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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리탕에서 강딩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6시간 정도 걸린다는 이 길에서 나는 꼬박 이틀을 보내야 했으니까.




1. 4600미터가 넘는 리탕에서 출발한
차는,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은 온통 설산이다.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식생이 없는 척박한
산에는 그저 돌맹이들과 흰눈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한 시간여 내려가자,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곧아서 쓸쓸한 침엽수들은
가지마다 기이한 고드름을 걸치고 솟아있었다. 그렇게 4시간여 달렸을까? 문득 눈 앞에는 봄이 와 있었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일이다. 버스는 야장의 마을로 들어섰다. 계곡마다, 봄빛이다. 꽃이 아름답다. 하지만 내게 더 감격스럽게 다가온 것은 신록의
빛깔이었다. 그저 연두빛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다채로운! 그 사이사이에는, 나무에서 피는 봄꽃들이 색색으로 무리지어 있었다.
봄은 너무도 쉽구나. 4시간여 달려 이렇게 문득 봄이라니!


터미날에서 컵라면 하나를 비우기 무섭게, 차장
아가씨가 어서 버스에 타라고 재촉한다. 예쁘니까, 라면 국물 쪼까 남았지만 올라 탄다. 차는 다시 자꾸만 올라갔다. 차창 밖은
세상을 벗어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긴 이곳이 바로,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천장공로아닌가. 중국의
시천에서 서장, 그러니까 티벳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하지만 길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버스는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결국은 기사가 내려 눈이 가득 얼어붙은 차의 밑바닥으로 기어 들어가야 했다. 날은 엄청 추웠고, 버스는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다. 버스의 안이라고 더 따뜻하지도 않으니 승객들도 불안해서 모두 내렸는데, 상황은 꽤 심각해보였다. 차 바퀴가
펑크난 게 아니라, 휠이 통째로 깨져 나가 있었다. 게다가 이 차는 스페어 바퀴도 없었다. 모두들 그걸 보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들을 꼴아 물고는 한 마디씩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는 운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차종의 버스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바퀴를 통째로 하나 얻을 수 있었다.


2. 운좋게 출발한 길은 그러나 더욱
험해졌다. 어제 내린 눈으로 사실 길과 길 밖의 경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변을 보다가 길에서 몇 발만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눈이 빠진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창 밖의 절경이 그냥 편안치만은 않았다. 도시마다 버스가 하루에 한 대만 다니는 길인지라,
지나가다가 다른 차를 보기도 쉽지가 않았다. 오직 우리 버스만 홀로, 흰 눈 속의 한 점처럼 설국을 내달리고 있었다. 한데 어느 산정에
이르니, 차들 십여 대가 눈 앞에 엉켜있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보다 하며, 내려서 볼 일을 보고 다시 차에 탔지만 앞의 차들은
여전히 꿈쩍도 못하고 있었다. 그게 오후 2시 정도였을 거다. 뭐 길어야 한두 시간 기다리면 될 줄 알았지만, 차들은 우리 버스의 앞
뒤로 점점 늘어났고 설상가상으로 심한 눈보라가 점점 거세게 불어재꼈다. 저녁즈음이 돼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차들은
어찌 빠져나가보려 하다가는 고랑에 빠져 전복되었다. 우리 차의 앞뒤로 길이 다 막혔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승객들은 짐가방에서 덮을 수 있는 것들은 죄다 꺼내야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
갔다.

배는 고팠고 마실 물도 없고 버스 안
공기는 점점 숨쉬기 곤란할 만큼 탁해졌지만, 감히 창문을 열 수가 없이 추웠다. 밤이 되어서는 군인과 경찰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상황은
도저히 수습될 거 같지가 않았다. 꽁안들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차에서 내려서 멈춰서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들을 로우프에 걸어
끌고 밀고 했지만, 그 정도로 길이 정리될 수는 없었다. 밤 10시가 넘어서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눈보라가 더욱 심해져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로우프들을 내던지고 모두들 각자의 차로 들어갔다. 버스 안은 너무 추웠다. 내 생에
경험해보지 못한 기온이니 영하 20도는 거뜬히 될 거 같았다. 꽉 찬 미니 버스의 좌석은 비좁았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고픈
배를 안고 모두들 덜덜 떨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언제까지 모두들 이렇게 있어야 하는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침이
온다고 해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차창은 성애가 두껍게 낀 채로 얼어붙어서 열 수도 없고, 바깥 상황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내가 가져간 침낭을 다섯 명이 덮느라, 나는 다리께나 조금 가리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어둠은 이대로 끝 없을 것만
같았다.
3. 혹 배고픔과 피곤으로 설핏 졸았을 수는 있어도 아마 밤새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을
거다. 차창밖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아침이 밝으려나 보다. 시계를 보니 6시반쯤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북경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니 이제 새벽 5시도 안 되었을 거다. 밖은 조용했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눈보라는
멎었나보다. 기사는 잠깐 잠들었는지 핸들에 엎어져 있다. 승객들 몇이 차문을 열었다. 언제부턴가는 비비는 것도 그만 둬서
발은 이미 얼어있었고, 근육들은 온통 마비가 온 듯 뻑뻑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나도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목이 갈라질 듯 말라서
눈덩이라도 한 줌 먹어야 했으니까. 눈보라가 멎었다면야, 한시라도 빨리 버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다른 차에서도 사람들 몇이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먹을 눈을 뭉치다 말고, 그 자리에서 그만 망연히 몸이 굳어버렸다. 추워서가 아니다. 눈보라가 멎은
산정은 이미 이 세상이 아니었다. 버스와 트럭들이 여기저기 뒤엉켜 넘어져 있었지만, 그 위로도 하얀 눈이 쌓이고 정말이지 이런
말밖에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 천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네! 그리고 정적이. 그저 모두가 빛으로
이루어진 "
뒤늦게야 나는 다시 버스에 올라가 사진기를 들고 나왔다. 이미 늦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게
맞다.




곧이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걸어
나왔다. 버스에서, 짚차에서, 그리고 여기저기 넘어진 트럭에서도 툭툭 눈을 털고 사람들이 그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이곳은 다시 세상쪽으로 조금 당겨 지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몇 번의 숨을 쉬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 수도 없는 와중에 우리는 뒤엉킨 차들 몇을 길에서 이미 걷어냈고, 길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우리 버스가 이 산정을 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듯 싶었다. 버스 기사는 승객들에게 패전 장군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모두들
내려서 걸어야 하겠습니다."
밤새 떠느라 덮었던 옷가지며 짐들을 챙기느라, 갑자기 버스 안은 분주해졌다. 나도 그 와중에
침낭과 짐들을 챙겨서 무거운 배낭을 들고 버스를 나섰다. 산정으로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여행자와 생활자, 젊은이들과 늙은이,
그리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와 승려들도 있었다. 찻길은 너무 돌아야했으므로, 경사가 심한 길을 모두들 비틀거리며 미끄러져 오르고
내렸다. 마지막 산정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내려가야할 저 산길 아래쪽으로도, 차들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다.





4. 그곳에서 마을까지는 50여키로 된다고
했다. 길이 좁아서 그쪽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차가 없었지만 감히 걸어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그 와중에 섞여
망설이다가, 차라리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걸어 내려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군데 군데 차들이 서 있었고, 반대쪽으로는 잘 포장된
내리막길이니 적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였다. 중간에 내려오는 차가 있으면 어떻게라도 세워서 탈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나는 눈 위에 내 배낭을 내렸다. 그리고는 짐들을 단단히 싸고 줄들을 바투 당겨 묶고는 다시금서 배낭을
짊어졌다.
"그래 50키로 트레킹이다! 잘 하면 해질녘이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목이
마르면 지천으로 널린 눈이라도 먹으면 될 거다."
꽤나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홀로서 한발씩 내딛으며 산길을 내려 걷기
시작했다.
삼십여 분 정도나 걸었을까? 마음은 긴장보다는 차라리 넉넉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광 속을
홀로 걷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정을 모르고 산정 쪽으로 올라가는 차들에게는 그 길은 막혔다는 수신호를 보내며 내가 아는 노래들을
죄다 흥얼거리며 걸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한 줌 짚어 아이스캐키마냥 베어 물고 있자니 버스에 같이 탔던 친구 하나가 뒤를
따라 내려오고 있다. 둘이서 조금 떨어진 채로 산길을 그렇게 내려갔다. 시간 반이 좀 넘으니, 어느새 배낭이 자꾸만 아래로 쳐진다.
그래도 꾸역꾸역 가면 될 길이다.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길가에는 채소를 가득 실은 버스 한 대가 뒤집혀져
있었다.



5. 짚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섰다.
운전사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산정 쪽 길이 어떤지 나에게 물어왔다. 자기들은 랜드크루즈로 라싸에 가는 길이란다. 서툰
영어를 쓰는 중국인들이었는데, 꽤 여유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랜드쿠르저는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의 몇배 값이
넘는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서는 내 곁에 와서 사진들을 찍었다. 험란한 천장공로를 다녀왔다는 무슨 기념촬영이라도 하나 보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나를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한다. 나는 사실 거의 기력이 없었다. 배도 너무 고팠고, 잠도 못
잤으니까. 그들은 또 차량 번호판이 나와야 한다며, 나를 몇 발짝 거의 짊어매고 옮기듯 하더니 또 다시 사진을 찍어댄다. 나는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며 간신히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들이 집에 가서 필름들을 현상해보면, 그들 옆에는 사람이
아니라 혀를 쭉 내민 개 한 마리가 찍혀있을 거라는. 그들이 아주 행복하게 나에게 굿바이를 외칠 때, 나는 갑자기 머리가
번쩍했다. 아이구 이들은 마실 물이 있겠구나! 그들이 차문을 닫고 출발하려 할 때, 나는 전력으로 그 쪽으로 뛰어가서는 물과
먹을 걸 달라는 시늉을 열심으로 했다. 그러자 엄청 뚱뚱한 사내 하나가 물 한 병과, 우주인 식량 같은 비스켓 하나를 건네준다. 나는
너무나 고마워서 '쎄쎄'를 연발하며 절을 아마 구십도로 대여섯 번은 했을 거다. 천하의 거지였던지라, 고마울
따름이었다.
뒤따라오던 친구와 그걸 나눠 먹어보니, 참말이지 물은 옥로처럼 시원했고, 비스켓은 정말 우주인의 식량만치로 내 주린
배를 테크놀러지컬하게 채워줬다.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린 나라다. 우주선에 탔던 이 나라의 우주인들도 아마 이런 걸 먹었을 거다. 무슨
만찬이라도 마친 것처럼, 우리는 하나 남은 담배를 나눠피고는 다시 배낭을 맸다.
6. 몇 발짜기나 걸었을까? 앞차가
우리 쪽으로 달리면서 엄청 자발맞게 빵빵거린다. 우리는 길에서 충분히 벗어나 걸어가고 있는데, 그들이 개지랄을 떠는 거다. 가뜩이나
힘도 없었지만, 화딱지가 나서 '뭐 저런 네델란드 풍차 보지' 같은 놈이 있냐며 내가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는데, 얼씨구? 우리 뒤에 버스
한 대가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거 아닌가? 오매! 게다가 그 버스는 다름 아닌, 우리가 타고 왔던 바로 그 버스! 어찌어찌 난리통을
헤치고 이리로 내려오는 참이었나 보다. 참말로 참하게 생긴 안내양 처자와, 더벅머리 버스 기사가 환히 웃으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허풍기가 심한 나로서는, 정말이지 죽은 줄 알았던 무슨 전우라도 만난 것처럼 좆나 반갑더만! 버스에 오르니 몇몇
얼굴이 바뀌긴 했지만, 반 넘게는 어제 함께 덜덜 떨며 밤을 지샜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서로 행복한 안부를 나누었다. 그리고 버스는
또 얼마나 사랑스럽게 굴러가던지...
이렇게 나의 트레킹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다시금 따뜻한 봄날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꽃이 피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무정천리에는 눈이 오고, 유정천리에는 꽃이 핀다지 않던가.
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곳이 강딩입니까? 그들이 나에게 대답했다. 예 이곳이 강딩입니다!
이틀 동안 무지 수고한 버스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버스에서 폴짝 뛰어내려, 터미날 앞의 한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무슬림 모자를 쓴 사내 하나가 펄펄 끓는 솥에
수제비를 떠 넣고 있었다.
나는 무슨 어릴 적 내 고향에 온 것만 같았다. 따끈한 국물을 마주하고는, 눈물이 쪼까 찍!
흐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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