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만에 다시찾은 앙코르왓
캄보디아의 씨엡립에 있는 크메르인들의 유적지, 앙코르왓이 서구에 정식으로
소개된 1850년(에밀 부유보)에서
1860(앙리무오)년대의, 당시 서구열강들은, 유행처럼,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문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국가간의
자존심을 걸고 학자나 탐험가들의 탐사활동에 여러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이 무렵에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가져왔고,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로제타 스톤'의 비문을 프랑스의 샹폴리옹이 해독해 내어, 그 이전 거대한
피라밋과 유물들에 대한 막연한 관찰자에 불과했던 우리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클레오파트라'
(한사람이 아니라 시대별로 여러 사람이었다.) 람세스 2세왕 등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그들의 문자로 다시 확인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외의 여러 가지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유적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정리, 복원으로 진행된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일 이었지만, 더불어 아시아 약소국들에 대한 식민지 정책들이 반드시 뒤따라
들어왔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은 유감으로 생각한다.
혹자는 말한다.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다면, 그나마 현재 남아있는 앙코르왓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얼마전에 아프카니스탄에 있는 '바미안' 마애석불 ('마애'는 바위등에 부조되어 있는 상태)이 탈레반들에 의해서 파괴 되었었다. )
하지만 글쎄.. 이러한 논리는 모든 식민지를 가졌던 국가들이 똑같이 써먹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던 일제 36년간의 세월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꼴이 된다.
민감한 문제들은 제외하고, 순수하게 여행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이나, 장소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려서, 지식에 대한 기쁨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발견자로서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 예전 프랑스의 앙리무오나 혹은 1296년 원나라 성종 시대의 사신 주달관 및 앙코르왓을 거쳐간 훌륭한 분들에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자그맣게 나마, 그런 분 들이 있었기에 필자도 그곳을 다녀왔었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되었고, 느낀 것을, 여러
여행자들과 다시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수 십년전 혹은 그 이전의 선배 여행자들에게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떠나는 날.
아침 일찍 공항에서 만난 우리 일행들은 전날 예외없이 잠을 설쳤다고 했다. 설레이는 여행을
앞둔 까닭 이였을까?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불안함 때문이였을까? 나도 거의 두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는 후덥지근하고, 아직 어두운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서둘러 집을 떠났었다.
인천공항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이나 홍콩의 첵랍콕 공항에 비해 좋은점을
모르겠다. 한때 언론에서는 개항전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서 무차별 보도를 하였는데, 개항을 불과 얼마 앞두고는, 그리고 개항후에는 그
태도를 180도 바꿔 찬양 일색이었다. 나는 무척 어리둥절 하였는데, 최근 언론세무조사에 대한 각 신문사들의 보도나 입장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할 즈음 쓸데없이 이런 생각들을 했다.
우리 일행은 나를 포함해 여섯명이다. S 전자에 다니는 일명 싹쓸이, 광고회사에 다니는 노커팅과
영순언니, 방송작가인 선영씨, 아직 대학 4학년인 '쏭' 이었다. 남자 둘, 여자 넷이다.
우리 일행중 노커팅과 싹쓸이, 쏭은 모 인터넷 신문에서 주관한 무료여행 이벤트에 당첨되어, 치앙마이
지역을, 심사에 참여한 나와 함께, 올 4월에 다녀왔었다. 그곳에서 여름 휴가때도 다른
좋은지역이 있다면 같이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고, 나는 이들에게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을 추천했으며, 이들도 흔쾌히 수락해, 이렇듯 다시 함께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치앙마이와 방콕에서 보냈던 유쾌한 기억들이, 이들을 다시 방콕행 비행기에 태웠을 것이다.
우리 비행기는 오전 10시 30분 출발하는 타이항공(TG 659)편이었다. 공항이 멀어지게 되니,
집에서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오전 비행기는 좀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반대로 방콕에 밤늦게 도착하는 것 보다는 숙소를 잡거나
시내로
들어가는데, 훨씬 편리하게 현지에서의 시간을 쓸 수 있기에, 오전 비행기가 배낭여행자 들에게는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지시간 오후 2시경 방콕의 돈무앙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버릇처럼, '카오산' 로드로 갔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기전 까지는 각자 헤어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떤이는 '차이디' 안마가게에서 전통안마를 받고 왔다고 했고, 어떤이는
더웠지만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카오산의 한국인 업소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합류한 방콕의 트래블게릴라 멤버 안진헌님, 4월달에 치앙마이 트랙킹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방콕
모여행사의 현지 가이드 Mr 김 등과 우리일행은 근처의 '인터수끼'집으로 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랜만의 재회의 반가움을 나눴다. 식사 후 한잔
더 하고 싶었지만 다음날의 먼 여정이 부담이 되어 모두들 일찍 쉬기로 했고 앙코르왓에서 돌아와 다시 2차를 하기로 하고 일단 헤어지기로 했다.
나와 싹쓸이는 D&D Inn의 신관에 600바트에 묵었고 나머지 4명은 만남의 광장의 80바트 짜리 에어컨 도미토리에 묵었다.
다음날 새벽 4시반에 카오산의 입구에서 집결한 우리는 방콕의 북부터미널 (콘쏭 모칫마이) 로 택시를 나눠타고 이동해
터미널
건물안으로 들어가 30번 창구에서 '아란야프라텟' (줄여서 흔히들 '아란')으로 가는 시외버스표를 샀다. 가격은 164바트, 180바트
두종류가 있었는데, 5시출발 164바트 버스를 10분 차이로 놓쳤고, 그 다음은 6시30분에 있다고 해서, 기다리기도 지루해, 6시에 출발하는
180바트 표를 샀다. 버스 안에는 화장실이 달려있었고, 164바트 버스와 별로 다를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탄 버스는 중간에 몇
번을 정차한 것까지 합쳐서 정확히 4시간 15분만에 '아란'에 도착했다. 164바트 표는 아마도 약간 돌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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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란의 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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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중간에 주유소를 겸한 간이 휴게실에서, 잠시 쉰 다음 계속해서 달려, 11시15분경에
'아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드는 '툭툭' 기사들의 호객행위에 약간은 어리둥절 했지만, 이내 바로 옆의 노천식당에 짐을
풀고는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돼지고기 볶음밥 (카오팟 무)을 20바트에 사 먹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국경까지는 약 7Km 이고 보통은 툭툭을 약
50바트 정도에 흥정해 가는편이다. 우리도 세명이 한조씩 두 대에 각각 50바트를 내고 국경으로 갔다.
'툭툭'에서 내려 출국 심사대로 잠시 걸어가는 사이에 재빠르게 여러명들이 우리들을 둘러싸는데
우산을 받쳐주는 꼬마들도 있었고, 구걸하는 꼬마, 그리고 씨엡립까지 얼마..라고 하는 이른바 '삐끼'들도 많았다. 국경은
98년에 처음 갔을때와 그리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거의 태국쪽에서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각종 물자들의 물류기지 같은 역할을 양쪽의
국경도시는 수행해 내고 있었다. 과적차량 처럼 손수레에 물건을 잔뜩 올려 싣고는 여러명이 끌고 밀고 하면서 짐을 나르는 남루한 일꾼들의 모습..
커다란 화물차들이 느릿느릿 태국쪽에서 캄보디아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가끔은 어울리지 않게 아주 고급 승용차나 반짝거리는 R.V 차들도 국경을
넘나들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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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까지 갈 툭툭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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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쪽에서 저 너머 보이는 앙코르 왓의 첨탑을 본 따서 만든, 아취형의 캄보디아쪽 국경의 관문은
유적지를 보러 가는 우리들 같은 사람들에게 미리부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98년 국경이 막 열렸을 때보다는 와는 다른 뭔가
안정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마침 국경쪽에서 걸어오는 두명의 서양 배낭족들이 있기에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도로의 상태와
씨엡립에서 이곳까지 나올 때 얼마를 주었는지.. 도로의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고, 픽업트럭을 5달러씩 내고 타고 왔다고 했다. 씨엡립으로 들어
갈때는 프놈펜에서 들어갔기에 이곳부터 씨엡립까지의 그들의 경험담을 들을수는 없었다. 내가 이 친구들에게 몇 가지 물어보는 사이에도 처음 툭툭에서
내렸을 때, 붙었던 삐끼들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 다녔다.
우리는 태국출국 심사대로 가서 먼저 출국 심사를 받았다. 삼각형의 출국도장을 받고는 조금 걸어가니,
중간에 작은 건물에서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1000바트에 사진 한 장 을 내니 즉석에서 비자를 찍어주었다. 비자를 받은 후 다시 조금 걸어오면 캄보디아 측
이민국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캄보디아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여권과 함께 왼쪽으로 줄을 서서 캄보디아 입국도장을 받았다. 바로 옆에는
화장실이 있으니, 미리 이곳을 사용하기 바란다. 그리고 몇분 정도 걸어
나가면 자그마한 광장 주변에 픽업트럭들과 미니버스 등이
서있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서 정말 캄보디아에 온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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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경너머 포이펫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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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씨엡립으로 들어가야 한다. 98년에 왔을때도 이문제로 조금 혼란을 겪었고, 이번에도
약간의 혼란을 각오하고 왔다. 더군다나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일행은 6명이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여행자가 혼란을 겪고 있는 부분이다. 내
나름대로 느낀것들을 정리하자면.. 우선 이곳의 운송 시스템은 98년과 비교해서 별로 개선된 점이 없었다. 다만, 예전에는 도로의
상태가 너무 나빠 시간이 더 걸렸지만, 지금은 보수공사를 해서 움푹움푹 패인길을 땜질해, 제법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었고, 역시 예전에는
4륜구동이나 바퀴가 큰 픽업트럭등만 이곳을 다닐수 있었으나, 도로가 양호해진 관계로 미니벤이나 미니버스등이 운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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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펫
씨엠립 구간의 픽업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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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픽업트럭을 편도 140바트에 주고 이곳 캄보디아쪽 국경도시 포이펫에서 중간에 시소폰에서 한번
갈아타고 씨엡립까지 들어갔었으나, 현재의 시세는 들어본 결과 픽업트럭은 흥정하기에 따라 200에서 250바트 정도 주어야 되고, (400에서
500바트 내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 미니버스는 6달러에서 10달러까지 받고 있었다. 우리들은 1인당 300바트씩 내고 2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미니벤이나 미니버스들은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미리 신청한 여행자들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매일 오후 2시경 포이펫을 출발해 미니벤은 4시간 정도 미니버스는 5시간 정도를 달려 씨엡립에 도착하곤
하는데, (중간도시 시소폰의 휴게소에서 30분정도 쉬었다 간다.) 카오산 등지에서 미리 예약하지 않은 우리같은 개별 여행자들은 대게 아침일찍
출발하면,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이곳에 도착하므로, 그 시간에 미니벤이나 미니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 오후 2시경까지 버스에서
기다리거나, 혹은 그 옆의 식당등에서 기다려야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와중에 삐끼들이 활약하는데, 빨리 출발시켜준다거나,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으니 자신들에게 돈을 내라는 식으로 여행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그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카오산 등지에서 예약한 한무리의 여행자들을 받기 전
까지는 절대 출발하지 않으며, 더불어 신기하게도 거의 한자리의 공석 없이 빽빽하게 앉아서 간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픽업트럭의 뒤에 타고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미니버스나 벤을 타고 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고, 때문에 그것에 약간 집착을 했었으나, 미니버스도 에어컨이 아주 시원한것도 아니었고, 승차감이 썩 좋았던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미니버스보다는 미니벤이 에어컨이나 공간의 여유등에서 조금은 나은 것 같았다. 따라서
국경에서의 이러한 혼란을 겪고 싶지 않은 여행자들은 아예 카오산로드의 홍익여행사와 같은 곳에서 카오산 출발 씨엡립까지 미니벤으로 실어다주는 편도
650바트정도 되는 투어를 신청한다면, 100에서 150바트정도 더 주고, 국경에서 실랑이 할 필요없이, 혹은 그 와중에 바가지를 쓸 필요없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그래도 일반버스도 타보고, 국경까지 툭툭도 타보고 싶은 사람은, 일단 국경까지는 알아서 온 후 300바트 이하로
흥정해, 뭐든지 타기 바라며, 꼭 출발직전에 돈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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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펫과
씨엡립 구간을 달리는 25인승 이상의 버스들 (승차감은
별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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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사람이 온 경우라면 그나마 흥정하기가 쉬어지는데 비해, 우리처럼 어중간한 단체들이 흥정하기가
어려웠다. 같은값이면, 픽업트럭보다는 그래도 미니버스나 미니벤이 약간은 편하다는 생각이 있고, 또 다른 생각으로는 그래도 앙코르왓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바로 이 구간의 이동인데, 미니버스보다는 픽업트럭을 타고가는 것이, 고생스럽더라도 훨씬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할 수도
있기에, 판단은 각자가 하기 바란다.
픽업트럭을 40불정도에 아예 대절해서 들어간 사람들도 있다. 단 픽업트럭을 흥정할때는 한꺼번에
돈을 주지 말고 나눠서 주도록 한다.
더불어 만약에 일행이 8명이 넘어간다면, 미리 글로벌 홈스테이등에 연락하여, 그곳과 연계되어있는
미니벤을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1인당 6달러 정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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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인승 미니벤도
있다. 현대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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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12시 이전에 도착한 우리들은 두시간 넘게 국경에서 기다려서 미니버스를 타고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 씨엡립에 도착할수 있었다. 상황이 이런줄을 미리 알았고, 픽업트럭을 탈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방콕에서 꼭두새벽에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약 7시쯤 버스를 타도 충분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을 태우고 온 미니버스는 처음에 약속과는 달리 글로벌 홈스테이까지 데려다 주지 않았고, 강
건너 서쪽에, Sunshine Geust House에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그곳에서 버스승객들의 대부분이 묵기로 미리 예약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오토바이 택시인 '모또'를 타고 한번 더 이동을 했다. 이런 경우 시내를 한번 이동할 때 500리엘 (4000리엘이 1달러)
정도 주면 된다. 리엘 잔돈이 없다면 5바트 정도 주면 될 것이다.
이미 어두워져 사방이 캄캄해졌을 때 여섯 대의 모또에 나눠탄 우리들은 엔진소리도 소란스럽게 글로벌
홈스테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여행자들은 마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T.V를 보거나, 여행과 관련
되었을법한 이야기에 열중이었다. 몇몇의 여행자들은 반갑게 우리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었고, 테이블에 우선 앉아서 쉴 때, 종업원들에 의해서 시원한
차가 한잔씩 서비스 되었다.
T.V를 보니 한국의 아리랑 위성T.V가 나온다. 참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98년에 내가
이곳을 다녀간 후 썼던 글 중에 위성방송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씨엡립에 있는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도 일본과 홍콩등 아시아 국가들의
위성T.V를 시청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없어서 아쉬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제는 그 글을 버려도 될 듯 싶다. 역시 기대한대로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을 해외에 홍보하기에는 아주 효과적인 것 같고, 교포들을 위해서도 겸사겸사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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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인1실, 8달러,
에어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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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인1실 방을 사용하기로 하고 가격은 1인당 1박에 4달러씩 방당 8달러 였다.
옥상에는 오픈된 도미토리 형식의 20개 정도의 다인침대가 있는데, 1박에 2.5달러 하다가, 우리가 도착한 직후에 1.5달러로 가격을
내렸다.
이곳은 너무 유명한곳이어서 새삼 내가 소개할 필요가 없는 곳이고, 98년 이후 많은 여행자들이
다녀갔기에 더욱 그렇겠지만, 약간의 보충설명을 할까 한다.
글로벌 홈스테이는 98년에 태국에서 여행 가이드 생활을 하던 권국근씨가 친구와 합작으로
설립한곳이다. 처음 문을 연 곳은, 지금의 '왓 보' 거리에서 훨씬 밑으로 내려간곳에 있었다. 지금보다 더 작은집이었지만, 에어컨이 나오는 방도
있었고, (지금은 비싼 에어컨 전기료로 인해 운영에 부담이 되어, 에어컨 방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초기여서 그런지 그다지 붐비지도 않았고,
여유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는 점심도 무료였고, 방 값도 지금보다 저렴했다. 당연히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되었고,
98년 당시 제1기 트래블게릴라의 멤버들의 글로 인해서도 사실상 많이 홍보가 되었었다.
돌아온 후 얼마 있다가 운영 난으로 어려워하고 있으며, 곧 지금의 위치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설립자인 권국근 사장이 캄보디아 인과 결혼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축하해 주었었고, 게스트 하우스가 계속 잘 유지되기를
기원해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곳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게스트 하우스 운영을 권사장이 여행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형님들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앙코르왓
단체 여행팀의 관광가이드 및 다른 일들에 매달리느라 약 7∼8개월 동안, 게스트 하우스에 상주하지 못할 때, 일어난 일 들 이었다.
불친절하다. 방 값과 식사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등등이었고, 게릴라멤버인
요술왕자 안민기님의 '태사랑'
사이트에서도 그곳을 이용했던 여행자들의 불만에 가득한 글이 올라왔으며, 그 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의 반박성의 글도 함께 올라오는 등
한창 그곳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다. 때문에 이번 여행길에 나를 비롯한 우리 일행도 그곳에서 묵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잠시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러한 사태에 대해 내 개인적으로도 확인과 정리가 필요했기에, 그래도 글로벌에서 묵기로 결정하고, 찾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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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의 2.5달러
김찌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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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아갔을 때, 큰 형님으로 보이는 분이 우리를 맞아주셨고, 우리들의 방 3개를 내주는
과정에서 약간 지루할 만큼 신속하게 처리해주지 못했으며, 방 하나의 열쇠가 맞지않아 몇번의 시도 끝에 수리한 점 등 솔직히 여행자들이 불만을
가질만한 많은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권국근 사장에 비하면, 형님의 태도가 여간 미숙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없다.) 그래서 그
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 그때에 권국근 사장이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 오길래, 3년만에 다시 만나 인사를 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권사장도 인정하면서 사과를 했다.
내 생각을 잠시 이야기 하겠다.
한달 전쯤에 이번에 함께 온 일행들과 함께 지리산에 등산을 갔었다. 물론 초행은 아니었다.
지리산이든 설악산이든 산 중턱 이상 올라가게 되면, 산장 겸 대피소들이 나오는데, 그 대피소의 관리자들이 험악할 정도로 불친절하다면
몰라도, 일반적으로 그다지 싹싹하게 등산객들을 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등산 갔던 사람들은 이 산장 왜 이리 불친절한가 하고 따지는
사람을 아직 개인적으로는 보지 못했다. 더불어 사발면 하나에 3천원씩 받고, 복숭아 통조림 하나에 4천원씩 받아도, 비싸서 안 사먹었으면
그만이지, 그 산장에다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돌아와서 인터넷에다 지리산의 어느 산장은 불친절하고 음식값도 무지하게 비싸니 가지
말라고 글을 올리는 사람도 아직 본적이 없다.
등산을 간 사람들은 최소한 그 정도의 정보는 알고 가는 사람이고, 몰랐다고 해도 밑에서부터 지게로
나르는 인건비 및(가끔 헬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수송 원가 등을 감안하고, 그곳의 그리 쾌적하지는 못한 시설에서, 상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수준에서 그들을 원망까지는 하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숙박 시, 산장 안 에서는 등산코스에 대한 경험자들과 비 경험자들에 대한
활발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진다. 유사시 이러한 장소는 등산객들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부상자나 조난자들에 대해서 헬기를 부르거나
응급조치를 취하게 할 수 있는 없어서는 안될 장소들인 것이다.
난 최소한 아시아에 있는 흩어져 있는 한국인 운영 게스트 하우스들도 그 동안 위의 지리산 산장과
같은 대피소의 개념으로 생각해왔다. 더불어 국내의 일반 식당이나 숙소에서 누릴 수 있는 똑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 해 본적도 없었다. 혼자서도
여행을 잘 할 수 있고, 외국어에 막힘이 없는 사람들은 사실 이러한 한국인 운영 게스트 하우스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떠나서,
98년 당시 씨엡립 같은 곳에도 한국인 운영 게스트하우스가 생겨서, 앞으로 이곳을 찾아올 많은 한국인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점을 반갑게 생각했었다. 글로벌이 아니더라도 많은 돈을 벌면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곳도 역시 보지 못했다. 일단은 그 자신 스스로가
좋아하기에 시작한 일이며, 최소한의 운영비를 위해서 마진을 남겨야하는 장사는 해야한다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이런 시설이 필요한 여행자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번에 우리 일행중 한사람이 '동메본'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글로벌에 계신 분이 손수 병원까지 동행해줘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따로 사례를 하려했지만, 그분은 사양했었다.
앞으로 이곳을 찾아가는 여행자들은 기대치를 하나씩 낮춰서 가면 어떨까? 그 정도만 감안해도 크게
불평 할만한 상황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비싸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숙박이나 식사와 맥주 등은 다른 곳을 이용해도 될 것이다. 최소한
이곳에 들러 그저 음료수라도 한잔 시켜 마시면서 옆의 여행자나 주인장에게 여행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활용해도 충분할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장소가, 이곳에 모인 한국인들의 여행정보 교환에 유리하며,
유사시 같은 동포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곳이라는데 있다. 한국인 여행자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도움을 받기에는 그래도 언어가
불편한 외국인 업소보다는 이곳으로 마음이 기울 것이다. 일본인들도 그들의 동포가 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글로벌의
사람들도 최소한 어려운 상황의 한국인들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숙소에서 묵으며, 글로벌로 도움을 청하러 온 한국인 여행자를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불만의 글을 올린 여행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당분간 '비판적지지'의 입장에서 그곳을 지켜보기로 하겠다.
참고로 글로벌 말고 숙소를 하나 추천한다면, 게릴라 멤버 '유니' 문윤정님이 묵었던
곳이며 글로벌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Green Park G.H
글로벌을 등지고 왼쪽으로 30M 거리에 위치한 그린파크 게스트하우스 새로생긴곳이라 깨끗하고
방마다 화장실 딸려있다. 깨끗하고 매일 시트를 갈아준다.
1박 트리플 6달러. + 화장실 1박 트윈룸 5달러. + 화장실
엄청나게 오버하는 친절 *^^* 그래도 부담스럽지는 않은 이 곳.. 여기에 머무는 손님들은
이곳의 친절에 따뜻한 정을 느낀다
그러나 식사는 별루 --;;
세탁을 무료로 해준다.
- 유니 -
그런데 '유니' 가 추천한 그린 게스트 하우스에 대해서도, 어느 여행자가 모
게시판에 올린 글에
의하면, 자신이 느끼기에는, 이곳 그린하우스도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내용도 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차이가 이렇듯 다양할줄이야..
그 외 론리플래닛 동남아시아나, 캄보디아 편에 나오는 저렴하다고 소문난 '나가(NAGA) 게스트
하우스나' 헬로우 캄보디아에 나오는 '첸라' 게스트하우스, 조금 멀지만 파퓰러 게스트 하우스등이 한국인들과 한국음식들을 피해서(?) 묵어볼만한
게스트 하우스들이다.
우리 여섯명은 내일 앙코르왓 투어를 위해서 35달러에 봉고차를 한 대 기사를 포함해 렌탈 하였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우리는 아직 동이 트기전에 앙코르왓으로 떠났다.
10분쯤 달리니, 입장권을 사야되는 매표소에 도착을 했고, 우리는 일단 하루권인 20달러 티켓을
구입하였다. 2∼3일권이 40달러 였지만 우리는 유적지를 2일 이상 볼 생각은 없었기에, 만약을 생각해 우선 하루만 보기로 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동트기 전의 앙코르왓 이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약간씩 어둠이 걷히려 하고 있었고,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천천히 걸어서
우리들은 속세의 세계를 지나 신들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었다. 제 1회랑의 좁은 탑문 사이로 새벽의 여명을 받은 다섯 개의 첨탑이 신비롭게
모습을 나타내었고, 우리들은 한참동안 그곳에 서서 탑을 바라보았다. 탑문을 나오자 제 2회랑으로 가는 길과 함께 넒은 마당이 나왔고, 사람들은
아직도 아득하게 보이는 불교의 극락인 수미산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탑과 함께 제 2, 제 3회랑으로 둘러 쌓여있는 앙코르왓의 전경을 넋을 잃고
바라 보았다. 새벽안개로 인해 극적인 일출장면은 보지 못했으나 어느새 탑 뒤로 삐죽히 나온 태양 빛을 느낄 때쯤 우리는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앙코르왓의 가장 중앙에 있는 첨탑은 높이가 60미터인데, 원근법을 이용한 건축기법으로 인해 훨씬 높고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은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때 (Suryavarman Ⅱ 1112-1152) 건축을 시작해 그의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한
곳이며, 힌두의 '비쉬누'신에게 바쳐진 힌두사원이다. 입구가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서쪽을 향해 있어 사원이면서, 그 자신의 화장(火葬)식을
했던 무덤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첨탑의 지성소에 올라가 보면, 혹은 사원내의 여기저기에 불상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훗날
왕국이 불교로 개종한 이후, 승려나 불교신자에 의해 힌두교의 신상들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불상이 놓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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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왓의 참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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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푸난왕국과 첸라왕국에 이어 앙코르왕국은 서기 802년에서 1432년 사이의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이전과 이후에도 앙코르왕국은 존재했었으며, 역대 왕들의 연대 등, 현재 남아있는 기록의 부실로 인해 역사의 조각이
맞춰지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앙코르 왓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관람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유적지들이 그래도 이만큼이나
소개된 것은 1860년 이후 100년 이상이나 이곳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져 많은 사실을 알아낸 결과이다. 그리고 앙코르왓의 동쪽회랑에 약
50미터의 벽에 부조된 유해교반(乳海攪拌, 유액(우유)의 바다 휘젓기 Churning of the Ocean of Milk)은 앙코르왓 관람의
백미를 이룬다.
현재 '앙코르왓' 의 '유액의 바다 휘젓기' 부조에는 88명의 아수라(Asuras)와 92명의
깃털투구를 쓴 신들(Devas)이 새겨져 있는데, 여러명이 무슨 굵은 봉을 함께 잡고, 양쪽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언뜻 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일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대 인도의 대 서사시중에 하나인 '마하바라타' 의 여러 이야기중에 탄생설화인 이 유액의 바다
휘젓기 가 나온다.
'마하바라타'는 인도에서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2세기에 이르기까지 살고있던 '브라만 민족과
새로 유입된 '아리안'민족 사이의 기나긴 전쟁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이것에 인도신화가 섞여있는 이야기로 산스크리트어로 된 18장 10만행의
싯구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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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의 바다
휘젓기 부조상, 중앙이 비쉬누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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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인즉슨, 아득한 옛날옛적, 악마인 '아수라'가 득세하고, 좋은(?)신들의 힘이 약해졌던 시대가
있었다. 이들 신들은 가장 상위신인 '비쉬누'에게 이 사태를 대해 서로 논의한바, 영원히 죽지않는 불사의 약을 만들어 마시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약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약초를 바다에 던져놓고 휘젓는 막대기로서 '만다라' 산을, 뽑아왔고, 완성된 제품(?)을 당겨 올 수 있게
밧줄대용으로 커다란 뱀인 '바스키'가 차출(?)되었다.
그리고 '비쉬누'신 자신은 커다란 '자라(혹은거북)'로 변신해 '만다라'산에 끝에 매달려 국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아수라'들이 아니었다. 반대쪽의 막대기를 잡고 방해를 시작했는데, 서사시의 내용에는 처음에는 숫적으로 신들이 적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간에 '라마신' (또 다른 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시타'공주와 결혼한 신)을 따르는 역시 원숭이들의 왕 '하누만'이
응원군인 원숭이들을 이끌고 신들에 편에 서서, 결코 질 수 없는 두 세력간의 힘의 대결을 돕기에 이른다.
이처럼 신들과 악마가 1000년 동안이나 영치기 영차하고 밀고 당기고 하는 사이에 바다( 힌두 신화에서는
브라흐마신에 의해 창조가
이뤄지는 대양을 우유로 가득 찬 곳으로 항상 묘사하고 있다.)는 잘 휘저어졌고, 그 안에서 앙코르 유적에 가면 싫증날 정도로 볼 수
있는 부조인 압사라(Apsaras 춤추는 天女)가 태어났고, 아름다움과 사랑의 힌두여신 '락슈미'가 아름다운 연꽃을 탄 채 태어났으며, 그다음
여러 가지 동물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불사의 명약인 '아무리타'(Amrita)가 솟아올랐다. '아수라'들이 이 약을 뺏으려
하였지만, 자라로 변신해 바다를 휘젓는데, 고생했던 신들의 대표인 비쉬누가 다시 한번 활약을 해, 약을 차지한 후, 불사의 힘을 갖게된 신들은
그 이후 '아수라'들을 지옥으로 추방하기에 이른다.
앙코르 왓 관람을 마친 우리들은 차례로, 앙코르톰 (Angkor Thom)의 남쪽문 (South
Gate) 을 통해서, 차례로 '바욘'(Bayon)사원, 바푸온 (Baphuon), 피미아나카스(Pimianakas), 코리끼왕의 테라스
(Terrace of Elephants), 문둥이왕의 테라스( Terrace of Leper King), 프레아칸(Preah Khan),
따프롬(Ta Prohm), 프레닉펀(Neak Pean), 프레룹(Pre Rup),등의 유적지들을 돌아보았다. 각 유적지들에 대한 별도의 안내는
'트래블게릴라' 웹진의 '앙코르왓
완전정복'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들은 중간에 점심식사를 겸한 두 시간의 휴식을 제외하곤,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유적지들을 순례하였다. 비록 고고학적인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각 유적지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손길로 저토록
위대한 건축물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담고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떠나서, 그 옛날 망치와 정을 가지고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고생하며
일했을
장인들의 모습들이 홀연이 떠올랐다.
프놈바켕(Phnom Bakheng)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가기 직전 들른 '동메본'(East
Mebon) 을 보는 중이었다. 서울을 떠나기전 왼쪽발목을 삔 상태로 출발한 일행 중 광고 카피라이터 '노커팅'이 그만 다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왼쪽다리에 가볍지 않은 타박상을 입었고, 원래 불편했던 다리인지라,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우리는 서둘러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글로벌로 일단 돌아와, 근처 병원을 안내받아 무척 어설프게 보이는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들은 후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처치를 받았다. 치료비는 엑스레이 촬영비가 20달러, 치료비 20달러 합계 40달러가 나왔다.
일행중 한명이 부상을 당하니, 우리들은 더 이상 유적지들을 돌아다닐 의욕을 잃었다. 빵이
먹고싶다는 환자를 위해, 장을 보러 나가서 이곳의 유명한 바케뜨 빵과 더불어 버터와 치즈, 떠먹는 요구르트,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샀다.
그리고 우리는 글로벌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는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둘러앉아 '앙코르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 아침, 많은 비가 내렸다. 꽤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비가 떨어져, 포장되지 않은 길들이 금방
진창이 되었다. 앙코르왓에 한번 더 가 보려던 생각도 이내 접고, 오전에는 그렇게 숙소에서 쉬었다. 노커팅의 다리는 시커먼 멍과 함께 더
많이 부어 올랐지만, 견딜만 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들은 좀이 쑤셨고, 상의 끝에 오토바이 택시 '모또'를 2시간동안 1달러에
기사포함해 빌리기로 하고, 구시장에 가서, 점심도 먹고, 인터넷 카페에서 이메일 확인 및 글도 좀 남겼으며, 우체국에 들러서 각자 엽서도
보냈고, 마지막으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이곳 씨엡립 사저를 구경하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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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장에서,
밥과 반찬 한접시에 각각 500, 2000리엘, 한글이 되는
PC방 한시간 2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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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아침이면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야 한다. 씨엡립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근처에 유명한
바욘(Bayon) 식당에서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켜 푸짐하게 먹었고, 우리들은 다시, 앙코르 맥주를 정겨운
이야기로 안주 삼아, 어느덧
모습을 드러낸 별 빛 속에 밤을 지새웠다.
우리들의 삶 속에 항상 아쉬운 부분이 있듯이. 우리들의 이번
여행도 아쉬움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각자의 가슴속에는, 그들의 애정만큼씩 앙코르의 추억들을 새겨 넣었겠지..
위대한 인류의 문화유산이 있는 이 자그마한 곳에는.. 어김없이 내일 아침에도 해가 떠오를
것이다.
이곳을 떠나,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의 어깨너머로..
저 멀리 '바욘'의 '아발로키테스바라' 가 천년의 세월동안 지녀온 미소로서 배웅해 주길...
글로벌 홈스테이 에서는 씨엡립에서 포이펫으로 떠나는 여행자들을 위해서 'Sara
Tour'라는 여행사의 미니벤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1인당 편도 6달러씩으로, 우리의 현대 그레이스 15인승 이었는데, 차가 출발할 때,
글로벌의 모든 식구들이 나와서 떠나는 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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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에서 아침식사로
제공되는 빵과 커피, 떠날 때 배웅해주신 글로벌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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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 만나는 순간, 이별은 반드시 찾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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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남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진심으로 기도했다.
우리를 태운 차는 올 때와는 다르게 4시간만에 포이펫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들어 올 때와는 다르게, 꽤 오래 (1시간
30분) 줄을 서서 캄보디아 출국수속을 해야만 했다.
씨엡립에서 비슷한 시간인 아침 7시에 각 게스트하우스 등지에서 여행자들을 싣고 출발한 픽업이나
미니버스들이 한꺼번에 도착하기 때문 이였다.
때문에 오전 11시30분에서 12시30분 정도까지 캄보디아 출국 창구는 매우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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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잡한
캄보디아쪽 출국장과는 달리 신속하게 입국심사를 해주는
태국쪽 심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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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캄보디아 쪽 입국관리소 바로 옆에는 양쪽으로 카지노가 있다. 이 안에는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고, 무료식사와 무료음료수까지 제공되는데, 갈 때나 올 때, 자투리 시간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가 구경하고, 쉬었다 가도좋다. 절대 도박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들어 갈 때는 배낭을 맨 여행자가 떠들석하게 여러 명이 몰려서 들어가는 것은 이곳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으니, 일행들이 있더라도 조용하고, 여유롭게 입장해서 태연하게 앉아서 쉬면 된다. 이곳에서 숙박도 가능한데, 방콕에서 장기 체류자
들이 이곳으로 와서 출국을 한 다음 바로 다시 입국해 가는 경우도 있고, 이곳 카지노에서 하룻밤 묵으며 놀다가 가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여행자들의 입장에서 포이펫의 카지노에서 자고 가야될 일은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출국 수속후, 태국쪽에서 다시 입국
신고서를 쓰고, 입국도장을 받고 나오면 캄보디아 쪽 보다는 못하지만 역시 삐끼가 따라 붙는다. 이 사람들은 방콕의 카오산 로드 까지 갈
미니버스의 기사나 관계자들인데, 올 때와 마찬가지로 예약한 사람들을 태우면서 자리를 남기지 않으려, 즉석에서 이렇게 여행자들을 부르곤 한다.
가격은 300바트 였다. 북부터미널에서 다시 카오산으로 이동해야 할 사람들은 조금 편하게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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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을 넘자마자
포이펫 쪽 좌우로 있는 카지노 (음료와 식사가 무료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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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우리는 다시 툭툭을 탔는데, 올 때 , 3명에 50바트 와는 달리,
이번에는 1인당 20바트씩 3명에 60바트를 요구했다. 몇곳을 더 알아보았지만 그냥 이가격에 가기로 했고,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들은
140바트짜리 오후 2시30분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올 때 4시간30분 정도에 비해 한시간이 더 걸렸다.
우리들은 서울을 출발할 때 호텔2박이 포함되어 있는 타이항공의 R.O.H 프로그램을
신청했었는데, 항공권 42만원에다 2박 호텔비로 약 5~6만원정도인 것으로 구입했다. 이것은 방콕에 여행자가 도착할 때,부터
2박을 해도 좋고, 떠나기전 2박을 해도 상관이 없었기에, 캄보디아를 다녀온 후 여유있게 쉴 생각에 나중에 2박을 하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만약에 첫날부터 2박을 하는 여행자들은 해당 호텔에서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는 서비스도 받을 수 있음을 알아두기 바란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예전의 'Mercure'에서 이름이 바뀐 Bangkok Palace
호텔이었다. 빠투남과 월드트레이드 센터에서 멀지 않고, '마까싼'이라는 기차역에서 가깝다. R.O.H 상품으로는 가장 저렴한
호텔이기에 이곳으로 예약했다. 북부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어렵지 않게 도착한 우리들은, 여장을 풀고, 쉴 사람은 쉬고, 저녁을 먹으러
나와 싹쓸이, 선영언니, 셋이서 빠투남 시장 건너편에 있는 '나이럿' 해산물 시장으로 갔다. 원래는 간단하게 먹을려고 했었는데, 펄펄뛰는
가재와 새우들을 보니깐, 마음이 변해서 그냥 먹기로 했다.
큰 가재 한 마리를 300바트, 새우 한접시 가득에 역시 300바트, 그리고 맥주 두병 을
시켰다. 요리는 원하는대로 해주는데, 태국 식으로 하지 않고, 가재는 버터와 마늘을 넣어 구워달라고 했고, 새우는 그냥 삶아 달라고 했다.
서비스로 커다란 석화(생굴)을 한접시 주었다. 양은 꽤 많아서 세 사람이 먹기에 충분했으나, 먹다보니 약간 아쉬운 생각이 나던차에 오늘 하루
샥스핀 스프를 300바트에서 250바트로 할인해 준다는 광고문구가 눈에 띄였다. 으음~ 평소에 못 먹어 보던 것이니, 한번 먹기로 했다. 이미
맥주 두병은 우리들의 배속으로 들어가 약간의 호기가 발동하던 참 이었다. 우리는 2개를 주문했는데, 하나의 양이 꽤 많아서 그냥 하나만 시켜도
될뻔했다. 역시 참 맛있었다. 술먹고 해장용으로 먹어도 참 좋을 듯 했다. 꽤 큰 상어지느러미 건더기가 입에 씹힌다. 먹으면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임에 감사했다. 나는 방콕에 그 동안 개인적으로 몇 번 왔을 때, 이번만큼 먹는데 돈을 써 본적이 없었다.
배낭여행자들이 먹는 그 이상 먹어보질 않았고, 기껏해야 수끼정도를 여럿이서 사먹었다. 이날밤 나이럿 해산물 식당에서 먹은 가재와
새우땜에, 이틀후 점심시간에 수쿰빗 소이 24에 있는 일식당 'Toyo(東)'에서 무려 430바트 짜리 일식 뷔페를 먹었다. 원래는
290바트라는 정보를 듣고 갔었는데, 이런이런 가격은 올라있었고, 저녁시간에는 480바트를 받는곳이었다. 하지만 값어치는 충분했다. 음식도
훌륭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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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럿
시장의 가재구이와 수쿰빗 24 에서의 일식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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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보내는 이틀동안 우리는 각자 흩어져 카오산의 홍익여행사에서 칸차나부리 일일투어를
450바트에 예약해, 노커팅, 선영언니, 영순언니, 쏭 이렇게 4명이 다녀왔고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싹쓸이는 잠시 짬을 내어 파타야 까지
내려가 약 2천5백 바트에 공기통을 매고 파타야의 바닷속을 헤엄치고 왔다. 나는 방콕에 아는 분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렇듯 방콕에서의 짧은 이틀은 꿈처럼 지나가 버리고, 호텔수영장에서 꼭 수영을 하겠다며 수영복을
가져온 여자들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왔다. '쏭' 은 우리와 헤어져 말레이시아를 다녀오기로 했고, 나도 며칠 더
머물려던 일정을 바꿔 일행들과 함께 귀국하기로 했다. 대부분 단체든 개별이든 밤늦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많이 타는
것 같다. 더불어 귀국항공기들이 밤에 몰려있는것도 사실이다. 나도 밤에 귀국행 비행기를 타러 방콕공항으로 몇 번 갔었는데.. 어떤날은 돌아가는
것이 아쉽고, 또 어떤날은 어서 가고싶다는 기분이
들었었다. 이번에는 빨리 돌아가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서 트래블게릴라
사무실을 오픈해야 될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방콕을
혹은 앙코르왓을 방문하겠지.. 이번에 문을여는 게릴라 사무실은 과연 내가 구상했던대로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
더불어 또다른 여행지를 향해 배낭을 싸는 내모습을 생각해본다. 인생이란 긴 여행을 하는
도중에, 잠시 산책을 나가듯이 하는 이러한 여행.
여력이 되는 한 이러한 산책을 평생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생의 길은 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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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여행기는 2001년 7월에 앙코르를 여행하고 쓴것으로 시간이 지난
지금은 현지의 사정이 일부 변경되었으니 앙코르지역으로 떠날 개별여행자들은
반드시 게릴라 웹진등을 통해 최신여행정보를 얻어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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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게릴라 김슬기(tourtask@travel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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