 거리고 한국인 일행들도 우습다며 한마디씩 건넨다.
어유.... 저런 남자에게 평생을 의지해야 하나?
계속 이어지는 불만을 들으면서 코끼리 타기를 끝낼 자신이 없어 자리를 바꿔타자구 헸다.
우린 강을 건너기 위해 내려가는 위험한 지형에서 기어코 거대한 코끼리 위에서 곡예하듯 자리를 바꾸었다.
균형 잡아 앉으니 의자도 기울어지지 않고 코끼리가 션션하게 달려 기분도 더 좋구먼. 엄살은....

서지오는 자리를 바꿔 앉은 이후에는 잠잠해졌다. 여자를 위험한 쪽(?)에 앉혔다는 미안함을 표시하며. 어유... 챙피해서.
암튼 이제 우린 다시 신혼부부답게 포즈 취하며 사진도 찍고 웃으며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제 뗏목타기 코스....
안내책자에는 영어로 'rafting'이라 되어 있다. 세르쥬는 아마도, 즈네 나라 급류에서 하는 카누나 이스라엘의 자연보호지역에서 타던 카약 내지 탄탄한 고무보트를 타고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스릴 만점의 래프팅을 연상했었다 보다. 대나무를 엮어 엉성하게 만든 나무덩어리를 "카누"라고 소개하는 걸 본 세르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킴. 이걸 타구 간다고?"
"그래."
암말이 없다. 실망인 모양이다.
"멀 기대하고 왔어? 여긴 태국이야. 그것도 문명사회와는 동떨어진 고산족 마을이야. 전기도 텔레비젼도 기름도 없는 마을이라고. 우린 그걸 즐기러 왔구."
".....하지만 우린 신혼여행이잖아?"
"신혼여행이니까 더 기억에 남을 체험을 하러 왔잖아."
"내 친군 몰디브에서 멋진 요트로 크루징을 할텐데...."
"요트 크루징은 지중해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담에 터키에 가서 요트 크루즈 함 하자. 하지만 뗏목 래프팅은 이곳만의 재미야. 그 친구에게도 자신있게 자랑해봐."

불만에 찬 입을 불쑥 내밀고 꿈쩍도 하지 않는 세르쥬. 가이드가 각자의 위치와 할 일을 지정해 주지만 세르쥬는 싫단다.
"내가 왜 돈 내고 와서 노를 저어야 해? 난 돈 내고 온 사람이야."

마누라를 비롯 모든 팀원들이 말없이 그의 얼굴만 쳐다본다. 가이드는 하는 수 없이 두 유럽인 남자에게 노를 젓고 바위를 발견하면 알리는 네비게이트 역할을, 여자들에겐 짐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임무와 방향 지시 임무를 내렸고 노를 젖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세르쥬에게는 배의 발란스나 맞춰 앉아만 있는 임무를 맡겼다.

◀누군 돈 안냈나? 끝까지 노 젖지 못하겠다 버티는 세르쥬.

워낙 물을 좋아하는 나는 신나 하지만 신랑은 영 말이 없다. 간간히 위로 삼아 말 걸어주는 거 이외에는 한국사람들과 한국말로 열쉼히 수다 떨면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가끔씩 배를 들어 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하고 바위를 지나치다 떨어진 물건을 줏으러 물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세르쥬만 빼구 나머지 일행은 너무나 너무나 즐거워했다.


◀별 수 있나.... 노라도 저으니까 훨 재밋구먼....         ◀계면쩍은 모습으로 한 커트! 평생 책잡힐 증명사진

유럽 청년들은 즈들만 노 젖는 기쁨을 즐기는 게 미안했던지 연신 세르쥬에게 바꿔줄까를 권했지만 삐진 서지오는 거부한다. 물살에 익숙해지자 여자들도 너도나도 노를 저어보겠다고 자원한다. 하지만 물살이 센 곳에선 여자들 힘으로 뗏목을 제대로 이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밀고 땅기며 뗏목과 씨름하길 한 시간..... 강변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출발할 즈음 덴마크 청년의 손바닥 살갗이 벗겨져 세르쥬에게 한 번 더 권하니까 못이긴 척 하고 노를 받아 쥔다.

흘깃흘깃 뒤돌아보니 돈 내구 온 손님이라고 까딱하지 않고 앉아있을 때의 표정보다 훨씬 밝다. 아니, 이제 아주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이다.

"재밋어?"(빈정대는 말투)
"어. 가만 있을 때보다 덜 심심하군."(계면쩍은 말투)
"기념 사진이나 한 장 찍자."(증거로 남겨두자는 심정으로)
"머, 사진까지....."(머쓱해하며)
"포즈 잡아봐. 멋지게"(드뎌 잡혔군!).  

어유.... 앞으로 저 변덕을 계속 맞추면서 살아야 하나. 군기를 잡아야 하나...

래프팅도 끝나고 민가의 레스토랑에 들려 오늘 일들을 얘기하며 마무리를 하는 동안 점심이 나왔다.
유럽인들은 추욱 쳐져 있지만  네 명의 한국인은 정말 막강하다. 나오는 음식 죄다 먹고 유럽인들이 남긴 몫까지 깡그리 비우고 음료수도 마시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배 두둘긴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즐긴 일박이일은 챵마이 만의 매력이며 앞으로 우리들 추억 속에 영원히 남을 여행 스케치의 한 장면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린 일주일 더 챵마이에 머물면서 주변 곳곳을 여행하고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문명사회와는 조금 동떨어진 챵마이에서의 여러 요건들이 세르쥬를 자꾸만 뒤틀리게 하여 간간히 부부쌈을 하곤 했다.
송크란 행사 끝나는 축제 행렬에서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진은 연신 찍으면서도 세르쥬 혼자 찌푸린 얼굴로 서 있었다.

야시장에서 쉴새 없이 기념품을 사재기하면서도 왜 자기가 물을 땐 300바트라 하구선 내가 물으면 100바트라고 하냐,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등 불평을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피곤해서 움직이기 싫다는 마누라 등 떼밀어선 동생, 어머니, 친척들, 회사 동료들 심지어 자기가 입을 갖가지 디자인의 쟈켓을 6벌이나 사구는 막상 마누라 꺼는 하나도 안산다. 비키니 수영복 입을 때 허리에 질끈 동여매는 스카프(난 이런거 입어본 적이 없어 이름도 모른다) 사라고 윽박지르는 걸 안샀더니 더 이상 머 사라고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혼여행 온건지 배낭여행 온건지 모르겠군.

챵마이로 올 땐 뱅기를 탔다. 송크란이라 모든 차량이 매진이었기 때문에 제법 비쌌지만 이틀간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자리나는 뱅기를 타고 왔다. 갈 때는 버스를 타자고 졸랐다. 배낭여행객의 위치로 돌아와서.
야간버스를 타기 싫다는 그도 버스에 꽉 찬 외국인을 보면서 순순히 응했다.

그런데.... 에어컨이 고장났다. 챵마이를 출발한지 30분쯤 지나 에어컨이 나오지 않자 창문이 폐쇄된 에어컨 버스 안은 증기탕 그 자체였다. 손님들의 불평과 항의가 이어지자 버스는 챵마이로 되돌아가 수리를 했지만 여전히 불능. 챵마이 외곽에 위치한 버스회사 서비스센터에 갔지만 역시 수리 불능. 결국에는 밤 11시가 넘어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상태로 방콕으로 향했다.

정말 고문이었다. 그 더운 나라에서 바람도 통하지 않는 버스 속에서 앉아있는 5분, 10분, 한시간, 두시간..... 모두들 지쳐 나뒹구러졌다. 그런 지옥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불평 많은 세르쥬에게 태국은 다시금 악몽같은 추억 한 페이지를 남겼다.

챵마이에서 늦게 출발한 관계로 아침 러시아워에 방콕에 도착했다. 돈무앙 공항을 지나면서부터 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온몸이 찌들어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이제 시내에만 들어가면 찬물에 션하게 샤워하고 한숨 자려는 희망 만으로 버텨온 세르쥬는 화를 버럭버럭 낸다.

"내려서 택시 타고 가자."
"차가 저렇게 막혀 있는데 어떻게 택시를 타. 여기 시간거리 병산제여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미터기가 올라가."
"그래도 최소한 택시에는 에어컨이 나오잖아!!!!"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음 저럴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방콕의 트래픽은 유명하다. 언젠가 같은 자리에서 두 시간을 서 있었던 기억도 있다. 일곱 시간을 힘들게 참아 왔는데 한 시간쯤 기다리는 건 문제도 아니야.

돈무앙에서 카오산 까지의 두 시간.... 여기서 우리는 진짜루 감정 어린 쌈을 했다.

"앞으로 태국에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결단코 말릴거야!!!"
"두 번 다시 태국에는 오지 않는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야. 아마 사람들이 태국의 실체를 알면 절대로 오지 않을껄!!!"

모든 일정이 순조롭고 편하다면 팩케이지 여행을 해야 할 거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바로 이런데 있다. 평소에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들, 편안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극기훈련같은 체험을 함으로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을 때 남들보다 유연하게 트러블을 대면할 능력을 키우고 세상을 넓게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기르는 것. 바로 이런데 배낭여행의 매력이 있다.

난 7시간동안 이어진 찜질방 버스 속에서의 고통도 사우나의 냉탕에 들어있는 느낌을 되살리며 견뎌낼 수 있었지만 처음 당하는 세르쥬에겐 힘겨운가 보다. 하지만 증기탕 버스 속에서 듣는 끊임없는 그의 불평에는 나도 그만 폭발하구 말았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내린다. 택시 타고 딜럭스 호텔로 가자는 말에 카오산이 머물기 편하니까 빗속이라도 내가 호텔 구해놓을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자 소위 남편이라는 사람이... 걍 노천 카페의 의자에 앉으면서 그러마 한다. 그땐 순순히 따르는군. 나쁜......

카오산에 800바트짜리 숙소를 잡아놓구 택시를 잡아선 그를 데려왔다. 비를 안맞추기 위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 불평 듣기가 싫어서 카오산 내에서 택시를 잡아 태워왔으니.... 내 배낭여행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챵마이에서, 그리고 챵마이에서 오는 길에 워낙 고생한 세르쥬는 이제 태국에 대해 모든 것을 거부한다. 아무리 좋은 것 재밋는 것을 마주해도 말이다. 우린 방콕에 더 머물면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조금만 이상하면 세르쥬는 먹으려도 접근하려도 않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보고도 놀란다는 듯이.

그러면서 연신 몰디브로 신혼여행 갈 친구를 부러워한다.
"우리 지금이라도 푸켓으로 가자. 너 원하는대로 딜럭스 호텔 예약해서 우리도 해변가에서 놀자.."
이젠 푸켓도 싫단다. 파타야의 딜럭스 호텔을 상기시켜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또 어떤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서....

우리와 함께 이동하려면 세르쥬도 로마-서울 왕복 타이항공을 이용해야하지만 일반요금이 워낙 비싸 마누라의 권유로 결국 저렴한 로마-방콕 왕복을 끊었고 방콕에서 한국 왕복을 구입해서 함께 타고 가기로 햇다. 그런데... 이제 세르쥬의 불평 불만에 삐져 버린 마누라는 복수의 칼을 갈면서 구태여 "타이항공 자리 없다, 비싸다"는 이유를 들어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캐세이 퍼시픽 왕복을 끊어주었다.
▲남들은 신랑을 왜 그렇게 고생 시켰냐구 날 비난하지만
그래도 파타야에선 특급 호텔에서 보통의 신혼부부처럼 놀았다....

홍콩에서 그가 타고 온 뱅기가 이륙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드뎌 복수했다에 자족감을 느끼며 증거 사진을 찍어두고 한국에서 다시 만난 신혼부부. 세르쥬의 표정은 단단하게 굳은채 며칠동안 삐졌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신혼여행가서 따루 뱅기 타고 온 신혼부부는 우리 뿐일꺼다!!!"며 분노하지만...... 우린 만성이 되어 있다. 그러게 누가 불평을 하랬나? 신혼 때 기를 잡아야해....

◀최악의 신혼여행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거실에 장식해둔 이 사진. 덕분에 아무도 그의 말은 믿지 않는다
"이제 댁의 신랑은 태국에 원한 맺혀 다시는 안가겠네요?"
라고 묻겠지만. 절대 아니다.

이태리에서 아는 사람들, 친척들이 우리의 신혼 여행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온다. 처음엔 서지오가 불만을 많이 털어놨겠구나 싶어 뜨끔했는데.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질문한다.

"그렇게 좋았다면서요?"
"어떻게 전기도 차도 없는 마을을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선물을 그런 싼 값에 살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올 때마다 웃는 낯으로 대답하면서 세르쥬를 한번씩 째려본다.
눈짓으로 "싫었다며?"
몸짓으로 으쓱.... "미안."

"킴. 지금 생각해보니 태국이 참 멋진 곳인거 같어."
"킴, 태국 갔다 온 사람들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런 데가 있었나 라고 해. 우리가 정말 색다른 체험을 많이 했나봐."
"킴, 내가 이 쟈켓을 100바트에 샀다니까 다들 안 믿어. 태국 갔다 온 사람들도"
"킴, 우리 담에 푸켓으로 함 더 갔다오지 않을래?"

태국의 매력은 우리와 다른 문화 수준에 있다.
챵마이의 매력은 우리와 전혀 다른 문명 속에 존재한다는 데 있다.
비록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우리가 이질적인 문명에 부딪혔을 때 조금은 불편하고 투정이 일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문명이 주는 문화적 쇼크가 우리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는 긍정적 요인으로 볼 때 챵마이 트래킹은 태국 배낭여행의 백미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슬슬 배낭여행의 묘미에 눈뜨기 시작한 우리 신랑.
약간의 불평(little complain)을 하더라도(절대 약간이 아니다!!!) 참아주길 바라며 나와 함께 배낭여행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세르쥬도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그런 배낭여행은 아니었다. 좋은 침대에서 깨끗한 시트를 덮어야 잠 잘 수 있었던 그에게 챵마이는 그의 여행 인생 자체를 뒤집는 새로운 획을 그은 곳이었다.  -fino-

김명순 (noce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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