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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의 대도시권 가운데
하나인 파리는 2,000 여년 전 세느강의 시테섬에 세워졌다.
세느강은 파리시의 한가운데를 흐르며 시를 강의 북쪽(Rive Droite, 하류를 바라볼 때 우안)과 강의 남쪽(Rive
Gauche, 좌안), 두 부분으로 나누고, 북쪽은 상업이 성하며, 남쪽에는 소르본 대학교 등 교육기관이 많아 문화활동이 활발하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모두 20개의 구(20e
Arrondisement)로 나뉘며,
각 구별로 특징을 갖는다. Escargo (달팽이) 모양과 흡사한 파리는 발상지인 시테 섬을 1구로 하여, 2구 오페라 극장 주변, 4구 바스티유 광장 주변,
6구 생제르망 데 프레 주변, 7구 에펠 탑 주변, 8구 샹젤리제, 18구 몽마르트 등이 있다. 구별로
보는 사회계층은 7구의 Saint
Germain des Pres, 16구의 La
Muette 는 부유층이 밀집해 있으며,
13구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19구 20구에는 아랍인들이 모여살고
있다. 14구, 15구 18구에는 상류층
및 이민자들이 공존해서 살고
있는곳으로 한국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20구는 부동산
투기로 사회 계층화가 무너지고
중산층화되는 지역으로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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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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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시테섬을 기준으로
1구가 시작되고, 중세때부터 있던
건물로 왕궁의 일부였으나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뜨와네뜨를
포함해 왕실의 가족들이 투옥되었다
처형당한 꽁시에르쥬리
(Conciergerie) 감옥과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드 광장
사이에 있는 튈레리 공원
(Jadin de Tulleries),
루브르
박물관,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고급 쇼핑가인 방동광장,
줄리엣 비노쉬의 ‘퐁 뇌프의 연인’
이라는 영화로 관광명소가 되었고
1606년에 완공된 가장 오래 된 다리이기도
한 Pont
Neuf (아홉번째 다리라는
뜻) 현재는 아케이드와 아파트로 사용되며 안뜰은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빨레 후와얄( Palais de
royal) 등이 있는 이 지역은
파리의 관광지가 몰려있어, 언제나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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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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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무로된 다리였었으며 그후 돌로 건설 했었을 때는 그
다리위에 68채의 집이 있었고
빠리에서는 최초로 그 건물에 번호를 붙이는 작업을 시도했다는 노트르담 다리(Pont Noter Dame)
는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성모 마리아 노트르담 성당과 파리 시청 광장을 연결한다
. 보쥬 광장(Place des Vosges)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광장인데,
앙리 2세가 죽었던 자리에 앙리 4세에 의해 17세기 초에 추진되었다. 원래는 왕궁으로 알려졌으나
프랑스 혁명이후에 보쥬 광장으로 불리워졌다. 이 광장의 1번지에서 마담 세비뉴가 태어났고, 6번지에서는 빅토르 위고가 16년간을 살았다. 그의
집은 빅토르 위고 박물관(Musee Victor-Hugo)이 되어 있다. 이 지역은 마레지구 (Marais)
라고도 불리우는데, 시내에서
쫌 멋있는 스타일의 사람들을
보게되면 그들의 패션아이템은
다 이곳 에띠엔느
막셀 (Etienne Marcel)에서
온 것이다. 개성있는 패션상점으로
가득한 에띠엔느 막셀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일본인 관광객들이
드문 드문 눈에 띄고, 이곳을
알 게 된 이후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만하는
백화점은 더 이상 찾게되지 않게된다.
에띠엔느 막셀과 함께 마레지구에
속하는 퐁피두
센터 (Centre de Pompidou)는
도서관(BPI), 공업창작센터(CCI), 음악.음향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 파리국립근대미술관(MNAM) 등이
있으며, 이 센터의 창설에 힘을 기울인 대통령 G.퐁피두의 이름을 붙여 1977년에 개관하였다. 거대한 철골 트러스 속에 여러 시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설비 배관이 적색과 청색의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문화의 공장 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담한 이미지와 자유롭게 내부의 변경이 가능한 설계가 파리
건축계에 충격을 주었다.
견학자의 70%는 문화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한다고 한다. 파리 시청
(Hotel de Ville) 은 5세기의 긴
세월에 걸쳐 사형 집행장 이었고, 광장의 맨 가운데가 현재 파리시 청사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시청사 앞에
대형스크린을 설치하여,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많은 한국교민들과
유학생들이 이곳으로 나와 열띤
응원을 펼치기도 하였다. 겨울철에는
파리 시민들을 위해 시청사 앞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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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쥬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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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퓌블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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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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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 (Universite de la Sorbonne)은 1253년 황제의 고해 신부였던 로베르 드 소르봉(ROBERT DE SORBON)에 의하여 신학교로서 창립되었다. 대학 도서관에는 약
100만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으며 유럽 최대의 대학이라는 명성에 맞게 학생수만도 20만명에 이른다. 파리
대학들의 평준화 작업으로 인하여
소르본 대학은 파리 제 4대학으로
명칭되었다. 우리나라 대학의
캠퍼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웅장하게 크기만한 건물
하나에 학교이름만이 붙어 있고,
입구에는 항시 경비원들이 학생증을
보여줘야지만 교내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대학내를
구경하기는 힘들다. 소르본
대학 아래쪽에 있는 6구 라탱구역이
학생들이 모이는 우리나라식으로
치자면 '대학로' 같은곳이다. 소르본
대학의 어학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높이 83m의 우뚝 서있는 팡테옹
(Pantheon) 은 국가를 빛낸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전당이다. 이곳에 묻힌 인물들을 살펴보면은 루소, 에밀졸라,
볼테르, 빅토르 위고, 최근의 인물로는 2003년 입관한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알렉산드르 뒤마가 있다.
5구에는 식물원
(Jardin des plantes) 도
소재해 있는데, 대규모의 식물원 조성은 17-18세기 과학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630년대 파리에 만들어진 왕의 정원(Jardin du Roi)으로, 프랑스 혁명 후에 식물원으로 개명되었다. 이 식물원
왼쪽을 따라 박물학 전시관이 건설되었으며, 특히 생물학 연구의 세계적인 중심이 되었고, 동식물의 많은 진귀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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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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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
근처의 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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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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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생
미셸 역에서 내리면 세느 강과 직각으로 대로가 뻗어 있는데, 이곳이 생 미셸 거리
이다. 생 미셸 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지베르
죠셉,지베르 젼과 같은
대형서점과
문방구점, 영화관 등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과 학생들로 늘 붐빈다. 소르본느 대학이 가깝게
있으며, 이 지역은 라탱구역
(Quartier Latin) 이라고도
불리운다. 저렴고 맛있는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으며, 학생들로 인해 파리에서 가장 활기찬 지역이다.
룩상부르
공원 (Jadin de Louxembourg)
은 르네상스식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졌으며 파리 시민의 휴식처로서 젊은 아베크족의 데이트 장소로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한때는
보들레르,릴케,베를렌느의 산책 장소로서 이용되어 더욱 유명하며 뤽상부르그 공원의 중안 호수와 마주 보고 있는 상원 건물은 1627년 앙리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치가 건립 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 이레로 국회 상원 의사당으로 이용되어 왔다.
한때 사르트르와 보부와르 등의
프랑스 문호의 거장들이 카페에서
철학을 논하던 곳이 6구 생제르망
데 프레 (Saint Germain des Pres)
지역이다. 아직도 거리 곳곳에
그때의 향취가 묻어 있는 듯하기도
하지만, 현재에는 프랑스
유명 배우와 감독, 아티스트들이
많이 거주하고, 홍콩의 유명 여배우
장만옥도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 박물관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Musee d'Orsay) 은
개관 이래 1일 평균 1만명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특히 목요일에는
한밤중까지 관람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수천여 종의 회화, 조각, 테마 예술품, 가구 재료, 건축물, 포토 그라피 등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후기
인상파, 아르누보 등을 비롯한 19세기의 풍부한 예술품들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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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옹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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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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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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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이름을 갖고 있는
알렉산드르 3세교 (Pont Alexandre
III ) 는 1896년부터 1900년에 걸쳐서 건설되고 황제의
아들 니콜라이 2세 임석하에 개통식이 개최되었다. 이 다리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동맹제휴 거행을
기념한 것이다. 동화 조명등 꽃의 왕관, 해신의 무늬는 이 다리를 호화스럽게 장식하고 있다. 2개의 두꺼운 교각오른쪽은 프랑스 르네상스와 루이
14세의 시대를 나타내고 있다. 세느강과 네바강의 무늬는 지금도 다리입구에 프랑스와 러시아를 상징하고 있다.
앵발리드와
그랑빨레.쁘띠빨레를 연결한다. 앵발리드 (Invalides)는
루이 14세가 상이용사를 위해 지은 병원으로 그런 기능은 지금도 이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나폴레옹의 무덤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다. 나폴레옹의 무덤은 1821년 그가 52세의 나이로 섬에서 사망할때의 유언에 따른 것인데, 그의 유언은 무덤 입구에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죽은 지 20년이 지난 1840년 12월에 파리에 도착해 개선문을 통과한 후 이곳에
안치되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에펠탑도 7구에 있다. 시내 지하에 있어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아주 흥미롭은
파리의
하수구는, 세계2차 대전의
레지스탕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할 만한 곳이다.
파리의 하수구 시스템은 놀랍게도 그랑드 블레바르(grands
boulevards)가 만들어진 나폴레옹 3세 때 벨그랑에 의해 공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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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3세교의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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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a
Marceau 에서 바라본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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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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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
(Arc de Triomphe) 으로 나폴레옹 제국의 영광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개선문은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 황실의 군인들이 전멸됨으로써 그 영광을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개선문의
아래쪽으로는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주는 샹젤리제 거리가 있다.
파리의 상징적인 거리로서 비엔나의 캐른트너거리. 런던의 리전트 스트리트 이상으로 아름답다고 칭송 받고 있는
곳이 샹젤리제
(Avenue des Champs -Elysee)
이다. 이 거리에 있는
푸께는 현재까지 세계의 유명 연예인들의 단골 카페로 유명하며 파리의 명물인 리도가 이 거리에 있다. 현재는 옛날 거리의
낭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각국의 항공사나 카페, 은행, 상점, 영화관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콩코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 은 아름다운 가로수로 유명한 샹제리제 대로를 사이에 두고 에뜨왈
광장과 마주보고 있다. 이 광장은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 이곳에서 파리의 주요 기념물들을 시원스래 볼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때 사치와 향락으로 유명했던 루이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광장 중앙에는 1831년 나폴레옹이 이집트의 총독으로부터 선물받았다는 3천년이 넘는 거대한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마들렌 성당 (Madeleine)
은 막달라 마리아 성당이라고도 부르는데 파리 사람들의 결혼식장으로 많이 이용된다.
이 성당은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건립이래로 단 한번도 십자가를
외부에 걸어 놓지 않았은 점이 특이하다. 정면에는 르메르의 작품인 최후의 심판이 조각되어
있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와 함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건립된 쁘띠 빨레(Petit Palais)
는 현재 파리 시립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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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구, 18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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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구에
있는 오페라하우스
(Opera de Paris Garnier)
는 1875년 샤를 가르니에에 의해 건축되었다. 객석은 전형적인 제정 시대 양식이며 극장 내에는 샤갈의 천장화가 있으며 객석에는 들어갈 수 없으나 박스석에는 내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오페라 하우스는 1939년 국영이
되었으며,내부 균열로 인해 더이상 오페라 공연은 하지않고 대신 1989년 바스티유에 신 오페라 극장이
생겨 여기서 모든 공연이 이루어 진다.오페라하우스
뒤쪽의 Rue Anne 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수 있는 일본
라면서부터, 사시미 세트가 150유로에
달하는 전문 일식집까지 다양항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즐길 수 있는 일본식당(restaurant
Japonais) 이 10여개에
달한다. 9구에 속하는 라파예트
백화점 (La Fayette) 은 워낙 많은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니
만큼, 각국 언어로 안내문을 만들어놓았다.
1896년 설립되어 역사만도 1백년이
넘는다. 일년중 세일(Soldes)은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6월과 크리스마스가 끝난
12월말부터 1월초까지
두차례 있고 그 외에는 부정기 브랜드 세일이 마련되어있다. 오페라하우스 뒤에 위치하며,
옆에 쁘랭땅 백화점도 있다. 18구의
물랭루즈(Moulin
Rouge) 는 1900년에 카바레로 만들어진 이곳은 건물 바깥에 있는 빨간 풍차만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
카바레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캉캉춤은 아직도 가장 많이 상영되는 단골 메뉴이다. 특히 의상과
연출면에서 유럽 최고를 지향한다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몽마르트르
언덕 (Monmartre) 이라고
부르는 떼르트르 광장엔 카페와 주점에 둘러 싸여
아마츄어 화가들이 많이 있는데,
관광객에게 초상화를 그려준다
19세기 초 까지는 풍차가 돌아가는
시골이었던 곳이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주거비와 생활비가 싸서 가난한 화가와 시인,외국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광장 아래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유명인들이 잠든 몽마르트르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는 드가, 밀레, 베를리오즈,스딸당, 에밀졸라,하이네등의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서있는 사크레 쾨르 대성당
(Sacre coeur) 은 날씨가 맑은 날에는 50킬로미터 내의 파리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환상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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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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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르드 광장이 보수파들의 집회 장소라면 바스티유 광장은 좌파를 상징하는 광장이다.
좌파가
바스티유 광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일인 1789년 7월14일
시민들은 정치범들이 수용돼있던 바스티유감옥을 점령, 대혁명을 촉발시키며 절대왕정을 붕괴시켰고,7월탑을 중심으로 이 광장은 이후 노동계급과
시민계급이 귀족계급등 특권층과 맞서 투쟁과 권리를 쟁취한 성지라는 의미를 부여받게 된 프랑스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광장 오른편에는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9에 만든 극장으로 파리의 주요 오페라 공연장이
있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카를로스 오트 Carlos
Ott 의 설계로 지어진 2,700석의 최신 극장이다. 정명훈씨는 89년 5월부터 파리의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음악 총감독겸
상임지휘자로 2년 정도 활동했었다. 바스티유에서 보쥬공원이 있는 메트로 Chemin
Vert 방향의 Boulevard Beaumarchais
거리에는 파리의 카메라 가게가
늘어서 있으며, 디지털과 35mm
카메라에서부터 중,대형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충무로와
같은 곳이다. 1832년 루이필립 왕 때 처음 만들어져서, 현재의 다리 모습은 1904년 지하철 6호선이 다리
위를
지나면서 놓여진 베르씨 다리( Pont Bercy) 가 있고,
프랑스의 남동부 지방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열차들의 기착지인
리용역(Gare de Lyon)
과 북아프리카와 사하라,오세아니아의 예술품을 소장한
나이지리아 콜렉션과 대형 수족관이 Port
Doree 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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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15, 16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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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구의
베르씨다리 건너편으로 미테랑
도서관 (Bibiliotheque Francois
Mitterrand) 이
자리하고 있고, 14구의 Cite
Universite 는 시테 대학이
아닌 기숙사의 이름이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파리에서 공부하는
전세계의 학생들을 위하여, 대규모
기숙사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고,
각 국가마다 지원을 받아
지어진 기숙사에는 각 국명이
붙어있다. 주거난이 심간하고
물가가 비싼 파리의 생활에서
이곳 기숙사는 같은 규모의 일반
기숙사보다 절반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각 국가의 학생들에게 자국관을
임대하여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테기숙사 준공 당시 박정희정권이었던지라
유신정권 치하에 기숙사 설립을
거부하였고, 그리하여 대한민국관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입주를 위해서는 각 나라관을 찾아다니며 빈자리를
찾아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박사과정
정도가 되어도 들어갈까
말까한 곳이다. Tobiac 쪽으로는
중국인 탕씨 형제가 운영하는
중국슈퍼마켓인 떵프헤흐
(Tang Frére) 가
있어 중국인은 물론 한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 탕씨형제가
몇십억유로를 벌어들였다는 얘기가
나오고 가끔씩 TV 주말
코미디 프로에 이 탕씨 형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15구 La Motte
Piquet 근방에는 한국 슈퍼마켓과
식당, 미용실 등 한인 업소가
많이 몰려 있으며, 파리의 상,중산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새로운
예술가들의 중심지로 떠오른 몽파르나스
(Montparnasse) 가 있다. 몽파르나스를 셰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던 화가는 마티스, 레제수타, 모딜리아니등 파리파라고 불리던 화가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하여 옛날 전성시대의
낭만을 찾아 보기 힘들지만 비방 교차로 부근에는 로댕의 발자크 상을 비롯하여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몽파르나스역
앞에 있는 59층 짜리 몽파르나스 타워는 높이가 210m나 된다.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파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보다 훨씬 더 파리다운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에펠탑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촌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16구는 '16구에
삽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달라보이게 만들 정도이다. 이
지역에서는 대부분 가정에서 가정교사와
영어권 외국인 보모를 두는데,
거리를 걷다가도 심심찮게 아이에게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치마바람만 쎈줄
알았더니, 이곳 파리지엥 아줌마들도
만만치않은 상대이다. 15구 Javel
Citroen과 16구를 연결하는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의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는 시의 구절로 유명한 다리이고,
1894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897년에 완공된
초록색 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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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파르나스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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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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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 양효주(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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