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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다시 찾아온 리쟝은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쿤밍에서 리쟝으로
뻗은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얼마나 변해있을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도시는 달라져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곳은 고성과 신시가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도시 자체의 풍경이었고,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신호등이 거리를 통제고 있었고, 고성 입구는
지오다노 매장이 딱 버티고 있었고, 마오쩌뚱 동상은
그래로였지만 그의 모습은 쇼핑몰들로 인해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느껴졌다. 고성입구는 장찌아민이 다녀갔다는 커다한 흔적과,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었으며, 리쟝 고성의 전통 가옥들은 숙소,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로 쉼없이 변해가고
있었고, 새로이 들어선 리쟝 공항에는 수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젠 윈난의 끝자락이 아닌, 윈난의
시작점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리쟝이다.
리쟝 고성의 작은 골목들은 쿤밍 또는 동부의 대도시에 관광을 온 중국인들로 붐비고
있었고, 리쟝에 사는 소수민족인 나시족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기념품과 웃음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럴까,
나시족의 전통복장도 관관상품이 되어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묵던 숙소는 동파 하우스(Dongpa House)라고 이름 붙여진
숙소.
12개의 침대가 있던 도미토리를 혼자서
찾이하고 있었다.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던 약간 쌀쌀한 날씨 때문에 활기보다는 왠지 모른 차분함이 느껴지는, 리쟝의 모습이었지만,
그날은 내가 묵고 있던 숙소의 방과 마당과 카페를 혼자 찾이하게 된 셈이다.
리쟝을 여행하고 온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가
리쟝이다"라고. 외국에 살면서 여행을 무척이나 다닌 중년의 나이를 사는 그의 경험에서 나온 평가라면, 어느정도 신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햇지만, 내 경험으로 첫 번째 리쟝과 두 번째 초반의 리쟝은 아직까지 그가 느꼈던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벽이면 조용한 골목 사이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늑하게 느껴지기도하고, 낮시간이면 수로를 흐르는 물소리가 왠지 모를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저녁이면
거리에 불을 밝히는 전등이 운치를 더하며, 로맨틱한 모습을 들어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썰렁한 숙소에 혼자있었던
나로서는 그런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리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리쟝 보다는 티벳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두 번째 리쟝은 첫 번째에
비해, 그다지 흥분되는 것 없이, 조용하고 평범한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한가한 시간을 위로해 주던
사람들은, 얼굴을 익혔다고 수줍어 하면서도, 말을 받아주는 숙소의 종업원 아기씨들이었다. 서툰 영어로 내게 말을 건네오기도
하고, 자신들이 마련한 점심에 나를 초대해 주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수로 옆의 작은 카페로 가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일찍 돌아 오던 시간들, 어느날이던 그날도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어 잔뜩 움추리고 있어야했다.
오늘도 누가 들어와
도미토리에 나와 같이 자게 될것 같지도 않은 밤이다. 그래서 리쟝의 밤이 로맨틱하기 보다는 외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여행자가 동파 하우스를 기웃거렸다.
훤칠한 키에 호기심 많은 얼굴을 한 여자였다. 동파 하우스에는 티벳에
관한 사진들이 많이 붙어 있어, 가끔 여행자들이 사진을 보기 위해 들락거리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사진을 보기 위해 잠시 들린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왜 첫 만남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티벳
사진을 보면서 내가 티벳에 갈려고 한다고 했을테고, 여자는 불법 루트에 대해 흥미를 보이며 테이블에 앉아 따스한 차 한잔을 같이 마셔줬을
것 같다.
'알렉스 Alex'라고 불리는 키 큰 여자는 '호주'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막연히 호감을 갖게 하는
호주사람이라고 했고, 쿤밍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리쟝에는
학기중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세미나를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세미나'라는 말을 듣고 나의 눈이 번뜩였을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듣더니 세미나에 참석하라며, 행사가 열리고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세미나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참가비를 내야한다고 했지만, 참가비를 내지 않고도 세미나를 참관할 수 있다고
했다. 티벳과 세미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잠시 들렸던 그녀의 발걸음은 1시간 이상이나 카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이던가 동파 하우스의 도미토리에 한무리가 들이 닥쳤다. 깊게 잠을 자고 있었던 시간이니 밤 늦은 시간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소란을 피웠다. 뭐 저런 무례한 것들이 있나 싶었는데 그들은 이제 막 호도협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온 것이다.
그 힘든 길을 걸었다는 기쁨에, 같은 시간을 함께 했다는 동질감에, 그리고 젊음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들을 더욱 흥겹게 했던
것인데 그날밤 그들은 각 국가의 애국가를 부르며 밤이 늦도록 떠들어 댔다.

다음날 조금 늦게 회의장인 리쟝 국제문화 연구소를 찾았다.
아침부터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고 알렉스도 자리를 잡고 경청하고
있는 중이었다.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알렉스 옆자리에 앉았다.
세니마의 주제는 '세계문화 유산의 관리와 관광'이라는
주제로, 아시아 지역 세계문화 유산 10곳에 대한 모델별 토론과 발전방향이 논의 되고 있었다.
그날은 베트남 호이안(Hoi
An)에 관한 내용으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외에도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 네팔의 박타푸르, 중국의 리쟝 등, 나의
관심지역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회의를 참관하는 내내 흥분하고있었다.
오전에는 도시별 모델에 대한 토론, 오후에는 그룹별
토론이 이어졌으며 쟁쟁한 패널들이 배치되 학술적인 접근이 이어지고 있었다. 열흘간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의가 이어졌으니,
얼마나 많은 양의 토론이 이루어졌을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회의가 없는 주말이나, 회의가 끝난 시간이면 알렉스와
자연스레 어울렸다.
리쟝 거리의 돌길을 걷기도 했으며, 붉은 전등이 켜진 수로옆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얼마후 다시 만난 프랭키와도 자주 어울리게 됐는데, 서로들 오래된 친구 같았다. 리쟝의 큰 축제가 있던 날, 둘은
리쟝의 낭만적인 느낌을 다시 느낄수 있었다.

도시에 한바탕 축제가 열리는 날이 있었다. 물로 온 마을을 씻어낸 다음, 모닥불을 중앙에 커다랗게 피우고 손에 손을 잡고 모닥불을 돌며 춤을
춘다.
한껏 차려입은 전통 복장들이 어울러져, 온 마을 화합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이방인들의 참여도 환영을
받는다.
알렉스와 나도 손에 손을 잡고 춤판(?)에 끼어 들었다. 옆 사람의 동작을 흉내내며 스텝을 맞추고,
진행방향을 따라 속도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함께 어우러져 보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주요한 도시들의 토론이
끝난 후에 티벳으로 가겠다며 쭝띠엔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탔다. 그러나 쭝띠엔에서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육로를 통해 티벳 라싸 Lhasa로 가는 길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외로움을 달래며 다시 돌아온 리쟝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전히 알렉스와 프랭키가 리쟝에 머물고 있었다. 청년회관이라는 숙소를 자리를 옮겼다. 넓은 마당으로 들이우는
한 낮의 햇살이 좋은 집이다.
저녁 시간이면 다시 어울리면 리쟝의 거리들을, 리쟝의 카페들을, 리쟝의 시간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곳에서 아름다움을 즐기며 노니는 여유로움은, 그 어떤 볼거리보다 사람을 신나게 하고 있었고, 다시 먼길을 떠나려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세계문화 유산 세미나 종료를 하루 앞두고 알렉스가 먼저 떠난다고
했다. 나 역시도 며칠 후면 다시금 쭝띠엔으로 올라갈
예정이기에 이별은 예정된 것이었다.
오랜 동안 수업을 빼먹을수 없어 미리 돌아가야 한다는 알렉스. 세미나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마도 배낭을 메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세미나에 참석한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배낭여행자들은 그런 학술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고, 학자들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호텔에 묵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낭을 멘 알렉스와 리쟝의 거리를 함께 걸었다. 이미 어두워져 있는 거리는 다시 붉은 전등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며
낭만적으로 변해하고 있었다.
야간 침대 버스를
타고 쿤밍으로 돌아가는 알렉스를 배웅하며 이별의 키스와 포옹을 한다.
나를 만나, 나를 알게 되서 기뻣다는 말을 내게
전했지만, 나 역시도 알렉스를 만나 쓸쓸하기만 할뻔 했던 리쟝에서의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
자연스런 만남과 자연스런 헤어짐을 뒤로 하고 누군가가 가라고 시키지도 않는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여행자의 몫이라면 만남과 헤어짐도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수 많은 시간과 공간 속에 만난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라싸로 가는 길을 실패하게 되면 쿤밍으로 돌아와, 알렉스가 일하는 곳에 들리겠다고 했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되어 버렸지만, 그리고 이젠 중국을 떠나고 없겠지만, 알렉스와의 약속은 어디서건 한번은 지켜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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